[한국일보 2005-05-31 17:48:30]
“한국전쟁 이후 미국에 가서 고국에 달러를 송금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당시는 우리가 이북보다도 못 살았던 때였습니다. 그들의 눈물겨운 달러가 힘이 됐습니다. 외국에서 뼈를 묻더라도 우린 한국 사람입니다.”
임 회장은 1972년 단돈 50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건너가 옷가게를 시작하면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뤄냈다. 당시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사활을 건 수출 정책으로 한국에서 옷 100만 달러어치를 보내면 100만 달러어치 수입 쿼터를 따낼 수 있었다고 한다. 원가로 수출해 이익은 수입에서 얻는 셈이었다.
30대에 이미 백만장자 클럽에 가입한 그는 식당업과 건설업을 거쳐 지금은 나노 기술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2003년에는 아칸소주 최고 성공 경영인상을 받기도 했다. “너무 욕심내지 말고 한 계단씩 올라가며 세 끼 밥 먹는 문제가 해결됐다고 안주하지 말자는 게 타국 생활을 지탱한 신조였습니다. 2002 월드컵을 잘 치러 준 조국 덕분에 외국에서 목에 힘주고 살 수 있듯이 이젠 우리가 위기에 처한 조국 경제에 고마움을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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