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우토로가 되는 에다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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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우토로가 되는 에다가와
  • 한겨레21
  • 승인 2005.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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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2005-05-27 19:03]


[한겨레] 강제이주시킨 뒤 점유권 인정해 주다 갑자기 “운동장 내놓아라”

도쿄구의 소송으로 벼랑 끝 몰린 조선인 소학교의 절망 ▣ 도쿄=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우리 학교요? 운동장에 나무도 많고 새장이 있어 좋습네다. 4학년 때부터 새장에 사는 잉꼬에게 ‘정휘성, 정휘성’ 부르며 내 이름을 말해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잉꼬가) 아직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5월14일 오전 도쿄 고토구 에다가와 조선인학교. 도화지에서 붓을 잠깐 뗀 정휘성(5년)양은 운동장 한켠의 새장을 가리키며 북한 사투리로 말했다. 이날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 60명이 나와 따사로운 햇살 아래 학교 풍경과 소방차를 그리고 있었다.

정양은 어쩌면 학교 운동장 한복판에 도로가 뚫리고 단칸짜리 낡은 학교 건물이 헐릴지 모른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때가 되면 아이들과 함께 ‘조선말 교육’을 받던 잉꼬 부부도 내쫓길 것이다.

“재판에서 우리가 이겨서, 아름다운 운동장을 그대로 남겼으면 좋겠습네다.” 정양뿐만 아니라 운동장에 나와 그림을 그리던 학생들은 모두 똑같은 바람이었다. 사라지는 학교의 마지막 풍경을 담듯 붓을 놀리는 아이들의 손에는 진지함이 배어 있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이하 총련)가 운영하는 에다가와 학교(동경 조선인 제2초급학교)는 지금 도쿄도를 상대로 힘겨운 재판을 벌이고 있다. 도쿄도가 2003년 12월 에다가와 학교에 “무단 점유하고 있는 운동장을 내놓고, 그동안의 땅 사용료 4억엔(40억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기 때문이다.

에다가와의 1천평 남짓한 운동장은 법적으로는 도쿄도의 땅이었지만, 역사적으로는 조선인의 땅이었다. 193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1940년 올림픽 개최지가 도쿄로 결정되자, 도쿄도가 대회 장소였던 시오자키에 살고 있는 조선인들을 이곳 에다가와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고, 이후 조선인들의 점유권이 관행적으로 인정돼왔던 것이다.

60년간 관행적 점유권 인정하던 땅

학교는 ‘에다가와 조선인 게토’에서 1946년 교사 3명과 학생 50명으로 출발했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넘어온 강제징용 1세대들은 도쿄도가 상하수도 등 사회기반시설을 전혀 제공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아이들만큼은 일본 사회에서 제 대접을 받고 살라”며 손수 학교를 지었다. 1964년엔 도쿄도로부터 땅을 사 지금의 학교 건물을 지었다. 그즈음부터는 운동장 땅의 임대료도 냈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의 급등으로 1968년 68만엔이던 임대료는 1970년에는 300만엔에 이르렀다. 학교는 에다가와 땅에 조선인이 살게 된 역사적 경위를 도쿄도에 설명했고, 당시 미노베 도쿄도지사는 이를 감안해 20년 동안 무상 임대계약을 체결해줬다.

무상 임대계약이 끝난 1990년부터 학교와 도쿄도는 새 계약을 위한 협의를 계속했다. 학교는 무상임대 기간을 연장해주거나, 싼 가격에 운동장 땅을 불하받길 원했다. 이 가운데 학교 주변의 조선인 주택지구는 2000년 주민들에게 시가의 7%에 불하됐다. 하지만 도쿄도는 학교와의 협상을 갑작스레 중단하고 2003년 12월 소송을 냈다. 역사적으로 인정받던 학교의 땅 점유권을 법정으로 가져간 것이다.

현재까지 재판은 모두 7차례 진행됐다. 도쿄도는 운동장 땅의 ‘불법 점유’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고, 학교 변호인단은 도쿄도가 여태껏 행정적으로 인정해왔던 것이라고 반박했다. 5월13일 도쿄지방재판소에 이뤄진 재판에서도 양쪽의 공방이 오갔다. 도쿄도는 학교 운동장과 건물을 가로지르는 도로 용지를 에다가와 학교가 막고 들어서 공공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1964년 새 교사 신축 때 도로용지를 무단으로 점유했다고 공격했다. 에다가와 변호인단의 반박이 조목조목 이어졌다. 변호인단은 “실제 이용되지도 않았던, 실체가 없는 길을 되돌려 달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1970년 이뤄진 무상임대 계약은 도대체 뭐냐”고 되물었다.

실체가 없는 도로를 되돌려 달라니…

송현진 에다가와 학교 교장은 “도쿄도와 협상을 통해서 풀고 싶지만, 재판이 시작된 뒤로 임대료 협상 채널도 끊겼다”고 말했다. 그는 “에다가와 주택지구처럼 시가의 7%라면 구입할 용의가 있는데도, 도쿄도가 갑자기 재판을 걸어 문제가 꼬여버리고 말았다”고 말했다. 현재 에다가와 학교 운동장 터의 시가는 13억엔(130억원)이다. 일본인 사립학교 지원액의 10분의 1인, 학생 한명당 10만6천엔의 지원액을 받고, 학부모로부터 한달 8천엔의 수업료를 받아 근근이 운영하고 있는 에다가와 학교로서는 우리 돈 130억원은 턱도 없는 액수다. 최근 재정적 어려움을 겪어 상근 일꾼까지 줄이고 있는 총련에서 지원받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래도 송 교장은 “시가의 7%인 9천만엔(9억엔) 정도면 살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내년이면 60주년이 되는 에도가와 ‘민족교육’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다.


다행히 일본 시민사회의 지원으로 에다가와는 큰 힘을 얻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에다가와 지원연락회’는 “일본 문화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조선인 학교가 탄압받아서는 안 된다”며 일본 시민사회에서는 처음으로 조선인 학교 기금 마련운동을 벌이고 있다.

홍윤극(5년)군은 도쿄도와의 재판 이야기를 꺼내자 대뜸 “조선인 차별입니다”라고 말했다. 학교에선 잘 놀다가도 방과 후 일본 아이들과 어울릴 땐 가끔씩 ‘조센짱이라는 놀림을 받는다는 홍군의 말에서 에다가와의 싸움이 지난한 투쟁으로 느껴졌다.


“이시하라 도지사를 주목한다”
[인터뷰 / ‘에다가와 지원연락회’ 하나무라 겐이치씨]

팔 걷어부친 일본인들에게 한국인들도 관심 갖기를

에다가와 지원연락회는 ‘에다가와 학교 지원 도민기금’의 설립총회를 5월22일 도쿄 에다가와 조선인 학교에서 열었다. 일본 시민들이 조선인 학교의 기금 마련을 위해 팔을 걷어붙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창립 회원인 하나무라 겐이치(57)는 18일 오후 도쿄 오카치마치 동포법률생활센터에서 가진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모금운동에 한국민들도 참가하길 바란다”며 “모임의 홈페이지와 연락처를 지면에 실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에다가와 지원연락회를 소개해달라. 10년 전 8명의 교수·공무원 등이 에다가와의 역사를 다룬 <도쿄의 코리아타운-에다가와 사람들>이라는 책을 내가 경영하는 출판사에서 펴냈다. 지난해 2월 에다가와 학교의 첫 공판이 있은 뒤, 이 사건을 두고만 볼 수 없어 저자들과 함께 모임을 만들었다. 우리 모임은 대표도 총무도 없는 ‘느슨한 운동 네트워크’로, 한번 회의에 20~25명이 참가한다. 교수·노조원·변호사·전업주부·구의원 등 직업도 다양하다. 지난해 7월에는 350명이 모인 집회를 열었으며, 올해 3월에는 에다가와 운동장에서 700명이 참가한 ‘에다가와 지원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쳤다. 참가자의 대부분은 일본인이었다.

에다가와 학교 문제의 성격은. 신자유주의 바람 속에서 사회적 약자가 버림받는 측면도 있고, 일본 정부가 회피하는 전후 배상의 문제로도 봐야 한다. 특히 이시하라 도쿄도지사의 재임 시절, 재판이 시작된 데 주목한다. 에다가와 주택지구는 싼 금액에 주민들에게 불하했으면서 학교 땅을 팔지 않겠다는 건 소수자에 대한 탄압이다.

에다가와 도민기금을 설립한 이유는. 일본에서 조선인 학교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중요하다. 일본 사회 가치관의 다양성을 위해서다. 지난 3월 콘서트를 마치면서 지속적으로 학교를 돕는 방법으로 도민기금을 만들었다. 콘서트로 100만엔(1천만원)을 모아 50만엔은 학교 무용단의 무용복을 사는 데 기부했다. 나머지 50만엔은 도민기금으로 쌓았으며, 이후 10만엔을 추가로 모았다. 도쿄도가 도민의 세금으로 재판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우리는 도민기금을 모아 도쿄도에 대항한다. 우리 운동은 이시하라 도정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앞으로 계획은.

우리는 지역밀착형 운동을 펼치고 있다. 도쿄도민에게 에다가와 문제를 알려나가고 있다. 지난 3월 콘서트 때에는 이 지역 일간지에 전단 2만5천부를 끼워넣어 주민 참여를 이끌었다. 이웃 주민들도 전단을 보고 생전 처음 학교에 들어왔다. 우선 재판을 지켜보면서 기금을 모으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학교 버스 2대 중 1대가 낡아 교체해야 한다. 구입비가 250만~300만엔인데, 학교 버스를 사는 데 기금을 사용하겠다.

에다가와 지원연락회 홈페이지
http://homepage3.nifty.com/kinohana/edagawatop.htm 전화 81-3-5925-2831




“너무 우스운 소송이다”
[인터뷰 / ‘에다가와 변호인단’ 김순식 변호사]

불법이면 왜 1990년에 소송 안 걸었나… 갑작스런 소송에 도쿄도 공무원들도 당황

5월13일 오후 도쿄 지방법원에서 제7차 공판을 마친 김순식(34) 변호사는 바로 사무실로 들어가지 않았다. 에다가와 학교의 학부모와 교사들, 일본 시민단체 ‘에다가와 지원연락회’에서 온 응원부대 30여명에게 재판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재일 조선인과 일본인 등 4명으로 이뤄진 에다가와 변호인단(단장 니미 다카시)은 재판이 끝나면 방청객들에게 경과 보고를 한다. 일본의 양심적 시민과 재일 조선인들이 에다가와 학교와 함께 싸우고 있다.

오늘 재판의 쟁점은 무엇이었나. 에다가와 학교가 1964년 ‘불법 신축’으로 당시 이용되던 도로를 막았다고 도쿄도가 주장하면서 항공사진을 증거로 제출했다. 하지만 도로의 모습이 분명치 않아 설득력이 없다. 우리는 1964년 이전에 운동장에서 열린 운동회 사진 등 이곳이 도로가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를 이미 여러 장 확보했다.

에다가와 학교 토지 점유의 정당성을 주장할 만한 근거가 있는가. 에다가와는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들이 어쩔 수 없이 집단 주거지를 형성했던 곳이다. 이런 점에서 에다가와 학교는 이곳을 사용할 자격이 있다. 그래서 도쿄도도 1970년부터 무상임대를 해줬다. 1990년 계약기간이 만료됐을 때도 도쿄도는 계약 갱신과 매입 여부를 두고 학교와 협상했다. 학교의 점유가 ‘불법’이라면, 왜 그때 바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나. 1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이것이 내 땅이니 나가달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우습지 않은가.

왜 도쿄도가 소송을 걸어왔다고 생각하나. 직접적인 원인은 도쿄 시민 4명이 에다가와의 땅 점유에 감사 청구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민이 감사 청구를 했다고 지방정부가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바로 법원에 달려올 필요는 없다. 갑작스런 소송에 도쿄도 공무원들도 당황했다고 한다.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로 대표되는 우익세력의 민족교육에 대한 공격으로밖엔 이해할 수 없다.

재판에서 승산이 있나. 도쿄도는 지금 수세에 몰려 있다.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공판 기일만 차일피일 미룬다. 오늘도 우리 변호인단의 반박에 꼼짝하지 못하지 않는가. 오늘 도쿄도가 요청함에 따라 다음 재판은 7월에야 열린다. 우리로선 빨리 법적 매듭을 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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