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한인 첫걸음 내딛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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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한인 첫걸음 내딛은 곳
  • 박신규
  • 승인 2005.05.16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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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박람회와 한인사회의 태동

▲ 1893년 발행 The Book of the Fair에 실린 시카고박람회당시 한국전시관의 실제모습. 1492년 콜롬부스의 미대륙 발견 400주년 기념으로 1892년에 준비를 시작하여 이듬해 1893년 5월 1일부터 10월 30일까지 6개월간 47개국이 참가한 콜롬비아 세계박람회가 열렸다. 이 역사적인 1893년 시카고 박람회는 처음으로 조선 조정의 대표단이 참가했다. 조선정부가 최초로 파견한 대표인 정경원(鄭敬源, 1841~ 1898)을 찾아온 사람들은 뜻밖에 현지 시카고에서 나타난 박용규와 서병규라는 두 명의 시카고 코리안들이었다. 이와같은 사실은 시카고 최초의 한인 역사를 20년 이상 끌어올릴 수 있게 하는 사건이다. 이조실록등 고증사료에서도 존재 기록이 확실하게 나타나는 이들 두사람의 행적은 재미한인동포 기록의 역사를 19세기말 1893년까지 끌어올리게 함으로써 하와이보다 시카고 한인동포 역사를 최소한 10년 더 오래된 110년 이상의 역사를 끌어올리게 하는 의미를 가진다. 다시말해 재미동포 이민사가 102명의 한인이 갤릭호를 타고 화와이에 도착한 1903년 1월13일이 아니라 이보다 최소 11년 앞선 1893년에 시작된다는 것이다. 당시 시카고 박람회장 개회식에 참가했던 클리블랜드 미국 대통령은 특별히 한국전시관에서 연주하는 조선 악공들의 연주를 듣고 목덜미를 끌어안고 감탄하기까지 했기에 시카고 코리안 동포 역사는 미국 대통령과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열명의 코리안 악공들 가운데 한 사람이 한민족 역사상 최초로 음반을 내기까지 했던 곳도 그 당시 시카고 박람회때였다. 시카고는 해외동포 문화역사의 시발지였던 것이다. 최근 ‘1893 시카고 한국 전시관 복원기념사업회(회장 김성규)’는 코리아 전시관이 들어있던 거대한 건물의 주 전시관 내부의 전체 설계 도면을 입수함으로써 그 설계도 도면 안에 코리아 전시관의 구체적인 자리까지 발견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김성규회장은 당시의 한국전시관 진열실은 6∼7칸 정도의 맞배지붕 기와집이었다고 확인했다. 그리고 전시장안에는 47개국의 국기들 중 주최국인 미국 국기 다음으로 쇄국정책을 풀고 참가한 조선 국기인 태극기가 걸렸던 것은 당시 시카고 박람회에 조선의 참가가 얼마나 환대를 받고 있었는지를 알게 해준다고 말한다. 우리 민족 최초의 해외 현지에 세워진 전시관은 불행히도 박람회를 마친 이듬해인 1894년 7월 화재로 소실됐다. 다행히도 박람회 당시 전시되었던 한국전시관 물품들의 일부는 박람회가 끝난 직후 시카고 필드뮤지엄, 뉴욕 피바디 박물관, 워싱턴 스미소니언 박물관 등에 기증됐다. ▲ 시카고 필드뮤지엄 큐레이터가 박물관 지하 소품창고에 잠자고있는 조선시대 총포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중서부 대표적인 자연사 박물관인 시카고 필드뮤지엄에는 100년전 한국전통 유물로 추정되는 희귀한 문화재 700여점이 보관중이다.

이 유물들중 300여점이 1893년 다운타운 하이드팍에서 열린 전세계 콜롬비안 박람회때 당시 한국정부(조선)가 파견한 통신 사절단이 가져온 유물인 것으로 확인됐고 나머지 400여점은 박물관측이 독일수집가들로부터 구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회장은 “박용규ㆍ서병규라는 최초의 동포의 존재가 확인됐으므로 미주이민사를 다시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한국전시관 복원에 한국 정부는 물론 기업, 독지가들의 지원이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시카고=박신규기자
skpark@koreadail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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