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명으로 12년만에 밟은 한국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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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명으로 12년만에 밟은 한국 땅
  • 동북아신문
  • 승인 2005.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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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 강간사건 돕다 누명쓰고 출입국 직원에게 폭행 당해

"정말 억울하고 억울합니다..."
지난 1992년 10월 20일, 중국으로 귀국하려던 배남택씨가 그 해 7월 언론에서 일제히 보도했던 중국동포 모녀 강간사건의 피해자 김금란씨와 그의 딸 김미자씨에게 도움을 준 일은 그 이후 배씨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그 당시 인천출입국관리소 권순열씨의 부탁을 받고 강간사건의 피해자인 두 모녀를 돕게 된 배씨는 관할기간 동안 모녀가 중국에 출국할 수 있게 끔 통역을 해주는 등 많은 도움을 주게 되었다. 배씨는 이들 모녀를 위해 하루가 꼬박 지나도록 통역을 했고, 일이 다 끝나고보니 시계는 저녁 9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출입국관리소 사무실 2층에 있던 배씨에게 출입국의 심종철 반장과, 이상열, 이덕룡, 김형욱이란 직원이 다가와 갑자기 배씨에게 수갑을 채운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수갑이 채워진 배씨는 소장의 묵인 하에 아편밀수범으로 몰려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하고 머리와 허리, 음낭와 온 몸을 구타당하였고 심지어 이들은 사무실 기물로 배씨를 폭행했다.

 이유도 모른 채 출입국관리소 직원에게 심하게 폭행을 당한 배씨는 그해 10월 24일, 중국으로 강제추방 당하였고 귀국할 때 가지고 가려던 가족들에게 줄 선물 일체를 압수 당했다.
 충격적인 일을 당하고 중국으로 억울하게 추방된 배씨에게 시련과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폭행의 후유증으로 배씨는 심장병에 걸렸고, 머리를 맞아 현재까지 두통이 계속되고 있으며 기억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또, 폭행으로 척추가 세 개나 부러져 일상적인 활동을 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더욱이 폭행을 당한 음낭 부위는 치료가 불가능해 부인과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할 수 없었고 배씨는 이듬해인 1993년 9월 아내에게 이혼을 당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야 말았다.

 그 이후 배씨는 억울하게 10년 동안 한국의 입국규제 대상이 되어 억울함을 풀지도 못한 채 입국할 수 없어 소송조차 하지 못한 채 유예기간을 넘길 수 밖에 없었다. 10년의 규제기간이 지나고 한국에 입국할 수 있게 된 배씨는 또 한번 경악하고 말았다. 법무부 출입국관리 입국규제 서류를 보니 김미란 모녀의 강간범으로 감쪽같이 둔갑되어 있었던 것이다.

 배씨는 "10년 동안 폭행 후유증으로 제대로 일을 할 수 조차 없어 생활기반 자체가 무너져 버리고 너무나 고통스러웠다"며 "약한 자를 상대로 대한민국의 한 기관이 이렇게까지 악랄할 수가 있나"며 억울함과 분통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어 배씨는 "내 중년의 인생은 이미 없는 것"이라며 "인간의 기본 권리까지 무참히 짓밟아 버린 대한민국 공무원들에 치가 떨린다"며 고개를 돌렸다.

 서울조선족교회 서경석 목사는 배씨의 사연을 듣고 배씨의 억울함과 하나의 사건에 강간범이 두명이 되어버린 공무원들의 어이없는 공문서 위조 사실, 폭행사실 등을  김승규 법무부 장관에 탄원하고 관련 공무원들의 처벌을 요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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