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발벗고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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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발벗고 나서라”
  • 오재범 기자
  • 승인 2009.08.24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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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기 재외 한글학교 교육, 무엇이 문제인가

동포교육 예산은 ‘지원’ 아닌 ‘투자’

재독한글학교교장협의회는 매년 여름 한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재독청소년 우리말문화 집중교육’을 실시했다. 올해도 원활한 진행을 위해 전체 운영비 중 일부를 현지 교육원에 신청했다. 이 사업은 열악한 환경에서 어린 동포들에게 한글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성과를 인정받아 매년 지원을 받아왔다.

하지만 올해는 현지 교육원이 지원을 거절했다. “재외동포재단으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그동안 교육원은 이 사업에 대해 3~4천 유로를 매년 지원했었다.

협의회는 결국 규모를 줄여 27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그전에는 보통 60여명 정도를 교육해왔던 것에 비하면 절반이하의 학생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갔다.

올해 초 정부는 총리실의 재외동포정책위원회를 열어 부처별 중복사업을 정리했다. 이에 교육과학기술부는 한글학교와 관련된 사업들은 모두 외교통상부의 ‘재외동포재단’으로 이관했다. 다만 교재발간사업은 앞으로도 교과부가 하기로 했고, 미처 정리되지 못한 사업 일부는 올해까지만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예산집행과정에서 진통이 발생했다. 예산이 전혀 재외동포재단으로 이관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도 이유가 있었다. 해외 교육원에는 재외동포 한글학교 관련 자체사업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교육원에서 한글학교에 대한 지원을 해올 수 있었는가?

최기수 교과부 재외동포교육과 사무관은 “그동안 현지 교육원에서 시행하던 사업 중 일부가 한글학교와 연관이 있었다”며 “실례로 일부 교육원에서는 한국학교 교사와 교육원 교사를 대상으로 한 연수 프로그램에 한글학교 선생님도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은 현지 동포사회의 영향이 크다. 일시체류나 영주하는 동포들 모두 자녀들의 한국어교육을 중요시해 자발적으로 한글학교를 많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외동포재단이 만들어지기 이전인 1996년까지는 한글학교 지원을 담당하던 현지 교육원이 이를 완전히 모른 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결국 이런 사실이 정기감사를 받던 과정에서 밝혀져 몇몇 교육원장이 경고까지 받았다. 교육원은 올해부터 진행하는 모든 사업에서 한글학교 관련 사업을 배제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 사무관은 “한국학교 재정도 열악한 상황에서 없는 사업예산을 쪼개 한글학교를 돕는 것은 분명 잘못됐다”며 “앞으로는 교육원이 교과부 예산으로는 한글학교사업에 지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얼마전 모국방문 연수 프로그램 참여를 위해 귀국한 강여규 유럽한글학교협의회 회장은 “북미나 유럽에는 한국학교가 전혀 없는데도, 현지 교육원장이 한글학교에 대한 지원과 관련해 20% 정도의 비중만 두겠다는 발언을 했다”고 전한다.       

강 회장은 “몇몇 사례로 볼 때 앞으로 해외 한글학교에 대한 지원이 현재보다 더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사업을 이관받은 재외동포재단이 앞으로 어떻게 한글학교 지원을 할 것이냐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그동안 재단이 현지 교육원과 공관을 통해 한글학교 지원사업을 해왔기 때문이다.

강남훈 재외동포재단 사업이사는 “올해 초 교과부에서 하던 한글학교 지원사업이 재단으로 이관됐지만, 관련예산은 넘어오지 않았다”며 “실제로 돈이 없어 일부 사업만 지원할 수 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재외동포재단 예산 부족을 시인한 셈이다.

실제 올해 재외동포재단에서 책정한 교육지원 관련 예산액은 50여억원에 불과하다. 동포재단 전체예산 400억에 비해서도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현재 재외한글학교는 전세계 110개 국가에 2천111개나 된다. 학생수도 12만 8천명이 넘는다. 이중 1/4인 3만명은 일시체류 학생이라는 통계도 있어 체류자격에 관계없이 많은 동포학생들이 한글학교를 다니는 셈이다.

특히 북미주와 유럽지역은 한국학교가 전혀 없이 한글학교만 1천 200개에 달하지만 학교당 지원금 평균은 1년에 2천달러에 불과해 재정문제가 심각하다.

이같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한글학교 교사 108명이 지난 17일 천안에 모여 결의문을 작성해 정부와 이미경 의원, 김학송 의원 등 국회의원 8명에게 돌렸다. 또 전세계 한글학교 대표들이 모여 내년 1월 중 ‘(가칭)세계한글학교 교육자 포럼’을 한국에서 개최하고, 한글학교 지원을 촉구하기로 했다.

이민노 재미한국학교협의회 회장은 “해외에 있는 재외동포 2~3세의 한국어교육에 대한 지원은 단순한 지원이 아닌 투자”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어릴적부터 배우지 못하는 2~3세들은 한민족이 되기 힘들다”며 “한민족의 발전을 위해 한국어교육에 정부가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한글학교 관계자들의 움직임은 그동안 우리정부의 동포교육예산이 적었고, 그 와중에 정부가 내년 한국학교 예산만 800억으로 늘리겠다는 발표가 나온 것이 자극이 됐다는 주장도 있다.

결국 정부가 각 부처에서 별도로 그리고 함께 추진하던 재외동포 교육사업 비용을 아끼려고 일괄적으로 교통정리 하다가 그 피해를 동포들이 고스란히 입은 셈이고, 차세대 한민족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동포들이 스스로 해결에 나선것이다.

이명옥 재독한글학교교장협의회 회장은 “업무중복을 피하기 위해 교과부의 업무가 재외동포재단으로 이전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지원금이 줄어들었다. 이럴 바에 업무가 일원화되는 게 무엇이 바람직한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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