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마르뜨에 작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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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뜨에 작가는 없다”
  • 이석호 기자
  • 승인 2009.02.20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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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템포러리’ 흐름타고 ‘한국계’ 큰 활약

세계속의 한인 두뇌들 ② / 유럽의 사회과학 석학들

▲ 서수경의 <논둑길>.

낡고 깨진 대형 타일욕조에 검은 먹물이 차있다. 욕조 주변으로는 백두산이 에두르고 있고, 공중으로는 고속도로를 형상화한 조각이 매달려 있다.

설치미술가 이불(44)씨의 작품 ‘천지’다. 재작년 파리 까르티에 현대미술재단에서 전시된 이 작품은 한국현대사를 형상화한 것으로 주목받았다. 타일욕조는 이데올로기, 먹물은 물고문으로도 해석된다. 하지만 작가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작가는 발가벗은 채 천장에 매달리거나, 생선 수십 마리를 비닐로 싼 채 전시하면서 ‘화엄’이라는 제목을 붙여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등 도전과 실험의 생애를 살아왔다.

작가의 국제활동순위를 집계하는 아트팩츠(www.artfacts.net)는 그를 세계 25위에 올려놓았다. 그가 유럽에서 백남준 이후 한국현대미술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김진의 회화도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파리에서 아트 컨설턴트로 일하는 최선희씨는 김진의 작품에서 사르트르의 ‘구토’를 느낀다고 한다.

소설 ‘구토’의 주인공 로캉탱은 바닷가의 조약돌을 주우면서 문득 구토를 느낀다. 왜 느낄까. 아무리 찾아봐도 이유가 없다. 이처럼 김진의 작품에는 ‘나’란 ‘존재’를 찾는 의문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컨템포러리 미술은 난해하다. 그러나 미술의 본고장 유럽에서 이 분야 우리 작가들의 활동은 눈부시다. 이불, 김진을 포함해 서도호, 이세현, 김진, 배병우, 김아타, 이소연, 서수경 등이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세계 미술계는 고전 페인팅이 먹히는 테크닉의 시대를 떠났다. 미술계는 빠르게 ‘컨템포러리 아트’의 중심인 독일과 영국으로 축이 이동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몽마르뜨에 작가는 없다. 관광객과 호객꾼만 있을 뿐”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도호씨는 한국화의 원로 서세옥 화백의 아들. 동양화를 전공한 그 역시 설치 미술 ‘싸이코 빌딩’(2008, 영국 사우스뱅크 센터)으로 놀랍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작가 김아타씨는 사물을 동양 철학인 중용으로 표현하고 있다. “회색을 중용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며 중용의 도는 흰색이거나 검은색이거나 자기 색을 가질 때라고 말한다.

‘속도보다 거대한 중역’이라는 제목으로 베니스비엔날레미술전 특별상을 받은 이세현씨는 올해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에서 헤네랄리페 재단의 공식 초청으로 대규모 작품전을 갖는다.

‘소나무’ 작가 배병우씨도 비상하고 있고, 2004년 독일의 ‘엠프라이즈 미술상’을 수상한 이소연씨도 독일미술계의 신예로 떠오르고 있다.

홍호진 UNC 갤러리 대표는 “비디오, 인터넷 등 영상매체에 익숙한 젊은 작가들이 설치·사진 등 컨템포러리 아티스트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1세대 동포들도 ‘문화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다. 닥종이에 숨결을 불어넣어 ‘한국의 미’를 빚는 작가 김영희씨는 한국의 전통을 시적으로 표현하는데 몰두해왔다.

또한 파독간호사 출신 방조영자씨는 물론이고, 천경원(독일), 노은임(독일), 이우복(스웨덴)씨 등도 활발한 활동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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