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 따라 떠나는 6박 7일 중국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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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따라 떠나는 6박 7일 중국 여행"
  • 박상석
  • 승인 2008.01.10 16: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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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석 기자의 북경배낭 여행기 ①
▲ 필자가 묵었던 페리호 내부

6박 7일 일정의 인천-북경 간 배낭여행에 나섰다.

찬바람 매서운 오전 9시. 인천 연안부두 제2국제여객선터미널 앞마당은 아침부터 분주하다. 여객선 출항에 앞서 중국으로 화물을 운반하는 보따리상들인 일명 ‘따이공’들의 포장작업이 한창인 때문이다. 국제선 터미널에는 하루 평균 약 500명이 중국행 배편을 이용한다는 이들 말고도 배낭여행객, 학생 단체여행객, 중국 투자 기업 임직원, 외국인 여행자 등 다양한 목적의 출국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북경이다. 그러나 사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북경 보다 ‘물길로 서해바다를 건너는 경험’을 하고 싶어 나섰다. 어찌됐건, 여행은 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설렘과 기대를 갖게 한다. 그 여행이 언어와 풍송이 다른 이국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더욱이 이번 여행은 비행기를 버리고 물길을 더딘 걸음으로 가는 그런 여행이다. 하여, 그간 경험 못한 것에 대한 은근한 기대감이 크게 둥지 튼 상태다. 그리고 이런 막연한 기대감은 결국 6박 7일의 짧은 여행기간을 오래도록 못 잊을 만큼 각별한 인연과 기억을 안겨주었다.

화요일과 금요일 출항했다가 목요일과 일요일 다시 천진을 떠나 인천항으로 회항하는 주간 왕복 2회 노선의 페리. 승선에 앞서 간단한 출국신고를 마치고 배에 오르니 프론트에서 2인 1실의 방을 배정해 준다. 조선족 동포 직원이 선상비자 발급 등에 관해 차분한 목소리로 소상한 설명과 함께 열쇠를 건네주는 것이 퍽 인상적이다.

5등급의 승선권 중 편도요금 18만원인 로얄등급 객실에는 소파, 욕실, TV와 VTR , 전화 등이 제법 잘 구비돼 있다. 또 2만 6천톤 규모의 이 거대한 진천페리 여객선 내부에는 식당과 커피숍, 오락실, 면세점, 운동실 등 다양한 편의시설 등이 갖추어져 마치 도심의 상가를 둘러보는 느낌이다. 그러나 내가 무엇보다 흡족하게 느낀 것은 객실 창 너머로 펼쳐지는 바다 풍경이었다.

배가 한창 공사 중인 인천대교 주탑 밑을 통과하는 것을 보고서 객실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창밖 서해 연안의 환상적인 파노라마에 넋을 빼앗겼다. 이름 모르는 작은 성과 무인등대, 그리고 끝없이 출렁이는 서해의 잔물결. 하지만 배낭을 풀고 난 후 선내에서의 시간들은 주로 회랑처럼 길게 늘어선 바다 풍경 조망 라운지와 찬바람 나부끼는 갑판 위에서 보냈다.

2~3층 갑판 위는 겨울 칼바람에도 불구하고 갯내와 함께 묻어오는 싱싱한 생명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또 각각의 다른 삶을 사는 여행객들이 어깨를 부딪치는 이곳에서 그들의 다양한 삶을 들여다볼 수 있어 좋았다. 나는 이곳에서 보따리상들의 일당이 몇 년 새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줄고, 그 이유가 1인당 운반 가능한 화물 무게 감축과 품목별 무게 제한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또 수화물 운반 일당이 절반으로 줄어들면서 부부는 물론 젖먹이 아이까지 동원한 가족 단위의 ‘따이공’이 늘고 있다는 놀라운 현실도 들을 수 있었다. 그 뿐 아니라 나는 갑판에서 수원의 한 지방대학 사진학과를 갓 졸업한 뒤 어렵게 들어간 유명 스튜디오를 박차고 나와 1년간의 여행기간을 정하고 무작정 나싸로 향해 떠나는 젊은이와 대화하는 유쾌함을 얻었으며, 일본과 한국문화를 배운 뒤 다시 중국문화를 배우러 간다는 캐나다의 청년과는 한 잔 커피를 서로 나눠 마시기도 했다.

흡연석으로 주로 이용되는 공간인 선수 방향 휴게실에서 만난 조선족 동포에게서는 인천 국제여객터미널의 6개 여객 노선을 중심으로 거대한 무역망을 키워나가고 있다는 조선족 상인회의 조직망과 자본력에 대해 뜻밖의 소상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나아가 그를 통해 나는 순전히 짧은 여정을 함께 넘실거리며 간다는 동질감만으로 독한 중국술 몇 잔까지 얻어 마시는 선박여행의 덤을 얻기도 했다.

바다 위에 어둠이 내리고, 이렇게 여행 첫날 하루가 지났다. 객실 침대의 작은 흔들림 속 숙면을 취해 선상의 일출마저 놓치고야 잠이 깬 이튿날 진천페리는 꼬박 출항 24시간을 달린 긴 항해 끝에 안개를 잔뜩 머금은 천진의 외항 탕구항에 들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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