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강제이주 70년' 역사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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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강제이주 70년' 역사 재조명
  • 서나영 기자
  • 승인 2007.10.11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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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한상문화연구단 국제학술대회

전남대학교 세계한상·문화연구단은 지난 4일 전남대학교 사회과학대학에서 ‘강제이주 70주년 고려인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국제 학술대회를 개최, 고려인 강제이주 70년사를 회고하는 한편 고려인 사회와 한국간의 상호 협력방안을 모색했다.

고려인 및 고려인사회 연구를 국제적 학술영역으로 확대시키기 위한 자리이기도 했던 이날 학술대회는 ‘스탈린의 소수민족 강제이주와 명예회복’, ‘고려인의 삶과 정체성’, ‘디아스포라: 화인과 고려인’,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화와 예술’ 총 4개 섹션으로 나뉘어 32강의실과 34강의실, 교수회의실 등에서 진행됐다.

이 중 ‘중앙아시아 고려인 강제이주 70년의 삶과 노래’를 주제로 발표한 카자흐스탄 한국학센터의 김병학 시인은 고려인들의 삶과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고려인 구전가요를 재조명해 관심을 모았다.

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적으로 수용해 온 독특한 언어 표현양식과 곡조는 그들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 지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며 “고려인들은 압도적인 러시아어의 소낙비 아래서도 모국어의 지반이 완전히 침식되지 않도록 스스로 창작한 노래 가락 속에 민족음악을 지켜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1991년 이후 고려인 1세대 한글작가들의 사망과 함께 조상들이 쌓아온 고려인 가요의 유산이 모국어를 모르는 고려인 현세대들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그는 “오랫동안 재소고려인의 정체성을 지켜주고 다른 민족과 구별되는 고유한 사념의 구조물을 형성해 주었던 모국어노래가 세월과 이민족 문화의 끊임없는 도전에 앞으로 얼마만큼 더 견딜 수 있을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며 ”긍정적 예측에 대한 희망은 오직 젊은 세대들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모국어 가요에 대한 각성에 달려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러시아 볼고그라드에서 재이주 고려인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이봄철 해외사업부장은 ‘고려인 농업형태인 고본질의 변화와 시설농업의 전망’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체제 붕괴 과정에서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많은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의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가운데 지금 그들에게는 ‘민족 정체성’보다 경제적인 안정과 자립의 기반 조성이 더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 부장은 “소련 붕괴 전 고려인들에게 부를 안겨주었던 고본질(농지 임차 경작의 형태)이 더이상 부의 축적 수단이 되지 못하고, 생계형 수준의 노동으로 전락하고 있는 가운데 고려인의 농업을 통한 성공적인 정착 여부는 시장주의 체제로 변화한 러시아에서 어떻게 러시아적인 특성에 맞는 농업모델을 찾느냐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그런 맥락에서 지난해부터 고려인 동포를 국내에 초청, ‘시설농업’ 기술를 전수하고 있다”며 “‘시설영농’은 러시아에서 다시 한번 소비에트 시절의 ‘고본질’처럼 ‘부의 축적이 가능한 농업방식’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단체들의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고려인들의 ‘동포적 연대의식’과 ‘민족정체성의 약화’의 문제는 다음 화두로 남겨두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러시아의 민족정책과 한국의 재외동포정책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고 인권 사각지대에서 ‘난민’ 신분으로 생활하고 있는 동포들의 인권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러시아 남부나 연해주로 재이주하고 있는 고려인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재정착을 위한 법적 지위 확보가 고려인 동포사회의 절실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밝힌 이승우 전남대 교수는 ‘고려인의 권익보호 네트워크 실태연구’를 주제로 고려인 문제를 논의 삼았다.

이 교수는 “재이주로 인해 국적을 갖지 못해 거주국 국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도 주장할 수 없는 고려인들은 기본적인 생계문제 자체가 문제”라며 “이들의 권익보호 문제는 다른 재외한인 거주지역에 비해 더욱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거주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고려인들이 평등한 권리를 행사하려면 자발적이면서 자립적인 조직형태를 갖춘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며 전세계 한인들을 응집할 광범위한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밖에도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러시아과학아카데미의 폴리안 지리학연구소 박사와 김영웅 극동문제연구소 박사가 각각 ‘스탈린의 강제이주와 명예회복조치’, ‘고려인 강제이주 70년의 평가’를 주제로 고려인 강제이주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더불어 현재 CIS 지역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의 변화된 정체성에 관하여 발표하는 등 국내외 30여명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석학들이 대거 참석해 발표와 토론을 통해 여러 각도에서 고려인 문제를 재조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주)고려인 강제이주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러시아 연해주지역에 거주하던 한인들이 1937년 스탈린정권의 소수민족 분산정책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고, 이후 척박한 중앙아시아 땅에서 농업을 통해 성공적인 정착을 이뤘지만 소련의 급격한 붕괴와 CIS 국가들의 민족주의적 독립으로 또 다른 형태의 재강제이주를 연해주, 러시아 남부 등으로 하게 된 고려인들의 재이주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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