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421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요세미티 시편 처음 가는 길은 간혹 내 곁에 있었던 너의 얼굴이다구름 없는 하늘은 왠지 큰 부담이지만구름이 없어야만 깨끗하다는 건 아니다요세미티 하늘은 누더기 옷을 입는다듬성듬성 벌판엔 익숙한 동물이름이 친숙하다보는 것만으로 찻집의 커피를 마시며오르막길 작은 호수는 나그네를 쉬어가게 한다가을에도 녹색 산이 아름다운 이류를 알 것 같지만구불진 산 등선을 힘겹게 오르면여기는 벌써 가을이다겨울 숲이 길을 열면어둠과 낮이 쫒기는 싸움이다싸움에 지는 쪽이 길을 만들고숲이 하는 덮는 법을 배운다꽃은 향기로 말한다지만그 꽃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이 너무 쉽게 세상을 살아온 탓이라,저렇게 큰 바위산은 겨울이불을 준비하지 못했나 보다바위산은 다른 호수를 머리에 이고그 산이 아니면 떨어지는 물이 폭포를 만들지 못한다나무 하나 없이 산 기고 | 백승철 | 2007-01-19 13:40 [동포시단] 국수와 어머니 한달에 두어 번어머니를 모시고 한국식품점을 간다마른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물건을 고르신다허기져 보이는 어머니의 하얀 등이 안쓰러워들어선 국숫집긴 국숫발만큼이나 먼 길을 달려온 어머니와마주 앉는다국숫발만큼 긴 것이 목숨이라며국수그릇을 앞에 놓고 선뜻 수저를 들지 못하는 어머니면발같이 굵어진 주름 가득한 입으로뜨거운 국수를 드신다맥없이 젓가락에 걸리는 국수, 한 그릇 비우기도 어려우신지자꾸 내게 국수를 던다자꾸 내게 당신의 몫을 건넨다어머니의 생이 담겨 와 나의 그릇은 비워지지 않고내 몫보다 늘어나는 국수그릇하얀 국숫발만큼이나 긴 나 기고 | 이현숙 | 2007-01-04 11:32 울고 싶을 때 울지 못할까 두렵다 울어라,울고 싶을 땐 울어라어차피 우리는 모두배냇물 토해내며악이 받혀울며 태어난 몸들외로워서,피멍들게 아랫입술 깨물어 봐도자꾸만 외로울 땐울어라,이불 입 안으로 처넣으며꺽꺽 온 몸으로 울어라살다보면 어느 날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게 된마른 눈의 자신을 발견하리라다스리고 기죽인동물성(動物性)의 나 또한 나이니이뻐하고 토닥이며입술만 삐죽이지 말고울어라,너무 잘 참아도 징그럽다무른 살, 뜨거운 피 가진 사람아가끔씩 우리 부둥켜 안고실컷 울어나 보자. 기고 | 정도영 | 2006-12-20 11:20 마늘 쪼개어형체 없이 빻아지지 않고는맛을 낼수 없는 꿈그 꿈 하나 건지기 위해마늘처럼 옷을 벗고도 부끄럼 모르던 우리훌훌 빈 몸으로 떠나와빛깔과 소 맛 다른 삶들이하나의 바램으로 버무려지는 인종장터에서마늘즙 독한 꿈벼랑 끝에 뿌리내리기 스물다섯 해한때서로가 더 이상 부서지기를완강히 거부하던 회한의 날들오늘은도마 위에 잘게 부순다부수고 빻아 요리한 습하고 어둡던 세월햇살인양 다독여말간 보시기에 담는다정결한 기도로 시작될오늘의 밥상.(캐나다/ 제2회 재외동포문학상 시부문 대상작) 기고 | 이금실 | 2006-12-11 17:25 키 큰 나무 아직도키 큰 나무를 보면한번쯤 올라가 보고 싶어진다어린 날 나무를 타듯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꿈을아직 다 접지는 못한 모양이다추락하는 것이 두려워지는 나이가 되고부터는아파트 십사 층이 무섭고백화점 꼭데기가 무섭고번지 점프 같은 건 말만 들어도 어지러운데아직도키 큰 나무를 보면올라가 보고 싶어지는 까닭은더 높이 날기 위해 쉬어 가는 새처럼잠시 날개를 접고 먼 하늘을 바래고 싶은 것이다. 기고 | 손영란 | 2006-11-30 17:21 늙은 직녀 이른 새벽에 홀로 깨어나할머니는 바느질을 했다.커다란 궁둥이에서 실오리 한 가닥 뽑아내가는귀 먹은 바늘귀에 꿰어놓고장로 서랍들을 죄다 뒤져방안 가득 옷들을 헤쳐 놓으면잠귀 밝은 어머니는 깨어할머니의 방문을 열어젖혔다.-에미야, 헤진 옷들이 많구나. 이 속곳 좀 보렴.-어머니, 그건 어머니 수의잖아요!할머니의 잠은 당신의 커다란 궁둥이처럼초저녁 쪽으로만 자꾸 뭉쳤다가이른 새벽이면 실타래에서 풀려 나와부엌과 마루의 뒷간의 어두컴컴한 구석만 찾아다니며거미줄을 걸쳐놓았다.이른 새벽에 눈을 뜬아버지의 목마른 취기가가끔식 그 거미줄에 걸려들면-에비야, 내 바늘이 보이지 않는구나. 네가 숨겼느냐?-어머니, 실꾸리는 이제 그만 치우세요. 집안이 온통 실밥투성이예요!바늘겨레처럼 자식들을 품 기고 | 정철용 | 2006-11-23 09:15 이것이 다가 아니다 첫 새벽자석처럼 끌어당기는 잠자리를 박차고운명처럼 나서는 일터온갖 때 묻은 빨래를 빨아주고,주문 복잡한 빵을 싸주고,청소를 해주고, 헌집을 고쳐주고,힘겨운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는 일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니다.오버타임을 하면 아플 시간조차 없이 살아도이방의 삶엔 외로움으로 남는 시간이 있다.가슴앓이 향수로 잠 못 드는 밤들이 있다.속엣말 응어리진 가슴들이 있다.그래도 이게 다가 아니다.모국어가 아니어서, 나이가 들어서 가꾸만 가물대는 외국어눈치로 알아채고 체면, 인격 다 삼키는 반방어리 삶그러나 결코 이게 다는 아니다.제 몸 기꺼이 다 내어주고껍데기로 떠오르는 우렁이가 된다 해도이게 다는 아니다.그 어미 살 먹고 자란 새끼우렁이는 있는 것이다. 기고 | 전현자 | 2006-11-20 11:21 사진 한 장 좐슨 씨가 카메라를 들고 서서나와 그의 거리를 팽팽히 당긴다잠시, 적막이 그대로 묵직하게 끼여있다치-즈그리고 플래쉬가 터졌다공간이 터지는 것을, 깨지는 것을,내가 적나라하게 파열했다순간이 이렇게도 유리처럼깨질 수가 있다니.그때 산산조각 난 유리의 날개를 보았다날았다나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는 얇은 종이속에온전히 터짐으로써,비로소 사진 한 장으로 기억되었다 기고 | 신지혜 | 2006-11-03 13:54 처음처음이전이전이전2122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