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란의 새 대통령은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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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란의 새 대통령은 누가?
  •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장
  • 승인 2024.05.2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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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이란 정국의 불확실성

5월 19일 이란 대통령 이브라힘 라이시의 사망으로 세계 언론들은 이란의 정국이 어떻게 바뀔지 전망 기사를 내놓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아라비아 뉴스 영자신문은 라이시의 죽음으로 혼란과 불확실성이 온건파에게 기회를 줄 수 있지만 오히려 강경 통치가 지속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압둘라흐만 알라쉬드는 대통령직은 국가의 거울이지만, 국가의 유일한 의사결정자는 아니라고 했다.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 미국과의 화해 국면에는 이란의 하산 로하니의 ‘온건’ 대통령이 있었고,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과의 적대 국면에는 ‘강경파’ 인 라이시가 대통령직을 맡았다. 

이란 국민들이 매파 보수주의자를 차기 대통령으로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라이시의 부재가 지역적, 국제적 화해를 향한 새로운 국면을 열어줄 것인가?

압둘라흐만 알라쉬드는 지금으로서는 속단할 수 없다고 하면서 한 달 후에 치러질 대선후보 추이와 대선 결과를 봐야 한다고 했다. 새 대통령은 향후 4년간 이란이 화해를 향해 나아갈지, 아니면 이전보다 훨씬 더 위험한 국면으로 몰아갈지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

하메네이와 혁명수비대는 여전하고

알아라비아 영자 신문은 지금 이란이 라이시의 장례식을 마치고 새 대통령을 선출할 준비를 하고 있는 가운데 중동은 불확실성에 대비하고 있다고 했다. 1989년부터 이란에서 최고의 종교적 정치적 권한을 갖고 있는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와 이란 혁명 수비대(IRGC)가 이란의 외교 정책을 계속해서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거의 변화가 없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라이시의 죽음은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레바논 언론인 후다 알후세이니는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사망으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와 가까운 의사결정그룹에서 이른바 ‘마슈하드(하마네이의 고향) 서클’의 영향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사람들이 떠나가고 하메네이만 남았다

이란이 직면한 구조적 과제가 산적해 있다. 라이시의 죽음 자체가 이러한 핵심 딜레마를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않겠지만 미래의 궤적을 예측하기가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외교 정책보다는 이란의 국내 정치가 갑작스러운 라이시의 사망으로 인해 가장 많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지역 안보에서는 그의 죽음이 장기적으로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두고 볼 일이다.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사람들 중에는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Ayatollah Khamenei)만이 남아 있다. 이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정치 현장을 떠났고 그 전에 하쉬미 라프산자니, 그리고 하산 로하니, 마흐디 카루비, 알리 아크바르와 알리 잔나티도 정치 무대를 떠났다. 다시 말하면 라이시의 죽음과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노령화와 함께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기초를 놓은 세대의 시대가 끝나가려 하고 있다. 이란 정권의 미래는 어디로 가나? 이란 국민과 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다음 4주 동안 누가 대통령이 될지, 그리고 새로운 미래 지도자가 될지 추측하느라 분주할 것이다.

이란의 대외 정책, 화해의 손과 무기를 든 손

압드 알라흐만 알라쉬드는 지난 수년간 국제사회에 보여준 이란 대외 정책의 방향을 살펴보면 화해를 위해 내미는 손과 무기를 쥔 소수 집단의 이념에 지배를 받는 자들 간의 의견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혁명 초기부터 지금까지 지속돼 왔다. 그리고 예외는 있었지만 대부분 중요한 순간마다 가장 극단적인 측이 승리했다. 

이란과 함께 ‘저항의 축’으로 불리는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예멘의 후스, 레바논의 히즈불라 들이 라이시 대통령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했다. 

이란 정치 상황에서 본 한국인의 이슬람 이해

이란 정치권 안에도 이처럼 개혁과 보수, 강경파와 온건파들이 있고 아랍의 정치권 안에서도 개혁과 보수, 강경파와 온건파들이 상존한다. 화해하려는 무슬림과 무기를 들었던 무슬림이 있었다. 

위 글과 다소 동떨어진 이야기인데 국내 이슬람 전문가가 최근 한국의 어느 일간 신문에서 알라와 하나님이 같다고 하면서 알라는 알일라의 축약형이고 알일라가 부르기 편하게 알라로 변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랍어 ‘일라흐’는 진리 또는 진리가 아닌 것이 숭배받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이고 고대 신화에서는 일부 사람들이 일라흐를 알라라는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관사(al)와 ilah를 합치면 ‘알라(Allāh)’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알일라흐(al-ilah)’가 되는데 알일라흐는 알라의 99가지 이름들 중 하나이다. 

‘알라’는 가장 지고한 필연적인 존재(al-wājib al-wujūd)의 본질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이다. 따라서 알일라흐와 알라의 개념이 다르고 사용되는 범주도 다르다. 위와 같은 설명은 두 가지  아랍어 단어의 사전적 및 어휘적 설명에 불과하다. 

좀 더 심층적으로 하나님과 알라 간의 개념을 살펴보려면 신론(본질과 속성)의 측면에서 그리고 두 공동체가 경전에서 이 단어들을 어떻게 사용해왔는지, 심지어 이슬람 철학 역사에서 이븐 시나 등이 어떻게 신개념을 논의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언론에 실린 이슬람과 알라에 대한 이해는 학술적인 면에서 보면 항상 정확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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