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산넘기위한 첫발 내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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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산넘기위한 첫발 내딛다”
  • 김진이
  • 승인 2004.02.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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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성 … 정부내 교민청 재외동포청 만들라
임광빈 … 한민족공동체운동으로 승화시켜야
이경태 … 법무부시행령바꿀 대의명분생겼다
김제완 … 지식인 시민단체 ‘나몰라라’일관

중간 발문 :
“실질적으로 엄밀히 보면 시행령이 살아있고 무국적 동포들이 제외돼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번 법 개정은 700만 재외동포 시대에 맞게 재외동포 정책 전반을 재점검하고 한민족 시대를 여는 첫 디딤돌이 될 것만은 분명하다.”

발문 : 2월 9일 재외동포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84일 동안 눈물겨운 농성과 투쟁을 계속해온 조선족 동포들과 재외동포 단체들은 통과소식에 만세 함성을 올리고 당일 서울 불광동 조선족 거리에는 자축의 자리가 곳곳에서 이어졌다. 그러나 동포들을 괴롭혀온 시행령과 각종 독소조항들이 바뀌지 않았고 법무부의 태도도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무국적 동포에 대한 대책마련, 불법체류 동포들에 대한 사면촉구 운동 등 갈 길은 멀고 험하기만 하다. 이번 법개정에 대한 진지한 평가와 앞으로의 재외동포 운동의 대안 모색을 위해 재외동포신문사에서는 20일 개정운동의 주역들을 초대한 긴급 좌담회를 개최했다. <편집자>

참석자 : 이경태(조웅규 국회의원 보좌관) 임광빈(조선족 복지센터 소장) 김해성(중국 동포의 집 대표) 사회 : 김제완 편집국장

사회자 : 재외동포법 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이로써 중국동포와 러시아동포 등이 재외동포법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같은 성과는 정부의 시혜 차원의 조치가 아니라 동포운동가들과 중국동포들의 지난한 싸움의 결과라는 데에 이론을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지난 84일 동안 기독교연합회관과 기독교백주년기념관에서 수백명이 농성을 하는 중에 처지를 비관한 중국동포의 자살, 변사 사건도 있었습니다. 먼저 개정안의 내용을 이경태 보좌관님께서 더 보충 설명을 해주시지요.

이경태 : 2월 9일 본회의를 통과한 재외동포의 출입국 및 법적지위에 관한 법률 통과로 헌법불합치 문제도 해결하고 기본적으로 재외동포에 대한 차별을 없앨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입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아쉬움을 많이 표합니다. 단지 재외동포 정의조항 그것밖에 손을 못댔으니까요. 처음엔 시민단체도 그렇지만 재외동포 기본법을 만들자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결국 헌법 불합치 문제만 해결한 것에 머물렀습니다.  

문제가 된 재외동포 정의조항을 중심으로 99년 제정된 현행 재외동포법과 개정안 및 이번에 통과된 수정안의 요지를 말씀드리면, 재외동포법 제2조 2호 외국국적동포에 대해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 또는 그 직계 비속으로써 외국국적을 취득한자 중 대통령령으로 정한 자’로 정의했는데 법무부가 이에 근거하여 대통령령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기준으로 정부수립 이전에 고국을 떠난 동포는 제외시킨 것이 문제가 됐죠. 조웅규 의원의 개정초안은 재외동포기본법 체계였습니다. 즉, 재외동포 기본법에 재외동포 정의 조항을 신설해서 재외동포를 재외국민, 외국국적동포, 무국적 동포로 세분화해서 모든 동포가 포함되도록 했으며, 기본법 내용은 재외동포 정책, 이념, 목적, 기본계획, 재외동포위원회, 재외동포재단 등 재외동포 정책 전반을 규율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기본법체계에 따라 재외동포위원회법제정안, 재외동포법 개정안, 재외동포재단법개정안 등 4개 법률안을 발의했습니다.

그 후 현실적으로 통외통위에서 반대가 심하여 통과가 어려워졌죠. 이에 따라 기본법체계를 잠정 보류하고 법사위 계류 중인 재외동포법만이라도 통과시키기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이 때 수정안을 제출하였는데 수정안의 대통령령 위임사항을 제약하고 무국적동포도 포함하자는 안에 대해서도 법무부가 완강히 반대했죠. 최종 절충안이 지금 통과된 법처럼 재외동포법 2조2호에 대한민국국적을 보유하였던 자에 괄호를 넣어 ‘대한민국 정부수립이전에 이주한 동포를 포함한다’로 하고 구체적 사항은 대통령으로 위임한다고 하였습니다. 무국적 동포조항은 실효성도 약하고 기타 혼란도 우려된다는 법무부의 주장을 받아들여 삭제하기로 한 것입니다.

사회자 : 동포법 개정운동의 진행경과까지 일부분 말씀해주셨는데요. 그동안의 과정을 돌아보면 여러차례의 고비가 있었습니다. 이목사님께서 헌법소원을 내서 헌법 불일치 판결을 받아내신 것이 동포법 개정운동의 출발점이 아닌가 합니다.

김해성 : 1999년 8월 재외동포법이 국회에 상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나간 사람은 동포이고 이전에 나간 사람은 동포가 아니라는 내용이었죠. 결국 1948년 이전에 나간 동포들은 동포가 아니라는 법이었죠. 바로 명동성당에 들어가 농성을 시작했어요. 당시 동포들은 “자기 민족 차별하는 동포차별법 철회하라” “부잣집에 시집간 딸은 딸이고 가난한 집에 시집간 딸은 딸도 아니냐” “동포차별 세계 망신” 이런 구호들을 외치면서 철봉 끝에 매달리고 극단적인 단식농성을 했었죠.

결과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통해 이번 재외동포법에서 빠져있었더라도 우리 동포임이 분명하고 정부에서는 동포로 인정하는 정책을 하도록 엄명을 내렸죠. 그러나 실제적인 효력은 없었습니다. 결국 재외동포법은 대통령이 서명을 하고 발효가 됐죠. 이 상황에서 중국동포의 집 출신동포 조연섭, 문현순, 전미라씨 세명이 경실련에서 기자 회견을 하고 헌법소원을 제기했죠. 결국 헌법재판소는 헌법불합치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죠. 사실은 헌법위반인데 헌법위반 판결을 내리면 제정 때부터 소급해서 무효화시켜야 하고 재외동포법에 근거한 출입국과 많은 법적지위가 무효가 되어 혼란이 예상되기에 2003년 말까지 개정하라고 판결이 나고 다음 운동으로 연결됐습니다.

사회자 : 지난 9월24일 법무부에서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한 뒤로 상황이 격렬해졌는데요. 이때부터 정부와 사회운동단체들간에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을 것같습니다. 이 시기에 대해서 임목사님께서 말씀을 해주시죠.

임광빈 : 헌법불합치 판결이후 시민단체들이 2001년 12월 ‘재외동포법개정 대책협의회’를 만들고 2002년 공청회 등 여러 가지 개정관련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재외동포법개정 대책협의회 관계자들은 2003년 6월 동포법개정안 통과를 기대하고 일을 하고 있는데 사실 이 운동에 불을 질러 준 것은 지난 해 9월 법무부의 시행령 개정안 고시였습니다.  

법무부가 발표한 동포법개정안 내용은 시행령 개정뿐 아니라 7가지인데 결과적으로 형식적으로는 48년 위헌시비를 해소하고 재중 재러 동포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핵심은 재중동포 못 들어오게 하는 데 있죠. 예를 들어 시행령을 바꾸어 ‘대한민국정부수립 이전 국외로 이주한 자’를 동포로 규정하면서도 동포로 인정하는 구체적 기준을 1922년에 시행되기 시작한 호적법에 의해 호적이 남아 있는 자를 동포로 인정하기 때문에 호적을 지닌 2% 정도의 동포들 외에는 여전히 동포로 인정받을 길이 없습니다. 또 호적이 있는 경우도 ‘사증발급지침’을 개정해 ‘한국에 50만 불 이상 투자한 기업에 근무하는 기업의 임직원에게 사증을 발급한다’는 규정을 두는 등 문제가 심각한 상태입니다.  

작년 9월부터 11월초까지 법무부를 대상으로 법무부 안에 대한 논쟁을 했었죠. 10월 중순부터는 국회가 얼마 안 남으니까 집회도 해야겠고 동포들도 법개정운동의 대열로 끌어내야 했죠. 한 달 사이에 불법체류 중국 동포들이 차별을 반대하면서 최소 일, 이천 명 이상 모이는 집회를 4주간 연속으로 개최하고 수 만장의 동포법개정 촉구집회 전단, 소식지 등을 배포하기 위해 새벽 첫 지하철에 피곤한 몸을 싣고 서울, 안산, 일산, 수원, 부천 등지를 찾아가 직접 전단을 배포했습니다.  

법무부 안은 그런 가운데 11월 국무회의를 통과했죠. 저희는 그 과정에 전혀 힘을 쓸 수 없었습니다. 11월 15일부터는 법무부의 불법체류자 전원 강제추방에 맞서 84일간의 길고 힘든 농성이 한국교회 100주년기념관과 기독교연합회관에서 약 400 명의 동포들이 농성에 돌입했습니다.  

이경태 : 헌법재판소 유권해석과 관련해 재미있는 일이 있습니다. 사실 재외동포법 통과에는 헌법재판소의 공로가 크다고 할 것입니다. 법무부가 시행령개정으로 다 해결된다는 식으로 언론플레이하는 것을 보니까 잘못하면 법개정이 필요 없다는 오해가 퍼질 것 같아서 저희 사무실에서 헌법재판소에 공문을 보냈죠. 시행령개정만으로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가 충족되는가라고 공식질문을 했고 헌법재판소가 유권 해석을 하여 직인을 찍어 공문을 보내주었습니다. 그래서 법무부와 싸울 근거가 생긴 겁니다.  

사회자 : 예민한 얘기지만 정리하는 마당에 얘기를 안할 수가 없습니다. 서경석 목사의 국적포기 운동이 법개정시한인 12월을 앞두고 전개되어서 언론은 이것만 보도하고 그래서 법개정운동을 하는 분들을 힘빠지게 했는데요. 김목사님께서 그 과정을 잘 아시지요?

김해성 : 작년 9월 서경석 목사께서 만나자고 해 조선족교회를 찾아 갔었는데 “지금 정부가 4년 이상  체류자를 다 내보내려고 하는데 4년된 사람들이 교회의 중책을 맡고 있다. 다 나가면 교회 문을 닫아야 하는 지경이다. 먼저 중국대사관에 국적포기서를 제출하고 그 다음에 법무부에 국적취득서를 제출하고 안 받아줄 터이니 헌법소원을 내자. 소송을 제기하여 종결될 시까지 이삼 년은 출국을 유예받을 수 있으니 함께 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혼자 만류해서는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집단으로 설득을 하고 말려볼 심산으로 집단토론을 제안했어요. 재외동포단체 책임자들과 재외동포학자, 목회자와 중국동포들, 법조인과 관련자들을 초청하여 대화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중국동포교회 4층에서 간담회를 열었죠. 재외동포 재단 이광규 이사장, 임광빈 목사, 정대화 변호사,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선교국장 박신호목사, 중국동포 등 40여명이 모여 토론이 시작됐습니다. 결과적으로 서목사께서는 재외동포법으로는 안된다는 주장이었고 한편에서는 재외동포법 개정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대체적으로 안하는 게 좋다는 결론이었습니다. 그래도 안심이 안돼 중국의 입장은 어떨지 가늠을 해보자고 해서 한국에 와있는 중국당국 책임자들을 조선족교회 목사님, 저와 몇 분이 함께 만나게 되었죠. 만일 국적포기나 취득운동이 벌어지면 중국정부는 어떻게 판단할 것이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결혼해서 오는 사람들. 남한 출신 1세대와 미혼자녀들이 국적취득을 계속 하고 있지 않느냐. 그건 아무런 문제가 안된다. 그러나 정부정책이나 법률 제정 등으로 국적포기 등을 대대적으로 전개한다면 참을 수 없을 것”는 답을 들었죠. 저희는 말릴 수 있을 만큼 만류하고 협의했어요. 그런데도 서목사 단독으로 국적취득운동을 시작했고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을 하니까 결국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 찾기운동’으로 바꾼 거죠. 결국 재외동포법 개정운동에는 엄청난 혼선을 가져왔고 시민단체, 동포단체들끼리 싸운 것처럼 언론에 비춰졌음도 사실이구요.  

사회자 : 이번 일로 서목사님께서 사회운동 지도자로써 타격이 있을 것같습니다만.  

임광빈 : 저는 이 부분을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면 안될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이번 국적포기 또는 고향에 와 살 권리찾기운동을 통해 중국사회에서 조선족 동포들의 입지가 매우 난처해졌고 심지어 조선족이 배신자처럼 보여지는 측면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단순히 강제출국 대상자를 보호할 목적으로 시작했다가 궁극적으로는 자기 미화를 위해 운동논리로 끌고 가니까 정말 운동이라는 착각에 빠진 거죠. 명분과 목적이 다르고, 단지 몇 천명의 이해 관계 위해 대변하다가 200만 동포 사회를 혼란과 어려움으로 몰고 간 것이 과연 운동이냐는 것이죠.  

사회자 : 서목사도 넓게 보면 우리의 한 부분이죠. 그러니 그를 비판하는 것은 비판에 머물지 않고 반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교수나 언론인등 중국의 조선족 사회 지도층이 재외동포법 개정문제에 수수방관하고 있었던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김해성 : 한국의 일부 지식인들은 오히려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일제 식민통치하에서 굶어죽지 않기 위해, 또는 강제징용이나 정신대를 피해서, 뺏긴 나라를 찾겠다고 목숨걸고 싸운 이들은 우리의 동포가 아니라는 법률 개정운동을 한다는데 거의 반응이 없었어요. 시민단체들도 맹반성을 해야 하구요. 국회에서도 조웅규의원을 비롯한 몇 분 빼고는 말고 관심도 없었어요.

사회자 : 이번에 어렵게 재외동포법 개정안이 국회본회의에서 통과됐는데도 불구하고 주요일간지에서는 이 소식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는데요. 그 의미를 크게 보지 않는 것일까요? 어떤 동포는 결국 선언적 의미가 있지 시행령이 고쳐지지도 않았고 월말까지 자진 귀국해야 하는 조건에도 변화가 없지 않느냐 이런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이경태 : 저도 그런 전화 많이 받았습니다. 실질적으로 엄밀히 보면 시행령이 살아있어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의명분이 달라졌죠. 동포법 개정을 계기로 700만 재외동포 시대에 맞게 재외동포 정책 전반을 재점검하고 한민족의 시대를 여는 중요한 디딤돌을 놓은 것이라는 의미를 찾았으면 합니다.  

임광빈 : 이제 시행령 뿐아니라 규칙 등이 평등하게 적용이 될 수 있도록 그걸 거부할 명분이 없어졌구요 중국, 러시아동포들에게만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독소조항 개정요청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과거처럼 노골적으로 차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회자 : 앞으로 남은 과제를 정리해봅시다. 국무총리하고도 면담을 했다고 들었는데 앞으로도 법개정이 됐으니까 불법 체류자 사면운동에 대한 얘기를 해보지요.

임광빈 : 동포법 개정과 걸맞게 정비하는 것들이 필요하죠. 시행령, 규칙,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규칙, 사증발급 지침 등 다섯 가지 정도를 손봐야 되겠더라구요. 지난주부터 사면신청을 받고 사면촉구 1차 대회를 시작했고 이번 주부터는 개정 축하 및 사면촉구 2차 대회와 한국교회 중국동포 사면 청원을 위한 운동본부 발족식을 합니다. 참정권 문제, 동포문제, 권리찾기나 이런 문제들이 민족주의, 국제주의의 벽이 먼저 뛰어넘게 하는 것으로 출발돼야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장 몇가지 현안보다 새로운 한민족 공동체 인식 속에서 운동을 펼쳐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김해성 : 이번 재외동포 개정은 통쾌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무국적 동포, 시행령 개정, 한국내 불법체류동포 등 세가지 시급한 문제가 해결돼야 합니다. 우선 첫 단추는 꿰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에게는 700만 동포를 지원하고 관리할 주체가 없습니다. 교민청이나 재외동포청이 만들어지든지 해서 정부에서도 체계적으로 함께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리 = 김진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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