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드릴 물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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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드릴 물건이 있습니다”
  • 이현아 기자
  • 승인 2011.09.30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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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교기 전달한 박종성 얼바니한인회 이사장

60년 전 소실된 교기 전달 위해 방한
28일 서울수복 기념행사서 깃발 전해


박종성 얼바니한인회 이사장

“몸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아 행사에 나가지 말까 생각했어요. 그날따라 날씨도 흐리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죠. 아내가 가지 말라고 말리는데, 어쩐 일인지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행사에 갔어요”

박종성 얼바니한인회 이사장은 6월 22일 참석했던 한국전참전미해병대전역장병 모임을 기억해냈다. 한인회 관계자들도 여럿 참석하기로 한 행사였다. 막상 행사장에는 궂은 날씨 때문인지 박종성 이사장이 유일한 한인 참석자로 자리를 지켰다. 박종성 이사장에게 슬그머니 다가온 키가 큰 미국인 르 피버씨는 말했다.

“제가 드릴 물건이 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미국인이 무슨 용무로 자신을 찾는지 궁금했던 박 이사장은 그 미국인을 따라가 쇼핑백에 담긴 물건을 들여다보았다. 오래돼 낡고 빛이 바랜 천이 접힌 채 담겨 있었다. 그것은 바로 1950년 9월 28일 서울수복작전 때 사라진 연희전문학교의 교기였다.

“인민군이 교기를 떼 내 도망가는 것을 빼앗아 왔다고 하더군요. 61년이나 보관하고 있던 것인데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요. 전달할 사람을 찾던 차에 행사장에서 절 만난 것이죠. 알고보니 20여년 전 6·25 참전용사 모임에서 스치듯 만난 인연이 있었어요. 집도 가까운 곳에 있어 지금은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우연히 연희전문학교 교기를 지니게 된 미국인 참전용사 르 피버씨는 60여년 동안 교기를 보관해 왔다. 그러다 최근 아내의 조언으로 깃발을 주인에게 돌려주자고 마음먹은 것. 하지만 그는 한국과 연고가 없어, 미 참전용사동지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종성 이사장에게 물건을 전달했다.

박 이사장은 6월 깃발은 전해 받은 뒤 4개월이나 깃발을 보관하며 연대 측에 깃발을 전달할 방안을 모색했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지인을 통해 연세대 측과 연락이 닿았어요. 총장님이 직접 감사하다는 메일을 보내셨더군요. 귀중한 무형유물을 전해 받게 돼 기쁘고 반가운 일이라고요. 한국으로 와 줄 수 있겠느냐는 요청에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어요. 의미가 있는 일이니까요”

르 피버씨(사진 왼쪽)와 박종성 이사장 부부가 함께 깃발을 들고 있다.


르 피버씨와 함께 깃발을 전달하는 역사적인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방한 일정을 기획한 박종성 이사장 내외. 그러나 출발 날짜를 앞두고 급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인해 르 피버씨가 일정을 취소하게 됐다.

“직접 집으로 가 상황을 봤어요. 도저히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본인도 무척 안타까워 했답니다” 

깃발을 전해 받은 인연으로 박종성 이사장과 르 피버씨는 어느새 끈끈한 우정을 나누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깃발이 연세대로 전해지기까지의 과정이 모두 하나님의 섭리가 아닌가 합니다. 피버씨가 자신과 관계없는 물건을 60년 동안이나 간직해 온 것도 그렇고, 하필이면 그 물건이 제 손에 들어온 것도 그렇지요”

60년 전 소실된 깃발이 미국에서 발견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깃발에 눈독을 들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60년 역사가 깃들 물건이니만큼 그 가치가 짐작될만 했던 탓이다.  그러나 박 이사장은 꿋꿋한 신념과 선의로 깃발을 반드시 서울로 공수하겠다는 각오를 잃지 않았다.

“골동품이다보니 물건을 팔라는 사람도 있었어요. 사실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 손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었겠다 싶더군요. 그랬더라면 그 물건이 어떻게 한국으로까지 전해질 수 있었겠어요”

박종성 이사장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안도의 심경을 전했다. 깃발은 28일 무사히 모교에 전달됐다. 연세대는 깃발을 전시해 학교의 생생한 역사를 알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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