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와 산업연수생제도, 무엇이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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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허가제와 산업연수생제도, 무엇이 옳은가?
  • 서경석
  • 승인 2003.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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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국회는 일정 기간 고용허가제와 산업연수생제도를 병행하는 것을 조건으로 해서 고용허가제 도입을 결의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과 언론은 고용허가제와 산업연수생 제도의 병행을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회일각에서 주장하는 대로 고용허가제가 되면 마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맞는가하는 문제는 엄밀한 검토를 필요로 한다. 사실 그동안 고용허가제의 내용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조차 그리 많지 않았다. 고용허가제 도입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지금의 산업연수생제도가 송출비리 등의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여 그 반작용으로 무조건 고용허가제를 지지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이번에 고용허가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고용허가제냐 산업연수생제도냐 하는 문제를 다루는 세미나가 많이 있었지만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된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용허가제가 국회를 통과하기 직전까지 중소기업협동조합은 고용허가제가 되면 중소기업이 다 망한다고 협박했고 노동부는 고용허가제가 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처럼 선전했다.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필자는 우리사회의 토론문화의 후진성에 크게 낙심했었다.

그런데 사실은 산업연수생제도와 고용허가제의 차이는 큰 것이 아니다. 도대체 봉급산정방식의 차이(이를테면 한쪽에는 퇴직금이 있고 다른 쪽엔 없다)나 명칭의 차이(한쪽은 명칭이 노동자이고 다른 한쪽은 연수생이다. 그러나 연수생도 법적으로는 노동자로 인정될뿐만 아니라 현행 산업연수생제도는 1년만 연수생이고 나머지 2년은 노동자신분이다.), 혹은 관할기관의 차이(한쪽은 중기청이고 다른 한쪽은 노동부다.)가 뭐 그렇게 중요하겠는가? 따지고 보면 부처간 밥그릇 싸움일 뿐이다.

한국어 시험제도의 도입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산업연수생제도든 고용허가제든 그 제도 안에 송출비리 근절방안과 불법체류 근절방안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산업연수생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거액의 송출비리를 방치해 왔다는 점이다. 송출비리는 한국에 오려는 사람은 많고 입국숫자는 정해져 있을 때 발생하는 불가피한 프리미엄이다. 별도로 노동자를 선발하는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반드시 돈을 많이 내는 순서대로 오게 되어있다. 그래서 조선족은 1인당 천이백만원, 동남아인은 4백-6백만원의 돈을 내고 입국해 왔다. 그리고 그 돈은 송출국 권력자, 송출업체, 브로커가 나눠 가졌고 그 중 일부는 한국에도 상납되었다.

송출비리는 한국어시험을 쳐서 성적순으로 선발하면 간단히 없앨 수 있다. 한국어시험제도는 우리에겐 너무도 좋은 제도다. 이 제도를 채택하면 그 순간 동남아에 한국어 붐이 불고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은 한국어를 회복하게 된다. 그리고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우수한 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귀국할 때는 한국기업의 파트너가 된다. 한마디로 국운이 트이는 개혁이다. 그러나 동남아 각국은 이 개혁을 강력히 반대한다. 송출비리가 권력자에겐 가장 큰 수입원인데 그것이 깨끗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실 중기협이 연수생제도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한국어시험제도를 도입해서 비리를 깨끗이 근절하는 방안을 추진했었다. 그러나 그 후 다시 산업연수생제도가 존속할 수 있게 되자 그 움직임은 꼬리를 감추고 말았다. 송출비리 근절은 중기협으로서는 죽기 직전이면 모를까 보통 때에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은 개혁인 것이다.

그러면 고용허가제는 송출비리 근절방안이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없다. 이제까지 발표된 바에 의하면 고용허가제는 송출국 송출기관이 노동자를 선발할 때 한국어능력과 기능수준을 고려하여 도입수의 일정배수를 선발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과거 송출업체 대신 정부기관이 송출업무를 담당한다고 해서 비리가 사라지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리고 시험을 쳐서 점수가 딱 나오기 전에는 고용허가제도 반드시 비리가 발생하게 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지금처럼 산업연수생제도와 고용허가제가 일정기간 공존하게 된 것은 차라리 다행스럽다. 두 제도가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한국어시험 성적순 선발방법을 채택하는 제도가 살아남게 해야 한다.

불법체류자 신분을 합법화하는 대안 필요

두 제도를 비교할 때 또 한가지 기준은 불법체류자 근절방안이 있는가의 여부다. 산업연수생제도는 이 부분에서도 낙제점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수많은 산업연수생들이 일터를 떠나 불법체류를 위해 잠적했다. 그러면 고용허가제는 불법체류 근절방안이 있는가? 이번 9월 법무부와 노동부가 근절방안을 발표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실패직전에 있다. 불법체류근절에 성공하려면 불법체류자의 대부분을 합법의 길로 유도해야 한다. 그리고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해서 불법체류자는 '잘못된 제도의 희생자'가 아니고 '범법자'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 후 불법체류자를 고용하는 고용주에게 혹독한 벌금을 매겨 나머지 1-2%의 불법체류자가 한국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러면 불법체류는 완전히 근절된다. 그런데 이번 불법체류 근절대책은 노동자에게 현실과 동떨어진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고, 신고업종도 제한하고 딱한 사람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어 이대로 가면 11월 15일까지 신고가 다 끝난 후 거의 사분의 삼의 동포들이 다시 불법체류를 하게 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고용주에게 혹독한 벌금부과를 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다시 불법체류자의 천국이 된다.

이런 모든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관리들의 무능력과 권위주의에 있다. 제도를 최종적으로 확정하기 전에 관리들이 NGO와 사전협의를 했더라도 이런 실패는 방지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반드시 정책실명제로 가야하고 정책이 실패할 때에는 관리들이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내년에 고용허가제를 실시했을 때 다시 송출비리가 발생하면 이번 고용허가제 추진 기획단장은 사표를 써야 한다. 또 이번에 불법체류를 합법으로 전환하는 일에 실패하게 되면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장, 노동부 고용정책심의관은 사표를 써야 한다. 책임지는 행정만이 반복되는 실패를 막을 수 있다.

서경석(경실련상임집행위원장)

- 순서 -
(1) 거꾸로 가는 외국인 노동자정책
(2) 고용허가제와 산업연수생제도, 무엇이 옳은가?
(3) 동포들은 왜 한국에 오는가?
(4) 재외동포법이 해답인가?
(5) 조선족동포가 원하면 한국국적을 주자.
(6) 조선족 동포사회의 미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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