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욱/ <씨네21> 기자 lewook@cine21.com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이자 배우가 된 기타노 다케시 주연의 <피와 뼈>를 보면서 왜 하필
박정희가 떠올랐을까? 최근 논란이 된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때문이었는데, 연상된 이미지는 그 총알의 주인이 경호원이었느냐, 문세광이었느냐가
아니었다. 당시 기록필름을 보면 박정희는 자기 대신 총을 맞고 쓰러진 아내의 안위에 상관없이 꿋꿋이 8·15 기념식장을 지켰다.
재일동포 양석일의 소설을 영화화한 <피와 뼈>의 김준평이 딱 그런 아버지이자 남편이며 사내다. 양석일의 아버지의 삶을 중심으로
재일동포 1세와 2세의 거친 속살이 여과없이 투사된다. 1923년 제주도에서 일본 오사카로 향하는 배 위에서 ‘재팬 드림’을 꿈꾸며 맑게 웃던
그 청년은 10여년이 지난 뒤 괴물이 돼 있었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그는 저항하는 아내를 쓰러뜨려 강간한다. 마치 겁탈로 자기와의 결혼을
성사시키고 아들과 딸을 낳게 했던 먼 과거처럼. 김준평의 에너지는 여자와 돈에서 생성되고 발산된다.
친척들을 끌어들여 어묵
공장을 차리고 직원들을 노예처럼 혹사시키며 떼돈을 모은다. 절반 가까이 직원이 줄어도 나머지가 그 몫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반항하는 자에게
돌아오는 건 무자비한 폭력뿐이다. 실제로 185cm의 키에 100kg가 넘었던 그는 나무 곤봉을 휘두르며 자기 주변을 무조건 굴복시킨다. 그
곤봉과 주먹으로 자기 뜻을 따르지 않는 배다른 두 아들을 개잡듯 잡으며 딸을 계단에서 자빠뜨리면서도 그의 얼굴에는 미세한 감정의 동요가 없다.
벌어들인 돈으로 자기 집 골목 한켠에 다른 집을 구해 딴집 살림을 꾸리고, 그 여인이 뇌종양으로 식물인간이 되면 또 다른 여인을 들여 노리개로
삼는다. 그리고 자기 분신을 줄줄이 낳게 한다.
영화는 김준평이 왜 그런 인간이 됐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이국 땅에서 식민지의 남자로 생존하는 법을 그렇게 체득했을 거라고
짐작케 한다. 여자든, 돈이든 소유하고 쌓아놓아야만 잠시나마 욕망이 채워지는 이 사내의 말년은 황량하고 초라할 수밖에 없다.
자기 분에 못 이겨 반신불수가 된 이 사내는 그토록 집착했던 여자와 아들에게 버림받고 저주받으며 북한으로 건너간다. 이
대목에 대한 재일동포 최양일 감독의 추측이 걸작이다. “김준평의 성격상 그가 사상적으로 사회주의를 지지했던 게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는 모든 게
공짜다’라는 오해를 안고 간 게 아닐까 싶다.” <피와 뼈>를 채운 수많은 일본 배우들이 진득진득한 사실적인 질감으로 당시 오사카
골목을 재현하는데 한국인들의 가족사와 풍습까지 고스란히 되살린다. 그런 한국인의 가족과 풍습이 김준평의 행태에 방관자 또는 암묵적 동조자라는 게
씁쓸하지만, 박정희와 김준평의 시대가 확실히 저물고 있다는 점이 안도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