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장영주 꿈꾸는 천재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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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장영주 꿈꾸는 천재소녀
  • 이석호 기자
  • 승인 2010.08.26 1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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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바이올리니스트 김윤희 키운 유소방 사무총장
“10년이 넘게 딸이 받는 레슨을 함께 들었어요. 교수의 농담, 헛기침 하나까지 빼곡히 적혀있어 노트가 시커멓게 됐지요. 윤희를 가르치는 폴라첵 교수도 제 실력이 전문가 뺨칠 정도라고 말하더군요."

유소방 오스트리아 한인문화회관 사무총장은 자신의 이름보다 김윤희의 엄마로 더 유명하다.

첫째 딸 김윤희가 '제 2의 장영주'로 불리며 음악계에서 기대를 한 몸에 받고있어서다.

모차르트처럼 3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잡았고, 역대 최소로 4살 때 그 어렵다는 비엔나음대에 입학했다는 그의 딸.

항상 '최연소'라는 타이틀이 꼬리표처럼 붙어다니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린다.

김윤희는 5살 때 헝가리 사바리아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데뷔했고, 노르웨이 트론하임 심포니오케스트라(13세), 슈트트가르트 필하모닉(15세), 몬테카를로 오케스트라(16세), 마드리드 국립방송오케스트라(17세) 등 매년 신 기록행진을 펼쳐 해외 언론을 놀라게 했다.

이러한 이유로 모나코-마땡, CNN, 프랑스 TF1 등 해외언론들은 "‘신동’의 출연"이라며 그의 활약상을 대서특필했다.

그렇지만 현재의 김윤희가 있기까지 어머니의 헌신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게 사실.

“조수미 엄마는 '슈퍼' 갈 때 조차 훈련을 위해 연습실을 잠가 두었다죠. 하지만 저는 스파르타식으로 시키지는 않았죠. 늘 곁에서 지켜주고 함께 공부하는 방법을 택했지요.”

사실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성악을 했던 음악인.

자신이 포기한 음악을 자식들에게 가르치고 싶어 "딸이 태어나자 서울에서 고향인 제주로 이사를 했다"고 말했다.

제주도 자연환경이 음악적 영감을 일으키기에 좋다는 생각 때문.

4살때 비엔나 폴라첵 교수에게 입학을 제안 받았을 때도 주저하지 않았다. 남편과 떨어질게 뻔하면서도, 낯설고 물설은 ‘오스트리아’로 무작정 떠나는 모험을 결정했다고.

“엄마 마음을 이해했는지 우리 딸이 지금까지 한번도 바이올린을 놓은 적이 없어요. 공항에서 조차 베이비 룸에서 연습을 할 정도였지요.”

이렇게 말하는 그는 이번 부산에서 열리는 KOWIN 대회에 주요 참가자로 선정됐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딸의 명성이 때문이 아니라, 오스트리아 한인문화회관을 설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공로가 인정받았다고.

“오스트리아에는 2500여명의 교민 중 1500명이 유학생이지요. 대부분이 음악을 위해 이곳으로 온 사람들이지요. 이들을 위한 콘서트홀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지요.”

이렇게 말하는 그는 "2008년부터 시작된 건립모금 운동에 550여명이 동참하고 있다"면서 유럽 한인들의 문화공간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한다.

“젊었을 때 제주 KBS·MBC 아나운서 등을 했던 저는 항상 가슴 한편에 음악에 대한 갈증이 있었거든요. 우리집안이 실력이 나은 동생을 성악가로 뒷바라지 해야 했기에 저는 음악을 포기해야 했어요. 한인문화회관 건설 사업은 저처럼 음악을 위해 살고 싶은 보다 많은 분들의 꿈이 실현될 수 있는 공간이 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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