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까마귀 둥지(연재10)
icon 까마귀
icon 2005-11-28 01:57:02
첨부파일 : -
연재10




- 무슨 아이디로 등록할까.

아이디 하나 만드는데 공이 많이 드네요. 할멈은 필요없지만 ‘영감’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비현실적인 사이버 공간이지만, 특별한 목적을 위한 이름짓기는 학문이자 예술입니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가 손녀의 이름을 지을 때, 손녀의 사주팔자가 시계추처럼 왔다리 갔다리 합니다. 이름을 명월이라고 지으면, 커서 왕서방에게 시집가게 되고, 갑순이라고 지으면, 그 대상은 갑돌이밖에 있겠습니까.

- 진실미가 나는 아이디, 로맨틱한 아이디, 남성 호르몬 냄새가 문문 나는 아이디, 여자의 눈길을 끌수 있는 잘 생긴 아이디, 어디 그런 아이디가 없을까.

참고로 여기 저기 눈질하니, 저속적인 스타들의 이름만 눈에 띄우네요. 안재욱, 장동건, 현빈, 비가 온다, 대충 이런 건데, 그 사이에 똥팔이 친구가 나란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 먼 옛날에 올린 광고인가 봅니다..^^

- 무슨 아이디로 등록할까.

머리도 쉬울 겸, 담배 한대 꼬나물고 창밖으로 머리를 돌리니, 은행나무 가지 위에 웬 까만 놈이 까만 눈을 떼록떼록 거리며 나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재수없이 까마귀란 놈입니다.

- 까욱, 까욱, 저 놈은 왜 나만 좇아다니는 거지.

괜히 일본으로 유학가 가지고, 까치와는 인연이 얇지만, 까마귀와는 깊은 인연이 되었습니다. 내가 죽으면 나의 영혼은 저 놈의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까마귀’ 역시 옛날부터 자주 쓰는 아이디입니다. 어딘가 심술굳지만, 장가 못간 놈, 이해하시지요..^^

언젠가 연변채팅방에서 만났던 그녀들이 생각납니다.


*


일본에서 돌아와 얼마 안되었을 때입니다. 북경에 집을 잡고 인터넷을 설치하고, ‘까마귀’란 아이디로 난생 처음 연변채팅방에 들어서니 나와 말을 거는 아가씨가 있습니다.

까치: 까마귀라, 혹시 일본에 있는 분이세요?

까마귀: 네.

까치: 그래요. 저도 요즘 일본유학수속을 하고 있어요. 우리 일본어로 채팅해요.

까치와 까마귀는 일본어로 채팅을 시작했습니다. 까치는 열심히 까마귀와 일본에 관해 물어봅니다. 까마귀도 열심히 까치의 질문에 대답했습니다.

까치는 연길아가씨였습니다. 대학시험에 붙었는데 별로 좋은 대학이 아니어서 단념하고 부모님의 의사에 따라 일본유학을 선택한 거였습니다.

까치와 까마귀가 이젠 친해질까 하는데, 우리 사이에 끼어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일본어 잘 하는 제비아가씨입니다.

제비: 안녕하세요. 저도 끼워주시면 안 될까요.

두 말 할 거없이 찬성입니다. 그래서 세사람이 같이 채팅을 하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제비아가씨는 나고야에서 유학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교토에 있다고 하니, 먼 거리가 아니니, 그녀는 한번 교토에 놀러오고 싶다고 했습니다. 나도 시간 나면 나고야에 가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제비는 저의 메일주소를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까치도 일본 가면 도움을 받고 싶다며 메일주소를 달라고 합니다. 우리 셋은 메일을 교환했습니다.

이튼날, 나고야의 제비아가씨에게서 메일이 왔습니다. 이번 주말에 시간이 있으니 교토의 금각사를 보러 가고 싶은데, 시간이 되면 안내해 줄 수 없냐고 말입니다.

그래서 할 수없이 실토를 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일본에서 돌아와 현재 북경에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작가가 되어 다시 일본으로 갈 거라고 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도 제비에게서는 끝내 답장이 없었습니다.

연길에 있는 아가씨도 재밌습니다. 겨울에 연길로 설 쇠러 가는데, 만나자고 하니, 자신은 일본에 있는 남자를 찾고 싶답니다.

이와 같이 요즘 세상에 의외로 위대한 인물들이 무시당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ㅠㅠ

- 까옥, 까옥~~
2005-11-28 01:57:02
61.32.189.16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