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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의 전통음악을 지키는 한인예술인 이정자선생님
icon 사할린사랑
icon 2007-02-06 21: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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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동과 정열의 국악인
성 명: 이정자
출 생: 1942년 3월 21일생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시
최종학력: 사할린 음악전문학교 졸업
경력사항: 구락부 지도교사, 문화회관 지배인, 조선문화센타 무용 지도강사 등 역임
평양과 한국방문으로 국악의 전수를 다수 익힘
제3회 재외동포예술콩쿨에서 금상수상
현재는 에트노스 무용 주임으로 재직 중
가족관계: 삼남과 본인

오늘은 사할린의 한글보급의 선생님이 아닌 러시아에서 이름난 예술학교에서 한국의 국악과 조선무용으로 조선의 전통음악을 지키고 가르치는 동포2세인 이정자 선생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러시아 전역에서 실시하는 각종 콩클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조선의 전통음악을 알리고 한민족의 문화를 계승하여 그 뿌리를 이어 온 에스노스트 조선무용과 이정자 선생님 또한 한글보급을 알리는 선생님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전통음악을 지키는 파수꾼이기에 유즈노시에 위치한 에스노스트 예술학교을 찾았습니다.

근간에 상당히 추워지리라는 사할린 날씨가 생각 보단 춥지 않아서 에스노스트 예술학교 가는 길은
즐거움에 들떠 있었다.
시내 한복판 구석에 자리한 학교는 학생들의 재갈거림이 입구부터 들려 오고.., 이층으로 안내한 선생님을 따라 계단으로 들어서는 순간 고막을 때리는 장구소리에 으레 이정자 선생님의 활동모습이 눈에 선하기만 하였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연습 중인 사물놀이 반 학생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를 합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세요. 춥진 않던가요?'
'조금.., 그리 춥진 않았습니다.'
'러시아 학교가 다 그렇지만 에스노스트 예술학교는 아담한 분위기입니다.'
'마치 선생님 같습니다.'
'뵙게되니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러네요...'
'참 수업 중이니 하던 일마저 하고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예...그렇게 하지요.'
수업과정을 참관하면서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핀 바 선생님과 학생들의 연습과정은 강도 높은 반복연습으로 진행되었으나 수업 내내 선생님께 질문으로 응하고 웃음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이 신선하기만 했습니다. 한국 같으면 벌써 녹초가 되었을 아이들일 텐데 1시간 30분을 쉬지 않고 궁채와 채로 장구 치는 모습에 배우겠다는 일념에 그저 놀라기만 하였습니다.
"라스라스드바 쿵딱쿵♪ 쿵딱쿵♪ 통딱쿵딱딱,바릴라?"
한마디로 진지하고 열성적인 땀의 결정체로 이루어지는 수업과정이었습니다.
참고로 에트노스 예술학교는 7년 과정이나 5살 이후의 취학생은 10년 과정으로 교육을 실시하며,
국악, 사물놀이, 부채춤, 소고춤, 기타 전통음악에 포함된 가야금 등에서 현대음악까지 두루 설력 하도록 하는 러시아에서도 그 이름이 명명한 학교입니다.
이에 학생수(정원200명)에 비해 교사(고전.현대음악60명)가 많은 것도 하나의 예를 둘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상류층에 속하는 편이며 부모들 역시 등하교에 따라 학생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습니다.

<다음은 에스노스트 예술학교 김정자선생님과 일문일답>
◎선생님은 원래가 무용이 전공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저의 전공은 원래가 문화회관 지배인이었습니다. 또 서클단체의 진행담당자로 시작하여
에트노스 고전무용을 맡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 본교 무용과 교사로 있었는지요?
"그 때가 언제인가요?..일반학교, 구락부, 문화회관 지배인과 조선문화센타 무용담당자로 있을 때
본교 교장선생님이 찾아와 귀 학교의 조선무용과 교사가 필요하다 하기에 몇 번을 망설이다 승낙
하였지요."
"첨 2년 정도는 무보수로 일한 적도 있어 생활하기가 어려웠답니다. 당시 교사들의 월급수준은 형편
없었답니다. 월급으로 아파트 세내고 먹고살기란 턱없이 부족하여 다른 방면으로 생활을 유지하기도
하였지요. 그런 가운데 1995년부터 본 에트노스예술학교 무용교사로 근무 하였습니다."
'저도 러시아에선 교사, 의사 분이 월급이 적은 이유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자고로 보람과 긍지를
갖고 미래를 향한 교육과 인술의 선두주자에겐 많은 보수의 월급이 뒤따라야 하는데 유독 러시아만
월급이 적습니다.'
◎에스노스트 예술학교는 주로 조선무용으로 평가되어 러시아 뿐 아니라 다국의 콩클에서 많은 우승을
하였습니다. 그 비결은 무엇이신지요?
"항상 학생들에게 일러주기를 성공의 비결은 너희와 내가 함께 결과를 완성시키지 못하면 노력의
대가는 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천박한 환경 속에서 이끌어 갈려면 선생님과 학생들이 작품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여야 하니까요..."
"즉 50대 50의 결실은 학생들과 선생님이 피나는 노력과 몇 천번 이고 되는 데까지 해야 하는
반복되는 연습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조선 전통음악학과는 언제 개설 되었으며 어느 분의 제안으로 문을 열었는지요?
"1995년 조선무용과는 교장님께서 끈질 이게 저를 찾아와 문을 열었고 러시아과는 1990년도에
문을 열었습니다"
◎교사가 되고자 했던 가장 큰 원인은?
"아무래도 교장선생님의 추천이 컸던 것 같습니다"
◎학교의 역사와 현재 학급, 전체 학생수는 몇 명이나 됩니까?
"1990년 개교하여 1995년 조선무용과를 통합 하였으며 200여 명의 학생들이 현대음악과 고전무용을
배우고 있습니다."
◎전통음악을 가르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와 가장 보람이 컸던 때는?
"초장기엔 제대로 된 악기하나가 없었습니다. 손과 발을 맞추어 장단을 익히고 악보도 없는 상황에서
수업을 임하였던 때를 생각하면 악몽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우리의 힘으로
소고춤을 만들었답니다. 보람이요?..모스크바 국제 콩클에서 상을 탔을 때, 제자들과 얼싸안고
펑펑 울었을 때가 가장 보람이 컸습니다."

선생님은 잠시 목이 메여 한참이나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짧은 식견으로도 국악과 창의 입문이 엄청난 인고가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학생과 선생님의
수업과정은 늘상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만 하는 고통의 연속이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에스노스트 예술학교는 현재까지 북한 예술인의 파견근무로 그 맥을 이어오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무용의 장점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곡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1995년도 이후 한국과의 수교가 이루어져 많은 한국 국악인의 도움도
있었고 예전의 한국교육원 도움도 있어 초기부터 한국의 국악을 접목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김진환 강사님의 추천으로 사물놀이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북한무용의 장점은 음악,작품,의상의 3대 요소가 결합된 군대무용과 같은 화려한 몸 동작입니다."
◎근간에 들어서 한국예술단체의 사할린공연으로 한국의 국악을 소개 받았습니다. 한국의 국악과
북한의 민속예술의 차이점은?
"한국의 국악은 전통적이면서 고전적인 면이 다분하고 북한의 무용은 현대적인 몸짓을 감미 한
무대에서의 즐거움을 주는 화려한 의상으로 인한 춤사위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부채춤은
인기가 정말 좋습니다. 나 역시 문선명 씨의 통일교인가요?.. 그 소속인 '리틀엔젤스 공연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전통음악을 유지 발전 시키는 것은 어떤 것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생각 하십니까?
"첫째는 교사가 부족합니다. 공연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멋진 무용이라고 하지만 가르칠 사람이
없다 보니 학생모집에도 한계가 있으며 둘째는 악기와 악보가 절실히 필요한데 학교의 재정상으론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좀 아쉽습니다. 지금은 제자들이 다시 교원이 되어 가르치는 상황입니다."
◎현재 전동음악을 가르치는데 어려운 점은 없는지요?
"모든 것이 다 어렵습니다. 연습실도 왜소하고 악기도 계속 낡아지고 채, 궁채 등 모든 것이 못 쓰게
됩니다. 나아가 악보도 턱없이 부족하고요...자꾸 목이 부고 귀가 먹어지는 것도 있고요."
'저역시 사할린에 거주하는, 박봉의 월급과 공식적인 지원 없이도 한글보급에 힘쓰는 선생님과 우리의
전통음악을 고수하는 선생님들이 그 어떤 누구보다 자랑스런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에 서운한 점과 꼭 하고 싶은 말(누구든 상관없이)이 있다면?
"특히 아쉬운 것은 없으며 한국 청도에서 우리 학생들과 한국 학생들의 교류가 허물어 진 것이 참
서운합니다. 꾸준히 연결된다면 보다 나은 전통음악을 배우고 익힐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비록 우리의 자비로 첫 한국을 찾았지만 온누리예술단(단장:구상본)의 대대적인 친견으로 여러가지
무용을 체험할 수 있었고 한국공연도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답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악기라든지 공식적인 지원은 없었습니까?
"한 두어 번 정도 있었지요. 숙명가야금연주단이 제공한 악기 5점과 기타 한국인 정성훈 씨가
마련해준 장구 가죽본 등이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위인과 취미는 어떤 것인가요?
"러시아 무용가인 앙상블 베로스까 이골 모이세이예브 선생님인데 작년 100세 일기로 타계
하셨습니다. 취미는 책읽기도 좋아합니다."
◎가장 감명있게 읽었던 책은?
"로만의 오스카르우알뜨입니다. 그의 글귀는 너무 좋아서 액자로 보관하여 보고 있답니다."
◎끝으로 학생들에게 일러주고 싶은 말과 교사로서의 긍지는 어떻습니까?
"게으름 피지말고 머리 속에 장단을 암기해 두어라 말하고 싶고 한 우물만 파라고 일러주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바쁘신 와 중에도 질문에 응해주셔서 대단히 감사 드립니다.'
'선생님이 건강하셔야 한국, 북한의 전통음악을 지킬 수 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좋은 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식사라도 대접하겠다고 하시니 극구 사양하시며..
어둠이 깔린 밤길을 힘차게 걷는 선생님을 보시니 아직도 젊음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내일이면 육순이건만,,,
우슈, 가라데처럼 채를 때려야 하고 장구채는 반드시 7시10분 방향에 있어야 한다는 선생님
말씀이 밤하늘에 맴도는 것 같이 내내 잊혀지지 않습니다.
♬♩덧겹채
2007-02-06 21:22:38
87.251.97.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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