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엄마, 해동요양원 가다.
icon zxvc
icon 2011-07-03 23:20:08
첨부파일 : -
1.
엄마가 인천 해동요양원에 들어갔다. 위약금 천사백이 아까워 이년 채우고
2010년 2월1일인가 나왔다.

바람 불던 지난 가을, 주유소 옆 이층, 해질녘이면 볕이 지겹게 우리던
서향집을 팔고 월세아파트로 이사한 첫 겨울. 2008년 1월에 눈이 많이 왔다.
아이 유치원 가고오는 것이 일이 되었지만, 아내와 다툼이 잦아들고 남쪽으로 난
너른 창 아래 낡은 스팀이 도는 집안은 따듯했다. 엄마는 누나들 전화 등쌀에,
세째누나 닦달에 분평동 현대대우아파트 남향 4층을 팔고 그만 죽어나올
마음으로 요양원에 들어갔다.

'ㅅㅎ랑 연락 안돼서 엄마 죽으면 집 뺏긴데'
'집 판돈은 은행금고에 넣어두면 돼'
'아빠 제사는 내가 모시께'
'요양원이 나 사는데 가깝구, 셔틀버스 매일 다녀, 안에 병원도 잘해놨어'
'죽으면 다 알아서 해준데'

현대대우 4층에선 목련 나무가 보이고, 맞은편 농협 지점장이 아빠 상업학교
후배였다. 아빠는 돌아가기 전 관리비를 자동이체 해놓았다. 죽고나서 아무도
찾지않아 몇날며칠이고 썩어갈게 엄마는 걱정되었다고 했다. 밤낮으로 엄마 엄마
전화를 하는데 요양원 가라고. 딸들 말을 들어야지.

점심때 지나 십정동 동암신동아 아파트에서 해동요양원까지 만오천원에 택시로
갔다. 319호, 서향. 엄마는 옷을 갈아입고 식당에 가 식판을 들고 319호 정해진
자리 모르는 할아버지 할머니 곁에 앉아 낯선 숟가락으로 저녁을 먹었다.

2.
해동요양원은 중증치매 환자들 간병을 위한 곳이었다. 육이오때 대전여고 나와
이화여대 붙었던 엄마는 이년내내 시달렸다.

아빠는 2006년 돌아갔다. 저축과 삼십년넘게 일한 퇴직금, 공무원 연금을 엄마에게
남겼다. 수곡동 상가이층에서 99년 옮겨온 분평동 현대대우 4층 삼십칠평은 남향에
넓어 조용하고 따듯하고 시원했다. 영운동 동사무소앞 목련나무집 살때 들여놓은
썬퍼니쳐 장롱, 몇가지 그림 글씨 책, 산스베리아 화분이 놓여있었다. 모진 시집살이,
딸넷에 아들하나, 외상으로 버티던 때도 지나고 엄마는 처음으로 살아보았다.

'이것들이 가만있으면 집 빼앗긴다고 해서'
'업어키운 생각을 하면 어떻게 이럴수가 있지'
'아빠가 어떻게 참고 모으신 것인데. 보내준다고 할때 받지 그랬어'
'전화 해볼까? 받나 안받나'
'집두 그렇지. 왜 싫다고 했어. 내가 아빠 가시고 일이년도 못지켜서. 그만 살아야지'

밤중이고 낮이고 할아버지 할머니 환자들이 자기 방 찾는다고 문을 달그락댔다.
식판에 받아먹는 음식이 입에 붙지 않았다. 사오십년 집안 세간살이가 너무 쉽게
버려진게 아닌가, 입안이 갈라지고 입술이 부르터 김치를 먹을수 없게 되었다.
세째네 집은 멀고 조그만 간호실에, 물리치료인지 받으러 타고 오가던 미니버스는
비탈진 언덕길에 뒤집어져 허리를 다치고 심혈관 스텐트가 망가졌다. 엄마는
합의금인지 육십만원을 받아 인하대병원 하룻밤 진료비로 냈다.

나오고 싶었는데, 그래서 현대대우 돌아가려 몇번인가 서울사는 동생하고 새
아파트 알아보았는데, 위약금 천사백이 아까워 참아내기로 했다. 세째는 요양원
보증금이 팔천이라며 이천을 가져갔다. 손없는 날 고른다고 이년 채우고 하루더
묶어 하루치 밥값을 따로내고 나왔다. 보증금 육천오백은 한달안에 해준다고
그냥 가라고했다.

3.
엄마가 요양원 나와 사는 개신주공이차 뜨란채는 방마다 형광등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사올때부터 지금까지 깜박깜박했다. 누나들은 나더러 몇차례 집에
가지말라고했다. 나는 가지 않았다.

허리 물리치료 받고오다 왼발이 배수로에 빠졌다. 발목이 부러져 수술을 앞둔
엄마에게 미국 편법이민간 두째가
'아빠 돌아가셨을때 상속포기각서 썼으니까 엄마돈에 내꺼도 있어'
육천불 달라고 했다. 국제전화를 했다. 수술받고 주공이차로 돌아와 햇반 데워
가쓰오간장에 비벼 먹었다.

요양원 보증금은 일년반이 되도록 돌려받지 못하고 새로 산 개신주공이차 십일층은
안뺏겨야하니까 네째명의로 돼었다. 건너 푸르지오 사는 네째는 바쁜지 스물네평
아파트 구석 바닦이 먼지 때로 찌들었다. 철심밖은 발목에 음식쓰레기 버리는것도
일이다.

엄마는 내가 가니까 고맙다고, 올줄 알았다고, 지금까지 우유 쌀 배달시켜
먹었다고 했다.
'닭가슴살 볶아주까. 바나나 먹어보까'
엄마는 먹고싶은 것에 주려있었다. 엄앵란백김치 파프리카 울외장아찌 토마토
닭가슴살 바나나 공원당메밀소바 농심후루룩.

세째가 보호자로 되어있는 요양원 계약서를 내어주지않아 못받고 남은 보증금
오천오백 반환청구소를 하기 어렵다. 요양원 본부장한테 전화하는것도 하루이틀이지.
십일층이 불편해 옮기고 싶은 엄마에게 네째는 '엄마돈 있잖아. 또 사' 아랫턱을
내민다. 외로운지 엄마는 교육방송 나오는 의사들 말에 아닌듯 기대어본다.
프라즈마 디스크 수술, 임프란트.

'이것들은 전화두 않받어'
'연년생이라 업구서 하나 재우면 하나가 울구, 하나 재우면 또 하나가 울구'
'이 손가락 구부러진것 좀 봐. 그렇게 해먹였는데'
엄마는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 지나간 일을 곱씹는다. 엄마방 벽에 딸아이 그림을
붙여놓았다.

4.
두째는 나이 쉬흔에 미국서 생활비 아이들 학자금 대일 궁리로,
세째는 아마 두째 비우 맞춰 미국 가 살아볼 셈으로, 네째는 어쩌면 돈쓰는 일로
엄마를 요양원에 보냈다. 나는 집에 가지 않았다.

신혼살림 내어가는 날 싸구려 옷걸이까지 싹슬이 해갔다, 몇달뒤 신랑이랑 배시시
인사하구간 두째 돌려보내구 아빠는 뜬금없이 'ㅁㅎ 저게 언젠가는 집안 분란을
일으킬것이다'.내가 '가족인데' 하는 말에 '가족같은 소리 하구있네'
허허로이 웃었었다. 나더러 집명의 저축을 정리해놓아야한다고 했다. 돌이켜보아
아쉬운 지경에 이렇게저렇게 말옮겨가며 형제들 이간질해 부모 돈 빼쓰는 것은
아무 일이 아니다.

'아빠가 어떻게 참고 모으신것인데 나한테 욕먹으면서'
'영운동서 이사올때 반찬가게 아줌마하고 울고 그랬어'
'베개 꼬매놓은것 봐. 아빠 퇴직할때 받은 청렴상 태극무늬 금붙이두 저 시집갈때
혼수 열쇠루 바꿔놨어'
'세무서에 장학금 기부하면 아빠 이름나고 좋지. 옳은데 써야하는데'
'김치구 뭐구 저거 엄청 해보냈어'

세째는 엄마이름으로 대출도 받고 이리저리 떼내 한번에 몇만불씩 미국두째에게 송금했다.
어쩌다 찾은 송금장엔 엄마가 보낸사람으로 되어있었다. 엄마의 지친 하소연, 곳곳에
남겨진 흔적과 찾아본 기록들이 보여준 욕망과 욕망에 얽힌 다른 욕망, 사소한 허영,
적극적 위선, 거짓.

엄마는 주공이차 십일층 네째명의 아파트에서 철심박은 왼발목으로 모든것을 받아내었다.
해동요양원 이년 살고나와 도전골든벨 맞추는 대전여고 나온 고집센 인테리 우리엄마는
개신주공이차에 살아있었다.

5.
솔리톤(soliton)은 자연과학 현상 중 보존적(conservative) 분산(dispersion)과 분산적(dispersive)
보존(conservation), 혼돈적(chaotic) 규칙(symmetry)과 규칙적(symmetric) 혼돈(chaos),
또 이런 현상들이 여러겹 쌓여 이루어낸 넓은 뜻으로의 균형, 얕고도 깊은 그 결을 통틀어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공평함과 불공평함이 그런대로 공평히 섞인 세상살이처럼.

늙은 엄마가 중증 치매 환자들 모인 해동요양원에 들어갔다 나왔다. 지구는 오늘도
모르는척 스스로 돌아 낮이 밤이 되었고, 내 딸아이는 조금 자랐고 엄마는 조금더 늙었다.

엄마는 일흔 다섯에 마흔쉬흔먹은 딸들이 요양원에 보내 들어갔는데, 이제 마흔 중늙은이 나는.
일곱살 딸아이 길러낼 일과 일흔 여덟 엄마, 읽고 공부하며 쓸 내 할일과, 보증금반환청구,
금융거래법, 가압류를 헤아리는 잠자리가 편치않다.

끊임없이 변화하며 조화로운 자연처럼. 기울어진 축을 중심으로 지구가 비스듬히 돌고,
달이 그 주위를 기우뚱 돌며, 또 그 모두가 해를 돌아 날과 달, 일년 이년 세월을 역어내듯
자연스럽게. 지금 내 앞에, 한발짝 들고 나아서며 균형을 이루어낼 중용의 길은 무엇일까.
그것이 아빠의 뜻일지, 엄마를 위한 일일른지도.

엄마가 2008년 1월말일 보증금 육천오백에 월팔십 인천시 서구 경서동 673-11번지
해동요양원 319호에 세째누나와 걸어 들어갔다.
2011-07-03 23:20:08
115.20.146.197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