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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민족의 반역자 이 땅에 설수 없게 영원히 퇴출해야
icon 파발마
icon 2011-03-12 22:2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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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민족의 반역자 이 땅에 설수 없게 영원히 퇴출해야

매국행위자는 그의 종말을 반드시 보여줘야 한다

금년 한.일강제병합 101주년,광복 제66주년 3.1절 제92주년이다. 잊어버리고 버림받은 애국이 되지 않아야 한다. 나라가 어려운 난세에 영웅도 나오지만 적지않은 매국노나 앞잡이가 나서게 마련이다.그사례가 친일파이다.

3.1절 제92주년, 광복 제66주년, 나라위한 고귀한 희생 버림받고 잃어버린 애국이 되지 않게 해야 외세의 침략기나 난세에 겨레와 민족을 배신하거나 팔아넘기는 매국행위자는 그의 종말을 반드시 보여줘야 한다. 미발굴독립유공자 후손 선조 독립운동 자료 찾아 36년 고군분투, 광복 66주년인데... 독립운동가 후손 정용선의 증손자 정병기는 36년째 고투, 주먹 불끈 쥐고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다. 당해본 사람이 아니고도 상상하기 어렵고 그 고통과 슬픔을 알겠는가?

증조부님 독립을 위해 일제의 모진 고문과 탄압 그리고 굶주림에도 굴하지 않아... 가족들도 독립운동 했다는 이유로 숫한 고문과 감시에 따른 고생달고 살아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인생살이 연속, 일제시대 경성형무소악명 높던 경성형무소 현 마포 공덕동 서부법원.검찰청)에서 옥사한 증조부가 독립투사였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36년째 지루하고 고독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고 정용선의 증손자(정병기54) 앞으로 정부는 난세에 민족을 배반하는 반역자나 배신자 침략자의 앞잡이에 대한 철저한 종말을 고해야 하며 그야말로 확실하게 정리하고 보여줘야 하며, 민족의 반역자는 이 땅에 절대로 설수도 없고 서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 당시 경성형무소 10년이상 중형 장기수 복역,붉은 벽돌생산 강제노력시달리며, 모진고문과 탄압 그리고 굶주림과 사상교화교육에 구타로 일관하는 수형생활 감내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금년이 3.1절 제92주년이자 '광복 66주년' 인 올해도 어김없이 아픈 몸을 이끌고 방방곡곡을 누비고 있으며 서대문형부소 그리고 옛경성형무소 터인 마포구 공독동에 경성형무소 표지석 앞을 찾아가곤 한다.이곳에서 증조부의 영혼이라도 만뵐수 있다는 간절한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민족의 암흑기인 강점기에 증조부가 독립투사였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입증할 만한 단서만 있다면 만사를 제쳐두고 어느 곳이든 달려간다. 부양할 가족도 있고 몸도 성치 않지만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증조부와 일제로부터 모진 탄압을 받았을 조상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만 둘 수 없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악명 높던 마포 공덕리 경성형무소 역사관 건립이 반드시 필요하고 주장한다. 수많은 애국지사 독립투사들이 일제의 모진 고문과 압과 그리고 탄압과 굶주림에 생목숨을 잃어간 한 많은 역사의 현장이다. 당시 경성형무소는 한번 걸어서 들어가면 절대로 나오지 못하고 시신도 돌려주지 않고 통지문으로 알려온 곳이 바로 이곳이건만 역사의 현장은 흔적조차 없이 초라한 표지석만 있다. 당시 침략자 일본은 정말로 악독하고 포악한 인간 말쫑들이다.

우리집안에 '아버지와 친척 등의 증언을 종합하면 증조부인 정용선(명치16년1883년생)선생은 1900년대 초부터 1916년까지 고향인 경북 봉화군을 중심으로 독립군 군자금 모금 활동을 했던 독립운동가가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정씨에 따르면 독립 자금을 모으기 위해 친일파의 집을 털고 일본 주재소를 습격하는 등 위험천만한 활동을 서슴지 않았다는 그의 증조부는 1916년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고 10년 가까이 지난 1928년 경성형무소에서 옥사했다는 통지서 한통만 날아왔다. 정씨는 '당시 반일 활동가를 가두던 경성형무소에서 장기복역하다 숨졌다는 것 자체가 증조부가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희생됐다는 증거' 라고 본다.

당시 마포 공덕리 경성형무손은 악명이 높기로 소문이 나 있고 한번 형무소에 입소하면 살아 나오기가 매우 어렵운 곳이라고 알고 한다. 당시 형무소에서는 중형을 받은 죄수들에게 고된 벽돌생산을 위해 강제노역을 시키고 모진 고문과 탄압 그리고 굶주림에 시달렸다고 한다.

증조부님은 당시 동지들을 위해 모진 신문과 고문에도 함구하고 끝까지 활동내역에 대해 발설하거나 자백하지 않아 중형을 언도 받을 것이라고 한다. 그 얼만나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했을까 생각하면 눈물이나고 가슴이 저미어 오는것 같다.또 증조부로 인해 일제로부터 모진 탄압을 받자 이를 견디지 못한 일가친척들이 증조부 이름을 족보에서 파버렸고 증조부가 실종된 후 일제의 화가 미칠까 두려워한 가족들이 나서서 증조모를 개가시켰다는 사실은 독립운동을 했음을 뒷받침하는 명백한 '정황증거' 라고 강조하고 싶다.

실제 호적등본을 보면 증조모는 독립투사의 아내였던 것을 감추기 위해 본명인 '박열이'에서 '정열이'로 개명까지 했다. 그러나 일제가 만든 호적에 증조부가 경성형무소에서 병으로 사망했다는 기록 외엔 독립운동에 가담했다는 것을 증명할만한 서류는 남아있지 않다. 국가보훈처는 물론 국가권익위원회 청와대에까지 서류를 안 내밀어 본 곳이 없지만 '객관적인 입증자료가 없어 독립유공자로 선정할 수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그는 국내에서 안 되면 외국에서라도 찾아보자는 생각에 1993년 미국 의회도서관에 편지를 띄워 수형인 명부가 담겨 있을지도 모르는 마이크로필름 500장을 200달러를 주고 사오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 독립운동하기 보다 현재 자료찾기가 더어려운 현실이 안타깝다.

일본 외무성에 수차례 서신을 띄우기도 했지만 안타깝게 결정적인 사료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 지난해엔 국가를 상대로 행정소송까지 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신 애국투사들의 고통은 본인 뿐이 아닌 가족과 지방ㄴ모두의 고통으로 모진 고문과 탄압 박해와 감시로 죽지못해 살아야 했던 고통의 세월이였다는 사실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증손자인 저는 정부가 지난 1980년대 정권이 형의 실효에 관한 법률로 고지(관보)하여 지역에 있는 수형인 명부 등 기타 소류를 소각하라는 정부차우너의 지시를 하달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로 인하여 남아 잇거나 자존하던 귀중한 서류들인 '일제시대 형무소 수형인 기록을 지난 80년 12월 실수로 모두 불살라버렸던 정부가 이제 와서 독립운동으로 수감됐다는 걸 증명할 문서를 가져와야 독립유공자로 인정해준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 이라며 '더욱이 일본 외무성은 1995년까지 조선인 수형인 명부를 보관했지만 우리 정부는 단 한번도 그 서류를 요청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정씨 할아버지는 인접 금광에서 일하다 폐병으로 숨졌다. 정씨 자신은 경찰관으로 근무하던 지난 1980년 강도살인범을 붙잡다 부상을 당했다. 당시 후유증에 간경화로 지금도 고통을 받고 있다. 그리고 배움이 전혀 없는 무학인 아버지도 군에서 부상을 당하고 아무런 혜택도 없고 아들도 모두 군에서 다쳤으나 혜택에서 제외되고 있다. 현재 철저히 파괴되고 사라져 버린 증조부의 독립운동 자료 찾기가 당시 독립운동 하기보다 어려운 현실이다. 참으로 개탄스럽고 안타깝다.

증손자인 저는 '독립운동가를 찾는 일을 후손들에게만 떠넘기는 정부가 야속하지만 어디엔가 분명히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있을 거라 믿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부는 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그 후손들 가슴에 못 박는 일이 없게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미발굴독립유공자의 가족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바라보려는 자세와 노력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며, 실질적인 대책강구와 노력이 반드시 실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당시 활동하셨던 분들이 사망해 돌아가고 없다보니 역사속에 묻히거나 잃어버려 안타깝게 되어 가고 있는 현실을 보면 가슴이 터지는 것 같은 심정이다.

그리고 독립운동하고는 무관한 인물이나 친일행각을 벌인 인사들이 버젓이 독립운동가로 미화되거나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진정한 독립운동가를 두번 죽이는 행위라고 본다.

아마도 이승이 아닌 영혼이 머무는 저승인 다른 세상이 있다면 그들은 잡시 누린 발못된 행복이 불행이고 고통받고 지탄 받게 되리라고 본다.이웃과 세상을 잠시 곡일지 몰라도 자신의 양심과 신을 속이지는 못하리라 본다. 죽은자는 말이 없다는 죽의 자의 공을 가로채는 반인륜적행위가 근절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받친 고귀한 희생과 숭고한 애국정신이 제대로 평가받고 예우받는 풍토가 정착되어 눈구즌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받치거나 애국한다면 대한민국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존재하는 이상 추앙받고 길이길이 기억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제 일본에 대해 확실히 알아야 한다. 오늘도 일본은 우리의 영토인 독도(다케시마)라고 억지주장과 초.중등학교 역사교사서에 대한 역사왜곡을 자행하고망언을 늘어 놓고 있다는 사실을 중시해야 하며 과거 일제의 만행을 기억하고 경계해야 한다. 오늘도 다시한번 이나라 독립과 광복을 위해 젊음을 받치신 수많은 애국지사 독립투사분들이 이름도 기억도 없이 잊혀저 가는 사실에 가슴아파한다.그리고 젊음을 독립에 몸받치신 훌륭하신 증조부님을 생각하며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마음의 각오를 다짐해본다.
글쓴이/정병기 /<미발굴 독립운동가 후손 정용선의 증손자>
2011-03-12 22:2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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