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홍콩의 영사활동 상반된 시각2
icon 교포
icon 2006-01-05 18:16:28
첨부파일 : -
한국정부는 없었다
양들을 돌본 홍콩주교, 국민을 버린 한국정부
엄기호 통신원이 경험한 홍콩투쟁

2005/12/29
엄기호 기자 uhmkiho@empal.com
“내 교구에 들어와 있는 가톨릭 신자는 그가 무슨 일을 하였건간에 내가 보살펴야할 양들이다. 그것이 교회의 가르침이고 교구장으로써 내가 해야 할 의무이다.”

지난해 12월 19일 자정 무렵 우선 여성시위자들이 풀려나기 직전에 홍콩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조셉쩐(陳日君) 주교가 내 손을 꼭 붙잡으며 한 말이다. 홍콩을 관할하는 가톨릭교회의 수장으로써 그는 비록 범죄자라고 하더라도 그를 돌볼 목자의 의무가 있으며, 그 의무에 자신은 충실해야한다는 말이었다. 물론 그는 WTO반대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 범죄자라거나 폭력시위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체포된 사람과의 면담을 허락하지 않는 구치소 측에 격렬히 항의하며 그가 한 말은 WTO에 대한 그의 생각을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민중언론 참세상
홍콩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조셉쩐(陳日君) 주교.


“내가 애초부터 WTO회담을 홍콩에서 개최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던가? 홍콩은 세계를 향해 열려있는 도시여야 한다. 세상사람 모두가 다 좋아하는 행사도 많은데 왜 사람들이 싫어하는 행사를 홍콩에서 개최하였는가? 애초부터 이게 잘못된 것이었다. 그리고 또 그들이 홍콩에 와서 한 일이 뭔가? 협상이 진전되었는가? 숙제(Homework)는 하나도 하지 않고 그냥 돌아가지 않았나? 그 사이에 저 사람들만 길거리에서 온갖 고생을 하지 않았던가? 홍콩이 언제부터 사람들을 환영하는 도시가 아니라 고생시키는 도시가 되었는가? 부끄럽다.”

WTO각료회담이 열리는 동안, 특히 17일 저녁 이후 1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대거 체포되고 그 중 14명이 구속된 이후에 홍콩 쩐 주교의 목자로써의 임무 수행은 말 그대로 빛을 발했다. 그는 19일 첫 번째 구속적부심에서 한국영사관도 거부한 신원보증을 자청했으며, 보석금도 자신이 대신 내겠다고 제의하였다. 물론 한국영사관의 신원보증 거부가 한 원인이 돼 14명의 사람들은 찬바람 부는 경찰서 유치장에 사흘이나 더 갇혀 있어야 했지만 말이다.

그는 또한 긴급 기자회견을 통하여 홍콩정부와 경찰을 ‘홍콩의 수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경찰제도와 인권보호를 잘 갖췄다는 홍콩에서 1천여명의 사람들을 한꺼번에 체포한 점, 그 사람들을 신속하게 효율적으로 조사하고 수용하지 못함으로써 10시간씩 길거리에 방치한 점, 뺨을 때리거나 구타하는 등 홍콩 경찰이 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인권유린이 벌어진 점, 아무 근거 없이 14명을 무작위로 기소한 점 등을 지적하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홍콩에서는 있을 수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또한 그는 한국가톨릭농민회 소속의 황대섭씨가 아무 근거없이 구속되고 기소되었다는 점에 분노하였다. 한국가톨릭농민회가 십자가를 메고 행진하고 폴리스라인에서 경찰에서 꽃을 전달하는 등 시종일관 평화적으로 시위를 한 점을 잘 알고 있던 터였다. 체포된 황씨는 그가 폴리스라인에서 노란 풍선을 날리는 모습이 홍콩교구가 발행하는 주간 신문의 사진 한가운데 실리기도 했다.

쩐 주교는 황씨를 위로 방문해 달라는 요청에 대해 ‘목자의 의무’라며 흔쾌히 수락했다. 12월 22일 아침 9시 30분 쩐 주교는 황대섭씨와 전농소속의 박인환씨를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홍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미안하다”며 조속히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자신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변호사 비용이나 보석금 등 필요한 모든 부분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리자고 위로하였다. 실제 그는 23일 황씨의 변호사 비용을 대신 내어주었다.




심재봉 화백


밖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에게 그는 “저들이 왜 여기 수감되어 있어야하는가?”라고 되물으며 “체포당해서는 안 될 사람들이 체포됐으며, 이것은 홍콩 경찰 수뇌부의 커다란 실수”라고 다시 한번 홍콩 정부와 경찰들에게 즉각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이후에도 그는 홍콩의 라디오 방송에 출현하여 이번 WTO에 대한 경찰의 대응에서 7가지 잘못 혹은 죄악을 열거하며 경찰수뇌부와 직접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 결과 홍콩 경찰에서는 2개월 안에 WTO에 대한 경찰의 대응에 대해 평가를 한 후 그 일부를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쩐 주교는 12월 23일 재판장에도 모습을 나타냈다. 다른 주교와의 약속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재판장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켰고 보석결정에 대해 누구보다 기뻐하며 다음 약속을 위해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한국정부는 어떠했던가? 영사관의 업무라는 것이 외국에서 자국민의 보호라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이다. 여기서 자국민이란 그 사람이 범죄자이건, 고위급이건 가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시민권자의 경우에는 외국에서 자신의 잘못으로 빚어진 일이라고 하더라도 무슨 문제가 생기면 맨 먼저 자국의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연락을 하며, 그 이전에는 일체의 협조를 거부한다. 이번 홍콩투쟁에서도 통역으로 따라왔다 같이 체포된 몇몇 미국시민권자들이 있었다. 이들을 경찰서안에서 변호사와 함께 면담했을 때 맨 먼저 이들이 물은 질문은 이것이었다. “미국시민권자로서 내가 누릴 수 있는 권리는 무엇인가? 미국영사관과 연락하고 싶다. 그들은 나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한국영사관은 참으로 무책임하였다. “너희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 우리가 왜 책임을 져야하는가”라는 식이었다. 그들이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유일한 이유가 바로 “우리가 저지른 일을 책임지는 것”, 바로 그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들은 도무지 자신들이 맡은 임무가 무엇인지 그 기초조차 모르고 있었다. 여성시위자들이 먼저 풀려나오던 날 밤에도 이들은 “저녁밥도 못 먹은 것”에 대해 불평을 하고 “자기는 못하겠으니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 달라”고 신경질이나 내고 있었다. 여성시위자들이 풀려나면 어디에 임시로 묵을 것인지는 파악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뒷짐 지고 서서는 오히려 나에게 그걸 파악해달라고 부탁 아닌 ‘명령’을 하며, 그것도 자기가 해야 하냐고 건방을 떨었다.

구속자 석방과 보석을 위한 신원보증과 관련된 일에서는 무책임을 넘어 고의적이고 악의적이었다. 무료로 변론을 맡아 검사들과 협상하며 이리저리 분주히 뛰어다니던 홍콩민중연대의 변호사는 영사관측과 한번 통화를 한 후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말을 했다. “저들은 석방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저들이 하는 말을 믿지 말기를 바란다. 그들의 고압적이고 무책임한 태도에 나는 대단히 불쾌하다. 심지어 그들은 나에게 당신들(한국투쟁단)에 대한 욕도 서슴지 않았다. 그들과 다시는 통화하고 싶지 않다.” 한국의 시위자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홍콩의 주교와 변호사가 한국영사관의 비협조와 무책임함에 치를 떠는 정도였으니 더 이상 말을 해서 무엇 할 것인가?

변호사의 말처럼 신원보증에서 영사관의 태도는 ‘악의를 넘어 방해’ 수준으로 보일 정도였다. 두 명의 신원보증인 중에서 이미 한 명은 쩐 주교가 나선 상태였다. 나머지 한명이 한국 영사관이면 보석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변호사측의 조언이 있었던 터라 영사관과 계속 협의하고 협상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 뭉개기만 하였다. 그러다 재판 시작하기 직전에는 “보석이 안 받아들여졌을 시 국가위신이 문제가 된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대면서 절대 못한다고 나자빠졌다.

신원보증인을 세우지 못하면 지금까지 보석을 위해서 노력한 모든 것이 허사가 될 터. 눈앞이 아찔했다. 다급히 현지 한인 한 명의 도움으로 신원보증을 세웠다. 그러나 만약 그 분이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될 뻔했는가? 모든 것을 다 준비했지만 자국민을 보호해야할 영사관이 거부해 모든 것이 다 물거품이 될 뻔한 순간이었다.

순간 분노와 슬픔이 밀려왔다. 한국이 지난 수십년간 피를 흘리며 쟁취한 민주주의의 결과가 고작 이것인가? 그렇게 싸워서 얻은 민주주의와 그 결과의 정부가 자국민에 대한 신원보증도 거부하는, 고작 이 정도에 불과하단 말인가? 이 정도도 못되는 걸 쟁취하려고 그 피와 땀을 흘렸던가? 너무나 허탈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이정도 밖에 안 되는 것이 허탈했다.

나는 이번 사건이 그저 외국에 있는 한국영사관의 오만방자한 관료적 태도에서 빚어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한 번의 해프닝으로 넘어갈 문제가 결코 아니다. 이것은 한국이 쟁취한 민주주의 내용과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이다. 우리는 ‘민주화이후의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 내용적 수준에서는 여전히 민이 주인으로서 가장 기본적으로 누려야할 것도 누리지 못하는 ‘형편없는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나는 이 문제를 한국의 인권운동, 시민운동과 민중운동 모두가 대단히 심각한 민주주의의 문제로 받아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재시대에나 가능했던 시위중 농민의 사망, 책임져야할 경찰청장의 사퇴 거부, 황우석 사건에 대해 나 몰라라 발뺌만 하는 것 등, 무책임과 무능으로 관료들에게 완전히 항복해 버린 이 정권하에서 우리의 민주주의가 이렇게 볼품없이 주저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민’을 버린 정부가 민주주의라는 말을 사칭하게 내버려두지 말자. 민주주의를 위해 이제 ‘국민’이 이 정권을 버릴 때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홍콩= 엄기호 통신원 uhmkiho@empal.com

기자소개

엄기호 기자는 지난 수년간 유럽ㆍ아시아 지역에서 국제연대활동을 벌여왔습니다.
엄 씨는 아시아풀뿌리 운동과 활동가들의 지원을 위해 만원계(http://www.10usd.net/)를 한국시민사회에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시민의신문 인터넷판인 NGOTIMES의 기획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2006-01-05 18:16:28
203.234.131.14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