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한국인인가? 러시아인인가?
icon 김 알렉세이
icon 2005-12-10 14:05:13
첨부파일 : -
여기 러시아 여성도 우리 한민족인의 집에 시집을 와서 맏며느리의 역할을 아주 잘합니다.
내가 소개를 하자는 분들은 모스크바에서 살고 계십니다.
이분들의 집안은 식구가 8명입니다.
아빠트 집 2층에서, 집의 크기는 25평정도로 8명이 살기에는 정말로 좁은 집입니다.
집 식구들의 구성을 보면은 제일 먼저 가장으로 양 에직흐(남 63세)입니다.
이분의 부인으로 양 린나입니다
러시아는 시집을 오면은 남편의 성을 따릅니다. 다들 아시지요.
원래의 성은 김씨랍니다.
나와는 같은 김가라고 본도 같다고 친척이라고도 합니다.
연세는 남편대시는 분과 같고, 이분들의 아들(34살)과 딸(32살)이 하나씩 있습니다.
아들은 러시아의 여성을 아내로 맏이 하여 아들이 있습니다.
지금 14살, 눈알이 파란색입니다.
딸은 남편이 러시아인인데 딸이 돼서인지 딸을 만들었습니다.
귀여운 아인데 지급 11살입니다.
눈알은 파란색이 아니고 우리의 평범한 한국인과 똑 같습니다.
이해가 안됩니다.
러시아말로 <네 뽀니요?>(이해가 안된다)이렇게...
러시아의 글로 쓰니 게시판에 표현이 안돼여 러시아의 글은 생략합니다.
아버지가 한국인 어머니가 러시아인의 자식은 분명히 눈알이 파란색이고 아버지가 러시아인 어머니가 한국인인데 눈알은 우리와 같고...
이렇게 식구들이 8명이니 그 좁은 집에서 살기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아마 글을 보시는 분들도 의문이 날것입니다. 부부간의 생활은 어떻게...
나도 처음에는 그랬지요.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이분들을 알게 된 사연을 먼저 합시다.
소개하자고 하는 가정을 알게 된 것은 4년 전입니다.
4년전 여기 레잔 우리의 집에서 나의 생일이라 우리의 고려의 음식을 기본으로 차리고 주변의 한국인들을 초청하였습니다.
일전의 글들에서도 이야기를 하였지만은 여기서는 한국인이라도 우리의 민속음식을 후차로 러시아의 음식을 주식으로 합니다.
난 아직도 버릇이 안돼서 빵을 먹고는 끼니를 외우지 못합니다.
밥이나 국수를 먹고는 살수 있어도 빵을 먹고는 못살겠습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사람은 정말 극히 드물고 대체로 칼파스, 흘레브, 그외 오이를 절임, 양배추 절임, 등으로 끼니를 에웁니다.
지지고 복고하는 것은 얼마 없고...물고기로 반찬을 하고 하는 것도 없고...
물론 그 중에는 우리의 식단 요리법을 모르는 분도 있지만...
상점에 가서 파는 것을 사서 썩썩 쏠아 놓으면은 식사 준비는 끝이 납니다.
여기서 스프(우리말로 국)를 끓이는 것도 한번에 커다란 그릇에 하나 가득히 끓이고는 3-4일씩 먹습니다.
한마디로 대단히 간단하여 주부들이 편안합니다.
허나 우리는 밥은 하루 넘기면 묵은 밥, 장국도 하루, 이틀을 지나서는 못 먹는 것으로 생각하여 조금씩 자주 끓이고 반찬도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놓습니다.
러시아는 풍습으로 보면은 주부 여성분들이 좋습니다.
아침이면은 차이 한 잔에 과자 2-3개를 먹으면 그만입니다.
가만, 한국의 아가씨들이 이 글을 보면 주부들이 편안한 러시아로 다 시집을 오겠다면 어쩌나...
한국의 남자들은 총각으로 늙고...심중한 문제?...신변이 위험 오면은...
그러니 가끔 고려의 음식 맛을 보느라 초청하기 몇일 전부터 <너의 생일이 언제냐? 작년에도 이맘때인데...>하며 달굽니다.
솔직한 말로 이 달굼 질에 못 견디고 차리 군 합니다.
초청을 하느라 전화를 하는데 그중 한 분이 모스크바에서 처남(부인의 오빠) 부부가 왔다며 어떻게 가겠는가 하지 않습니까?
나는 즉시 <같이 데리고 오면은 그만인데 무슨 소리를 합니까?>라고 하며 다 같이 초청을 하였습니다.
바로 이렇게 계획 외에 초청한 두 분이 우에서 말을 한 8명 식구의 가장들인 양 에릭흐 양 린나입니다.
그분들도 역시 모스크바에서 고려의 음식 맛을 1년에 많아야 2-3번 보는 분들이니 드시면서도 맛이 있다고 만족하여 합니다.
음식을 잘한다는 아내 자랑인가?...
아내 자라하는 놈은 3대 머저리라고 하던데...
그때 그분들과 술과 음식을 들면서 집안의 이야기를 하던 중 8명의 대 식구를 거느리고 살림을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후에는 그분들이 모스크바에서 오면은 우리를 찾아 자주 만나고 나도 모스크바에 갔다가도 그 집에 들리 군하며 서로 가깝게 지냈습니다.
이렇게 다니며 그 집의 모든 식구들과 알게 되고 이들을 알면서 어떻게 70-80평방 메터의 좁은 면적의 집에서 그런 대식구가 살수 있는가 하는 의문점을 풀었습니다.
먼저 이 집의 식구들의 사회적 직위를 봅니다.

양 에릭흐 - 전자제품공장 기사
양 린나 - 5년 전까지 병원 의사(지금 사회보장)
아들
양 쎄르게이- 창유리 판매회사 직원
그의 아내
양 왈야 - 모스크바 비행장 <돔마제도바> 비행기 승무원
아들
양 꼴랴 - 학교 학생

레나 - 나이트 클럽 직원
딸의 남편
싸샤 - 체육운동 회사 직원
이들의 딸
스베따 - 학교 학생

아시다 싶이 대체로 러시아의 일반적인 공무원이나 개인의 회사라도 직원들에게는 낮은 임금, 살기가 힘든 연봉을 받습니다.
이 집안의 식구들이 직업적으로 크게 돈을 들여놓고 살기는 힘든 직종들입니다.
방이 셋인 집인데 8명이 살고 있으니 저녁이면은 정말 벅작 벅작 합니다.
그래도 언제 한번 서로들간에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없습니다.
한번은 양 에륵흐라는 가장의 돼시는 분의 생일 이였습니다.
그 집의 식구와 우리 부부간을 내놓고라도 한국인들이 거의 15명 이상 러시아인들이 10명 이상이 초청 돼였습니다.
이날 며느리인 왈랴는 처음부터 음식을 다 차리고는 앉아서 술은 조금씩 마시며 언제나 식탁을 총 적으로 감시를 하면서 빈 그릇은 치우고 다시 새것을 들여 오군 하는데 옆에 앉아 있는 시어머니가 무엇이 부족해 일어 설려면은 기필코 못 일어서게 하고 자신이 가져옵니다.
한국인의 집에 시집을 온 러시아 며느리가 그것도 맏며느리가 어떻게 손님들을 치는가 하고 자세히 보았습니다.
술기운의 남성들의 말도 웃음으로 넘기고 활발한 성격에 마이크를 들고 시어머니와 노래를 부르며...신기하다 할가...정말 탄복이 가더군요.
내가 한국노래를 하라고 하니 몰라서 못하는데 다음에는 꼭 배워서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밤늦게까지 손님들이 그냥 있는데도 역시 그 여자는 같은 자세로 부엌을 드나들었습니다.
여기서는 대체로 이런 날에는 사실 밤에 잠을 잔다기보다도 꼬빡 새운다고 할수 있습니다.
대체로 밤12시까지는 부어라 마셔라하며 노래부르고 춤을 추고는 그 이후부터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오락인 화투를 놉니다.
물론 돈 대기를 하면서 말입니다.
돈 대기라고 그리 많은 것은 아니고 루불 치기를 합니다.
예를 들면은 내가 60점을 이겼으면 60루불이 됩니다.
여기의 시가로 보면은 1($)달러에 30루불이니 1루불이면 대략 0.033달러입니다.
한국 돈으로 30원 정도로 많지는 않지요. 그래도 도박인가?...
화투의 놀음 방법이나 계산법 등은 후차 다른 이야기에서 알려드리겠습니다.
12시 이후에는 옆집이나 아래 웃집들에서 자야 하기에 술을 마셔도 조용히, 가라 오케이도 끄고 우리 한국인들은 화투판을 만들어 놓고 술기운에 얼근하여 화투를 하여 술을 마시지 않은 여성들에게 돈을 섬기지요.
3-4간 지나면은 술기운이 깨니 그때야 조금씩 섬기고 어떤 때는 이기군 합니다.
아마 새벽 3시라고 기억이 됩니다.
러시아에 오셔서 러시아인들과 생활을 하여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술판에 러시아인들이 꽤나 질깁니다. 소 심줄 처럼.
한번에 많이 먹지 않고 한잔을 쭉 내고는 이것저것 안주 집고는 자질구질 말을 오래 오래하여 금방 올랐던 술기운이 깰가 하면은 다시 한잔, 때문에 우리는 중도에 기권을 하고 나와서 다른 방에서 화투를 놉니다.
이 집 며느리는 그 질긴 러시아인들의 술시중은 물론이고 화투를 놀고있는 우리 방에도 심심풀이로 들라고 술과 안주 과일을 들여다 주며 그것도 자주 와서는 없는 것이 있는가 보군 합니다.
새벽 6경에 보았는데 잠을 못 자 눈이 벌거게 됐는데도 날보고 웃으며 화투놀음에서 지는 가고 농을 던지며 그릇을 거둡니다.
며느리 자랑에 러시아인의 사위의 이야기도 합니다.
며느리와 사위가 그릇을 거두고 씻습니다.
나는 화투를 노는 방에 들어와서 저의 아내에게 이 집의 사위가, 남자가 그릇을 씻는다고 당신이 나가서 좀 씻어라 고 하였습니다.
금방 나갔던 아내가 들어오며 말을 하기를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그때야 며느리의 시어머니인 양 린나가 말씀하기를 아문 때나 보아도 사위나 며느리는 자기도 그렇고 남들도 못하게 한답니다.
그래서 부엌의 일들은 대체로 숨겨 두었다가 며느리가 일을 나간 다음에 씻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웃으면서 농으로 <러시아 며느리 사위를 머슴처럼 씁니다.>하고 말을 했습니다.
나의 생각으로는 이들이 진정으로 마음속으로 하고 싶은 일이라야 이렇게 할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내가 그 집 며느리, 사위와 말을 하고 싶어 부엌에 나가 술과 안주 하나를 놓고 씻는 일을 다했기에 간단히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하자고 하였습니다.
가정의 살림에 대하여 며느리와 사위가 말을 하는 것이 식구가 많아도 불편한 것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시부모님들이 어디에 몇 일씩 놀러 가면은 집안이 텅 빈 것 같고 보고 싶다고 합니다.
이 집의 러시아인 사위 싸샤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번은 모스크바의 친척들이 돈을 얼마씩 모아서 딸에게 주면서 너희들도 한집에 많은 식구가 있어 살기도 힘들겠는데 이 돈으로 집을 얻어서 따로 살라고 하더랍니다.
하여 따로 나가 두 주일 지나서 사위가 자기의 아내에게 <난 너의 부모들이 보고싶어 못 견디겠다. 지금까지 그들 과 같이 있어서 그런지 따로 떨어져서는 못 살겠다.>고는 짐을 거두어 가지고 돌아 왔답니다.
집에 들어서니 양 에릭흐와 양 린나, 온 식구들이 돌아온 사연은 묻지도 않고 끌어 않고 울면서 오기 잘했다고, 보고 싶어 죽을 번했다고, 이제는 못나간다, 하더랍니다.
말을 하는 사위의 눈에 물기가 보였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나 자신도 눈시울이 뜨거워 났습니다.
민족이 달라도 같은 혈통을 지닌 부모와 자식, 형제들의 정에 못지 않게 순결하고 아름다운 사랑이라 할가!
한국인과 러시아인이 굳게 마음과 마음을 잡고 한 가정으로 융합되는 아름다운 그림이라 할가!
아마 이들은 이런 아름다운 정으로 가정 생활에서 살림문제 부부간의 생활 등등의 불편함도 있지만은 문제없이 같이 있는 것입니다.
그후에 2-3달이 지나서 그 시부모님들이 제가 살고 있는 곳에 왔을 때 같이 음식상에 앉았습니다.
그때 제가 <좋은 며느리 좋은 사위를 두었습니다.>하였습니다.
그 말에 옳은 말이라고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한번은 아들과 딸, 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해서 두 분을 내놓고는 모두가 한번에 남방의 나라에 휴양을 갔답니다.
같이 갈 것을 시부모 두 분은 일하는 곳에서의 승인이 못돼서 못 갔다고 합니다.
다음날 시어머니인 양 린나는 여느 때처럼 밥을 밥통에 한 가득히 장물도 한 통 가득히 끓였습니다.
남편인 양 에릭흐는 <두 명이 먹는 밥과 장물을 이렇게 많이 끓였는가?>하였답니다.
그때야 양 린나는 <난 집에 아이들이 다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며느리 사위가 장물을 좋아해서...>라고...
그녀의 남편은 <그 장물 밥을 다 먹는데 거의 한 주일 걸렸소.>라고 농을 하며 웃습니다.
곁에 없어도 있는 것처럼 마음속에 언제나 자기의 지식보다 며느리와 사위를 먼저 생각하는 그분들의 뜨거운 사랑을 보았습니다.

나도 가정을 이루었고 두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오라지 않아 우리의 아이들도 가정을 이룰 것입니다.
나는 물론이고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 저분들처럼 며느리와 사위를 저렇게 잘 생각 해줄수 있을 가?...우리들의 자식들도 시집이나 장인 장모를 저렇게 모실가?...하고 생각을 해봅시다.
모두가 그렇게 하면은 모국의 모든 가정이 화목 할 것이고 대한 민국도 더욱 활기찬 나의 모국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2005 12월 9일

러시아 김 알렉세이
2005-12-10 14:05:13
212.26.239.243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 알렉세이 2005-12-15 13:27:40
한집에서 온가족이 모여 산다는것을 아마 나의 기억에 25년전 즈음에 따슈겐타에서 한 두집을 본 기억이 있고 다음은 모국의 옛말이야기의 책에서 들었습니다.
다음으로 지금 내가 보고 느낀 가정인 양 에릭흐와 양 린나의 가정입니다.
지금의 현실에 이야기도 아닌 현실에 그것도 민족이 서로 다른 가정이 이렇기에 그분들에게 존경이 가고 그분들의 자식들과 제가 더욱 가깝게 지내게 된것습니다.

moosaa 2005-12-14 14:53:47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한국에는 이제 찾아보기 힘든 대가족 생활의 전통이 러시아에 남아 있군요. 오손도손 정을 나누며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김 알렉세이 2005-12-12 02:33:27
한 1-2년전에 여기 러시아의 TV 중앙 방송으로(OLT) 아침 시간에 유명한 사람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람(<도부레 우뚜롬>)에 러시아의 기자(여)가 한국을 방문하고 선물 받은 여성용 한복을 입고 나왔는데 어쩌면 그렇게 어울리던자...
이것이 바로 정서는 국경이 없다는 뜻인가 합니다.

jinny 2005-12-11 16:57:37
러시아 작가 안톤 체홉의 희곡작품들을 배우고 공연하면서 배경이 러시아여도 우리정서와 닮아있다란 생각을 했었는데요. 지금도 한국에서 사랑받는 그의 작품들이 꾸준히 무대에 오릅니다. 정서란 나라가 다르다고 통하지 않는법은 없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