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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둥지(연재11)
icon 까마귀
icon 2005-11-29 02: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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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11:


대학원에서 남권주의를 연구하던 일본친구가 생각납니다.

이름이 나까무라 타케시라고 부르는데, 우리는 뒤에서 ‘위대한 타케시’라고 불렀습니다. 그의 위대함은 그의 연구과제에도 있지만, 저보다 5년 선배였는데, 무슨 영문인지 내가 졸업할 때도 졸업못하고 계속 석사과정에 눌러있었습니다.

그러니 남권주의 연구를 적어도 5년은 했다는 말입니다.

남권주의란 뭔지 그 주장이 뭔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대충 남성목욕탕에서 여자목욕탕을 훔쳐보는 거 아닐가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의 위대함은 페미니즘이 한창 유행할 때, 남권의 중요성에 눈길을 돌리고 연구를 시작한 거라 할 수 있습니다.

여자의 권리만 중시하고 남자의 권리를 무시하면 뭐가 됩니까. 여권 없이 비자가 없는 것처럼, 페미니즘 역시 이 세상의 남자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남녀는 평등한데, 페미니즘만이 연구대상이 되어서는 안되지 않습니까.

그러고 보니 한국이나 일본에는 페미니즘이 상당히 유행되지만 중국에서는 별로네요.

하여튼 그 친구는 남권주의 사상은 참 새로웠는데, 그 친구의 말로는 미국에는 남권주의단체가 있을 정도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자기가 처음으로 하는 연구랍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세상에는 생각보다 많은 남자들이 여자의 노예로 살고 있었습니다.

* 여자의 발에 채워 침대에서 떨어져 갈비뼈를 상한 남자..^^
* 어쩌다 한번 바람 쓰고 한밤중에 집에서 쫓겨나 동상한 남자..^^
* 돈 못 벌어온다고 마누라가 너무 구박해, 밖에서 여자들의 성 노리개로 윤락된 남자..^^
* 회사에서 쫓겨나고 마누라에게 맞을가봐 매일 회사 다니는 척 하는 남자..^^
* 이혼할 때 여자에게 재산을 모두 빼앗기고 거지가 된 남자..^^
* 선을 101번 보고도 장가를 못간 남자..^^

듣다보면 저도 모르게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게 됩니다만, 이 세상에 불상한 것이 여자뿐인가 했는데, 불상한 남자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우리 연변에도 불상한 남자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 한국 시집 간 금자때문에 목을 맨 남자..ㅠㅠ
* 한국 가서 벌어온 돈을 마누라와 딸이 몽땅 탕진해 돌아오자마자 자살한 남편...ㅠㅠ
* 가짜이혼이 진짜이혼이 되어 마누라를 한국남자에게 빼앗긴 남자...ㅠㅠ
* 부르하통하에 뛰어들어 감기 걸린 남자..ㅠㅠ
* 양위 때문에 고통스러운 남자..ㅠㅠ
* 조루 때문에 고통스러운 남자..ㅠㅠ

불상한 남자들의 예를 들면 끝이 없지만, 무엇보다 제일 불상한 건, 나처럼 장가가고 싶은데, 여자가 없는 남자들입니다. 시골에 가면 여자는 안 보이고, 사내새끼들만 빈둥빈둥 거립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많은 남자들이 불행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에 중시를 하는 연구자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 친구의 위대함은 물론 우리는 고맙고 지원해야 마땅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친구가 많아야 합니다.

그 친구의 위대함은 페미니즘주의자들이 직접 입증해주었습니다.

내가 다니는 대학원에는 시집은 안 가고 페미니즘주의 연구 하나로 살고 있는 여교수가 세명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이 발표할 때는 얼굴도 안 내밀더니, 그 친구가 발표하면 요청도 안했는데 각기 제자들을 앞세우고 달려옵니다.

마치 <대장금> 속의 한 장면 같습니다.

그녀들 앞에서 조심 조심 발표하는 친구의 모습은 마치 고양이 무리에 둘러싸인 들쥐 같습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많은 수컷과 암컷들이 흥미진진히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누가 인간의 본성은 선량하다고 했던가요.

발표가 끝나니, 친구는 무참히 이리 뜯기고 저리 뜯겨 뼈밖에 안 남았습니다.

덕분에 남권주의가 여권주의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지 철저히 느끼게 되었고, 그 친구가 왜 지금도 석사학위를 못 따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그걸 보고 누가 감히 남권주의를 연구하자고 들까, 일본여자들이 이렇게 무서운 줄 몰랐습니다.

그 후부터 페미니즘 선생들의 수업을 들을 때면, 얼마나 조심 했는지 모릅니다. 말 한 마디 잘못 했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래도 아슬아슬할 때가 참 많았습니다.

멋도 모르고 이수를 했는데, 수업 들으러 가니 남자가 저 혼자 뿐입니다. 교수님은 자꾸만 객관적인 입장이 필요하다며 나의 의견을 청구합니다.

침묵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가 있어야지요.

- 대남자주의에 대해 김군은 어떻게 생각하지요? 김군은 한국계이니 혹시 대남자주의 경향이 심한 거 아니예요?

- 김군은 결혼하면 남자와 여자는 꼭 합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 김군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섹스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남자들은 왜 기생집 출입을 하는 걸까요?

- 김군은 여자친구가 있나요? 여자친구와 데이트 할 때 자주 지각하나요?

- 중국 남자들은 집에서 요리도 하고, 빨래도 하고 한다는데, 김군도 결혼하면 그럴 수 있나요? 김군과 결혼하는 여자는 참 행복하겠어요.

- 우리 일본 남자들은 세상에서 제일 못난 놈들이거든요. 무뚝뚝하고, 관심이 없고, 가정이 뭔지 모르고, 그저 목욕하고 잠 자고 먹을 줄 밖에 몰라요.

언젠가 끝내 참지 못하고 제가 아슬아슬한 질문을 하나 했습니다.

- 선생님은 이렇게 예쁘신 분인데, 왜 지금까지 결혼을 안 하셨습니까.

그러자 선생님이 조용히 대답하십니다.

- 나는 우리 집에서 외동딸이고, 우리 집 부모님들은 내가 모셔야 해요. 내가 시집가면 남자 집 부모님들을 모셔야 하는데, 그럼 나를 키워준 우리 부모님들은 어쩌죠?

저도 저도 모르게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 그리고, 나는 남자들 시중을 드는 거 싫어요. 나는 어느 남자 시중을 들자고 이 세상에 온 거 아니거든요. 누가 남자없이 못 산다고 하던가요. 혼자 사니 많이 편안하네요.

그러고는 교수님은 가방에서 고양이 사진을 꺼내들고 열심히 고양이 자랑을 했습니다. 교수님은 페루샤 고양이와 같이 살고 있었던 겁니다.

교수님은 시간마다 열심히 남자들을 나쁜 행위를 성토했지만, 그래도 귀여운데 없지 않았습니다. 60이 다된 교수님이 애교가 얼마나 많은지, 20대의 내가 막 반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선지 일본의 남녀를 생각할 때마다, 저 놈들은 남극과 북극이 한 집에서 사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적도는 어디고, 남북회귀선은 어딘지 많이 궁금합니다.

도리가 남자와 여자의 문제에 관심이 많은 거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듣는 말에 의하면, ‘위대한 다케시’님의 지도교수가 제자가 하도 불상해서, 세 여자 교수님을 찾아가서 한번만 봐달라고 사정했지만 끝내 통하지 않았답니다.

별수없이 교수님이 그 친구보고 주제를 여권주의로 바꾸라고 권하니, 친구는 똥고집을 부리며 바꾸려 하지 않았습니다. 졸업 못해도 주의만은 던질수 없다는 거였습니다.

이거야 말로 진정한 ‘빨갱이’ 정신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그 친구 연구과제를 바꾸기 전에는 졸업은 물론, 장가 가기도 열번도 글렀습니다. 아니라, 아여 가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여권주의자들이 시집 안 가는데, 남권주의자도 본때를 보여줘야지요..^^

한반도의 남자들은 대남자주의던가..^^

- 까욱, 까욱...
2005-11-29 02:19:28
61.32.18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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