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까마귀 둥지(연재5)
icon 까마귀
icon 2005-11-17 18:14:07
첨부파일 : -
연재5:



미안하지만 담배 한대 더 피울게요. 도리는 밥은 안 먹어도 담배는 피워야 합니다. 대신 우리 어머니의 얘기를 하나 더 해드리겠습니다. 괜찮지요..^^

제가 기분 좋은 김에 우리 집 자랑을 많이 했는데, 솔직히 말해서 자랑 뒤에 말 못할 사연이 적지 않습니다. '家家都有難念的經'이라고, 가만히 훔쳐보면 우리 집도 말 못할 사연이 적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행복하고 자랑스러워 보이지만, 겉과 속이 같은 사람 봤습니까.

생각만 해도 부끄럽습니다만..^^

아버지 65살, 어머니 61살, 두 분 모두 환갑이 지났지만 아직 환갑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돈이 없어서 아니라 며느리가 없습니다. 슬하에 자식이 모두 셋인데, 아들 둘이 여직 장가를 못 같으니 말입니다. 며느리가 없으니 당연히 손자 손뎌도 없겠지요..ㅠㅠ 외손자라도 하나 있었어도 어지간이 위로가 되겠지만, 시집 간 여동생도 박사공분지 한다며 애를 가질 생각을 안합니다.

- 할아버지 할머니 오래 오래 앉으세요.

환갑 날에 째끄만 놈들이 자그마한 엉치를 하늘높이 쳐들고 절 하는 거,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그 재미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환갑 쇠는 거 아니겠습니까. 자식의 입장에서 너무 너무 죄송스럽습니다. 이젠 서방 갈 때도 한참 되었지만, 웬 일인지 마땅한 넘이 안 차려지네요. 결혼안하고 애를 만드는 방법도 있지만,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 다들 60에 환갑이라지만, 우리 집만은 70인 것 같다. 이젠 모르겠다. 다큰 네놈들이 알아서 해라.

부모님들의 이런 꾸중을 귀가 아플 정도로 들었습니다. 사실 자식들이 멍청해서 장가 못 간 거 아닙니다. 큰 아들은 박사로서 현재 북경의 모 유명한 대학의 교수직에 있습니다. 누군지 알만하지요. 작은 아들은 금빛이 번쩍이는 석사, 지금 여러분들을 위해 하소연 겸 공짜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이게 모두 자식들에게 공부를 너무 많이 시킨 덕분입니다. 장가를 잘 가라고 시킨 공부인데, 공부 많이 하더니 장가 안 가네요..^^

- 불상한 도리네 부모들...ㅠㅠ

빨리 방법을 대서 아버지 어머니의 환갑상을 받쳐올려야겠는데, 요즘 세상 잘 먹고 잘 살아도 참 별난 세상입니다. 마음 드는 아가씨 하나 만나기가 이렇게 힘들 줄 누가 알았습니까. 거리에는 예쁜 아가씨들이 줄처 다니지만, 내가 가만히 만난 아가씨들은 왜 나를 실망만 시킬까요?

가만히 만나서 그럴까..^^

그나 저나 며느리를 보고 싶은 어머님의 마음을, 나는 너무 너무 잘 압니다. 내 눈으로 직접 봤으니 그렇지, 정말 믿기 어렵습니다. 지난 겨울에 잠시 연길에 들렀다 왔는데, 그 때 발생한 일은 참 쇼크였습니다.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ㅠㅠ.

도리가 지금 열심히 '온 라인'과 '오프 라인'에서 <며느리감 사냥작전>을 하는 것도 이와 관계가 없지 않습니다.


- * -


그 날, 밖에서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니, 아버지는 마을돌이를 나갔는지 안 보이고, 어머니가 혼자 아랫방 구들에 누워있었습니다. 쉬는가 했는데 신음소리가 들리네요. 깜짝 놀라 웬 일인가고 물으니, 집안에서 청소를 하다 발을 헛디디고 넘어졌는데 팔목이 통쇠나답니다.

어머니의 팔을 거두고 보니 팔목이 벌걷게 퉁퉁 부어있었습니다. 보니 그저 일이 아니어서, 나는 택시를 불러 연변병원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갔습니다. 의사에게 보이니 뼈가 상한 것 같으니 사진을 찍으라고 합니다. 렌토겐실에 가서 사진 찍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라니, 의사가 나와 어머니의 이름을 부릅니다.

- 태향란.

내가 대신 일어나 달려가니 의사가 사진을 가르키며 말합니다.

- 팔목 뼈가 부러졌구만. 골과처치실로 가서 기부스를 하게.

과연, 어머니의 팔목뼈가 부러진 거였습니다. 년세가 많으시니 자그마한 사고에도 뼈가 견디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골과처치실로 갔습니다. 골과처치실에는 환자의 모습은 안 보이고 하얀 옷을 입은 젊은 남자 의사 둘이 한담하고 있었습니다. 퇴근시간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의사는 내가 넘겨준 렌토겐 사진을 보고 다시 어머니의 팔을 검사하더니, 처방에 싸인하고는 처치비용을 물고 오랍니다.

- 어머니 금방 갔다 올게요.

분부대로 달려가서 처치 비용을 물고 오니, 어머니가 팔에 석고를 한채 울상이 되어 처치실의 의자에 앉아있습니다. 내가 갔다 오는 사이에 이미 처치가 끝난 것 같습니다. 나를 보더니 어머니가 야단입니다.

- 얘야, 저 놈들 사람 죽인다. 왜 아픈 팔을 콱 잡아채서 더 아프게 만드는 거니. 저 나쁜놈들, 말도 안하고 콱 잡아당기면 어쩌니.

곁에서 그 말을 듣고 의사 둘이 돌아서서 눈웃음을 짓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만합니다. 끊어진 뼈를 제자리에 맞추느라 의사가 콱 잡아당겼겠지요. 어머니는 엄청 아팠나 봅니다. 나도 경험이 있어서 알지만, 살랑살랑 하면 더 아픕니다.

우스웠지만 웃으면 안됩니다. 우리 어머니인데..^^

- 이봐, 의사선생님들, 좀 살랑살랑 하지 그래.

의사가 돌아서서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말한다.

- 어머님,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꼭 살랑 살랑 하겠습니다.

그래도 어머니의 얼굴에는 여전히 노기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 팔이 삐뜰기만 해봐라. 가만 있는가.

나는 어머니를 위안하며 처치실을 나왔습니다. 병원 대문까지 와서 택시를 부르려는데, 돌연 어머니가 나보고 먼저 가랍니다. 병원 안을 돌아보고 가겠답니다. 무슨 일인가고 물으니, 병원에 의사하는 옛친구가 있는데, 금방 대학 나와 취직한 예쁜 의사나 호사아가씨들이 많을 거니 괜찮은 며느리감이 없는가 알아보겠답니다.

그 말을 듣고 기가 막혀서 웃음도 안 나옵니다. 자식 구실을 못한 제가 뭐라면 좋겠습니까. 팔이 안 아픈가고 물으니 하나도 안 아프답니다. 얼마 든지 혼자 돌아갈 수 있으니 근심 말랍니다. 그러면서 나보고 빨리 가라고 재촉하는 거였습니다.

- 불상한 우리 어머니...ㅠㅠ

그 때는 둘째 며느리보다도 맏며느리가 더 큰 문제였습니다. 바로 일년 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일년이 지나도 형이 장가 안 가니 형에게 절망하고, 올해부터는 둘째인 나만 잡고 장가가라고 야단입니다. 막 아가씨들의 사진을 열 두장씩 보내오면서...^^

이만하면, 우리 어머니의 마음 알고도 남지 않겠습니까. 나 책임이 큽니다. 어머니와 약속도 했습니다. 그러니 죽어도 이번 설에는 한놈 잡아가지고 가야합니다.

어머니, 좀만 참아주세요. 작전 다 짰으니 이번 설에는 꼭 한놈 잡아가지고 갑니다.

도리, 도리, 화이팅..^^
2005-11-17 18: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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