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기고>민족의 반역자 이 땅에 설수 없게 영원히 퇴출해야
icon 파발마
icon 2011-03-03 08:12:48
첨부파일 : -
<기고>민족의 반역자 이 땅에 설수 없게 영원히 퇴출해야

3.1절 제92주년 ,광복 제66주년, 나라위한 고귀한 희생 버림받고 잃어버린 애국이 되지 않게 해야 민족정기가 바로선다.
외세의 침략기나 난세에 겨레와 민족을 배신하거나 팔아넘기는 매국행위자는 그의 종말을 반드시 보여줘야 한다.

미발굴독립유공자 후손 선조 독립운동 자료 찾아 36년 고군분투, 광복 65주년인데 … 독립운동가 후손 정용선의 증손자 정병기는 36년째 고투, 주먹 불끈 쥐고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다. 당해본 사람이 아니고도 상상하기 어렵고 그 고통과 슬픔을 알겠는가?

증조부님 독립을 위해 일제의 모진 고문과 탄압 그리고 굶주림에도 굴하지 않아...가족들도 독립운동 했다는 이유로 숫한 고문과 감시에 따른 고생달고 살아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인생살이 연속, 일제시대 경성형무소(악명 높던 경성형무소 현 마포 공덕동 서부법원.검찰청)에서 옥사한 증조부가 독립투사였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36년째 지루하고 고독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정병기(54)씨. 정부는 난세에 민족을 배반하는 반역자 말로 확실하게 정리하고 보여줘야 하며, 민족의 반역자는 이 땅에 절대로 서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3.1절 제92주년이자 ‘광복 66주년’인 올해도 어김없이 아픈 몸을 이끌고 방방곡곡을 누비고 있다. 증조부가 독립투사였다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단서만 있다면 만사를 제쳐두고 어느 곳이든 달려간다. 부양할 가족도 있고 몸도 성치 않지만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증조부와 일제로부터 모진 탄압을 받았을 조상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만 둘 수 없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악명 높던 마포 공덕리 경성형무소 역사관 건립이 반드시 필요하고 주장한다. 수많은 애국지사 독립투사들이 일제의 모진 고문과 압과 그리고 탄압과 굶주림에 생목숨을 잃어간 한 많은 역사의 현장이다. 당시 경성형무소는 한번 걸어서 들어가면 절대로 나오지 못하고 시신도 돌려주지 않고 통지문으로 알려온 곳이 바로 이곳이건만 역사의 현장은 흔적조차 없이 초라한 표지석만 있다. 침략자 일본은 정말로 악독하고 포악한 인간 말쫑들이다.

정 씨는“아버지와 친척 등의 증언을 종합하면 증조부인 정용선(1883년생) 선생은 1900년대 초부터 1916년까지 고향인 경북 봉화군을 중심으로 독립군 군자금 모금 활동을 했던 독립운동가가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정씨에 따르면 독립 자금을 모으기 위해 친일파의 집을 털고 일본 주재소를 습격하는 등 위험천만한 활동을 서슴지 않았다는 그의 증조부는 1916년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고 10년 가까이 지난 1928년 경성형무소에서 옥사했다는 통지서 한통만 날아왔다. 정씨는 “당시 반일 활동가를 가두던 경성형무소에서 장기복역하다 숨졌다는 것 자체가 증조부가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희생됐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또 증조부로 인해 일제로부터 모진 탄압을 받자 이를 견디지 못한 일가친척들이 증조부 이름을 족보에서 파버렸고 증조부가 실종된 후 일제의 화가 미칠까 두려워한 가족들이 나서서 증조모를 개가시켰다는 사실은 독립운동을 했음을 뒷받침하는 명백한 ‘정황증거’라고 강조했다.

실제 호적등본을 보면 증조모는 독립투사의 아내였던 것을 감추기 위해 본명인 ‘박열이’에서 ‘정열이’로 개명까지 했다. 그러나 일제가 만든 호적에 증조부가 경성형무소에서 병으로 사망했다는 기록 외엔 독립운동에 가담했다는 것을 증명할만한 서류는 남아있지 않다. 국가보훈처는 물론 국가권익위원회 청와대에까지 서류를 안 내밀어 본 곳이 없지만 ‘객관적인 입증자료가 없어 독립유공자로 선정할 수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그는 국내에서 안 되면 외국에서라도 찾아보자는 생각에 1993년 미국 의회도서관에 편지를 띄워 수형인 명부가 담겨 있을지도 모르는 마이크로필름 500장을 200달러를 주고 사오기도 했다. 일본 외무성에 수차례 서신을 띄우기도 했지만 안타깝게 결정적인 사료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 지난해엔 국가를 상대로 행정소송까지 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정씨는 “일제시대 형무소 수형인 기록을 지난 80년 12월 실수로 모두 불살라버렸던 정부가 이제 와서 독립운동으로 수감됐다는 걸 증명할 문서를 가져와야 독립유공자로 인정해준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더욱이 일본 외무성은 1995년까지 조선인 수형인 명부를 보관했지만 우리 정부는 단 한번도 그 서류를 요청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정씨 할아버지는 인접 금광에서 일하다 폐병으로 숨졌다. 정씨 자신은 경찰관으로 근무하던 지난 1980년 강도살인범을 붙잡다 부상을 당했다. 당시 후유증에 간경화로 지금도 고통을 받고 있다. 그리고 배움이 전혀 없는 무학인 아버지도 군에서 부상을 당하고 아무런 혜택도 없고 아들도 모두 군에서 다쳤으나 혜택에서 제외되고 있다. 현재 철저히 파괴되고 사라져 버린 증조부의 독립운동 자료 찾기가 당시 독립운동 하기보다 어려운 현실이다. 참으로 개탄스럽고 안타깝다.

정씨는“독립운동가를 찾는 일을 후손들에게만 떠넘기는 정부가 야속하지만 어디엔가 분명히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있을 거라 믿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부는 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그 후손들 가슴에 못 박는 일이 없게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정병기 <미발굴독립유공자 고 정용선의 증손자>
2011-03-03 08:12:48
121.130.63.160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