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자살보도 신중해야
상태바
언론 자살보도 신중해야
  • 천원주
  • 승인 2007.01.26 11: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언론재단 교육1팀장

가수 유니 씨가 지난 21일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매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다. 한참 왕성하게 일할 20대 중반의 재능있는 연예인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동기와 배경을 두고 추측이 무성하다. 언론은 그 원인으로 최근 앓아왔다는 우울증 증세와 함께 새 앨범 출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꼽고 있는 듯하다.

그동안 언론은 유명인의 자살사건 보도시 필요 이상으로 과대보도하고 흥미위주로 접근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2년 전 영화배우 이은주씨가 자살할 때 그랬고, 2004년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비극적인 죽음, 안상영 전 부산시장의 옥중자살,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의 한강 투신 등 유명인사들의 자살 보도에서도 많은 문제점을 보아왔다.

시간별로 상황을 재구성하는 등 자살 방식을 세세하게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동정적 시각이 지나치다 못해 인물을 미화함으로써 사안의 본질을 실종시켰다는 비난을 받았던 터였다. 이번 유니 씨 사건 보도에서도 “한 방송에서 미혼모의 딸이라고 고백했다” 는 점이나 “섹시코드” “성형미인”을 거론하면서 네티즌들의 악플이 자살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추측한 것을 보면 흥미 위주의 보도양태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렇게 서두에서 언론학 교과서에서나 나올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유명인들의 자살이 전염의 시너지효과를 빚어낼 우려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이 있다. 18세기 유럽의 청소년들이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은 후 주인공 베르테르의 권총자살에 동조해 줄이어 자살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자살 행위가 언론이나 영화 문학에서 영향을 받아 전염된다는 것은 학계의 정설이다.

특히 연예인이나 유명 정치인의 자살 사건에 대한 대대적인 보도는 일반인에 대한 자살보도 보다 14.3배나 되는 후속 자살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가 있다. 1977년 팝가수 엘비스 프레슬리의 죽음 이후 그를 추모하는 자살이 이어졌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2005년 기준 10만명당 24.2명으로 OECD 국가중 1위이며, 20대와 30대의 사망원인 중 자살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자살 사망자는 매일 38명으로 한해에 1만 4천명 이상이 스스로 생명을 끊고 있다고 한다.

미디어의 신중한 보도가 영향력을 줄였다는 연구 사례가 있다. 1994년 호주에서는 청소년들의 우상이었던 유명 록그룹의 리드싱어가 권총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연구진은 미디어보도가 젊은이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지 연구하였는데 그 결과 그의 죽음이 호주 청소년들에게는 영향을 주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그의 부인이 죽음을 낭만적으로 덧칠하지 않고 약물문제와 수차례의 자살 실패 등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모방의 기회를 줄만큼 매력적이지 못했던 것이다.

자살예방협회는 2005년 7월‘언론의 자살보도 기준’을 권고한 바 있다. 기준에는 자살을 영웅적 행위나 낭만적 해결책처럼 포장하기, 자살 방법의 구체적 설명, 자살 원인 단순화하기, 자살이란 용어를 제목에 넣기 등을 피해달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자살은 더 이상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는 인식아래 범 사회적인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보건복지부가 ‘자살예방대책 5개년계획’을 마련하고 법제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언론 또한 유명인 자살에 대한 과도하고 신중치 못한 보도가 자칫 자살 풍조를 부채질 한다는 사실도 고려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길 바란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