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벌판을 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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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벌판을 달리며
  • 조남철
  • 승인 2007.01.19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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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지 편집위원
K형!

지난 달 연길에서 기차를 타고 북경으로 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비행기로는 2시간이면 갈 거리를 24시간이나 달려가야 했지만 만주 벌판을 기차로 달려 보고 싶은 욕망때문이었습니다. 연변 사회과학원의 강룡권 연구원이 지은 <동북항일운동 유적 답사기>를 읽고 난 후의 감동이 나를 만주벌판을 기차로 달리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 책에 나온 지명들을 한 번 스쳐라도 지나가고 싶은 욕망이 내 몸과 마음을 강하게 꿰뚫고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꼬박 24시간이 걸리는 긴 여행 중에 일제시대 만주에서 우리 선조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바친 일을 적은 책을 다시 한번 꼼꼼히 읽었습니다. 창밖에는 하얀 눈이 가득한 황량한 만주의 벌판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책의 지은이는 연변 사회과학원의 강용운이라는 연구원인데 자금이 없어 280여 일간을 자전거로 동북삼성(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의 54개 시와 현, 52개의 유적지를 돌며 독립운동의 자료를 모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지답사와 함께 600여 명 노인들의 증언을 통하여 일제하 만주에서의 우리 선조들의 독립운동에 관한 아주 자세한 기록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결국에는 그는 과로와 영양부족으로 요령성의 어느 길 위에서 쓰러져 그만 세상을 뜨게 됩니다.

K형!

책을 읽으며 내내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매우 소박한 필치로 쓰여지기는 했지만 지은이의 민족과 조국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가득 전해 오는 글이었습니다. 몇 십년 전 바로 저 거친 벌판 위에서 우리 선조들이 땀흘려 삶의 터전을 만들려 노력하였으며 또 그 와중에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심지어 목숨까지도 바치고 헌신하였다는 뜨거운 이야기를 읽으며 까닭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창밖으로 연길, 조양천, 안도, 돈화, 교하, 길림, 반석 등 우리 독립운동사에 익숙한 이름의 역들을 지날 때는 까닭모를 흥분에 들뜨기도 했습니다. 4인실의 침대칸 안은 난방이 잘 되어 훈훈했지만, 그래도 창틈에는 두텁게 얼음이 얼고 있어 만주의 추운 날씨를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하긴 전 날 저녁 연길의 최저 온도가 영하 28도였으니 그 추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는 일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K형!

기차 안에서 내내 민족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말이 갖는 파괴적이고 무서운 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국수주의적인 측면에서의 '민족'이라는 말은 매우 위험합니다. 그것은 자칫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들을 파멸시킬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팟쇼와 군국주의로 이름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민족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감격적입니다. 특히 우리 민족처럼 뼈아픈 근대사를 체험한 경우 이 말은 더욱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새해, 새로운 한 해를 결심하며 다시 한번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재외동포들을 생각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겠습니다. 새해에는 진실로, ‘민족의 이름’으로 전 세계 우리 동포가 크게 함께 웃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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