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의 사명감을 보게 해 준 아름다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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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의 사명감을 보게 해 준 아름다운 여행
  • 안금화
  • 승인 2006.12.11 1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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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금화의 한국 방문기- 마지막) '민들레 영토'와 따사모회원들
▲ 안금화씨 일행들이 서울페스티벌을 찾아 탈춤을 추던 농악대 단원과 념촬영을 하고 있다.
5월 5일 어린이 날, 조선왕조의 정궁 경복궁엔 세종대왕 즉위 의식 재현이 한창이다.

궁궐은 중국에 비하면 비교도 안될만큼 작지만 중국보단 아기자기하여 자기집 거처마냥 편안한 느낌이다. 중국인 관람객들이 많았다. 세종대왕과 명성황후는 내가 좋아하는 조선 역대의 황실인물이다. 어디가도 자랑할만한 사랑과 지조를 지닌 꿈꾸는 인물들이었기에. 인사동거리와 명동. 이곳들은 거의 젊은 사람들과 유람객들의 세계였다. 그리고 마로니에공원에선 꼭지점댄스가 한창이다. 전국민이 함께 추는 춤, 그 열광의 도가니.

5월 6일, 아침 일찍 교수님이 계시는 방송대 국문학과 사무실에 들렀다. 교수님의 제자 한분이 와 계셨다. 두번째 홈스테이 담당 장인숙 학우님이다. 그날은 온종일 비가 내렸다. 민속박물관에 가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우리는 전쟁기념관을 참관했다. 수나라군대와 을지문덕,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 6.25전쟁…. 그것들을 돌아보며 전쟁의 참담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더우기 가슴 아픈 분단을 잠시나마 느끼기도 했다. 이데올로기의 차이, 그것이 낳은 분단, 그리고 오늘. 비속에서 이와는 달리 기념관 밖에 설치된 예식장에서 전통혼례식이 치러진다. 신랑신부 은혜의 단비를 가득 맞기를 기원하며, 우리의 두번째 홈스테이 장소인 분당으로 가는 길은 조금 피곤했다.

그 피곤을 달래주려고 또 비 때문에 제대로 되는 안내를 못했다면서 장인숙 학우님은 가장 가고 싶은 곳, 그리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고 물었다. 항상 인터넷으로만 볼 수 있었던 우리말로 된 영화를 이곳에 와서 직접 보는 것 또한 좋을 듯 싶었다. 우리는 저녁 11시 좌우에 ‘맨발의 기봉이’를 보러 갔다. 신현준의 연기에 놀랐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에 깊이 감동됐다.

5월 7일, 서울 패스티벌이 펼쳐졌다. 이화대 학생들 몇몇과 그 축제에 참가했다. 그리고 청계천에서의 설레임, 맨발의 기봉이처럼 맨발의 자신이 너무 좋았다.

8일 정연남 학우님과 에버랜드 환상의 세계, 9일 ‘민들레 영토’에서의 따사모 회원들과의 만남. 그날은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많은 고마운 분들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서로 다른 생각으로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한 민족, 한 생각, 그럴지라도 다른 이름과 자세! 이러한 것들을 우리 사이에 정확하게 나눔으로써 상대의 안좋은 면만을 기억하며 흐려졌던 우리의 안목을 바꿔야 했다.

진지한 나눔의 공간이 이름처럼 민들레 영토였다. 씨도 꽃처럼 피워내는 민들레, 날려간 씨-. 우리 조선족은 언제 어디서나 자부심을 가져야 했다. 오늘 자기의 정체성을 찾는 일이 어렵기만 하다. 하지만 자기 이름을 당당히 부를 수 있는 자부심! 그 이름에 걸맞는 사유와 행동, 그것이 민족의 이름을 부끄럽지 않게 하는 일이었다.

도움을 주고 있는 고마운 분들의 뜻에도 합하는 일이고 사람으로써 사람이 되기 위한 바람직한 길이기도 했다. 받기는 쉬워도 주기가 어려운 것이 보편적인 심리가 아닌가. 나누어준다는 것은 자기의 생각과 마음과 정성을 나누는 일이며 상대에게 그것이 수용가능할 때의 최고의 미덕이다. 이는 더 정확하게는 자기의 생명을 나누는 일이며, 이런 나눔이 끊이지 않는 나눔을 낳는 것이다. 나눔의 생리를 기억하며 ‘민들레 영토’에서의 따사모회원들과의 만남이 한국과 한국인을 알아가는데 큰 보탬이 되었다.

-조선족으로서의 사명
한국탐방은 나에게 보아야 할 것으로 한국인의 자부심을 보게 했으며, 나눔의 생리를 보게 했다. 그러한 자부심으로 조선족인 나 역시 언제 어디서나 빛을 발하여야 했고, 그러한 나눔이 흘러가게 해야 함을 깊이 깨달았다. 조선족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땅덩어리에서 우리의 이름을 살리는 일은 조선족이라는 이름을 지닌 자들이 해내야 했다.

자벌레가 움츠렸다가 더 먼 곳으로 나아가려는듯이 우리의 잠시의 움츠림, 그리고 잠시후의 전진!

10일 중국으로 입국하면서 우리의 짧지만 긴 여정이 이로써 막을 내렸다. 그러나 오면서 배에서 본 불법자 추방은 계속해서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언제가면 조선족에게서 불법이란 단어가 사라질지 우리 이름에 씌어진 아픈 먼지를 닦고 싶다. 자기를 먼저 돌아보고 자기를 찾는 일에 충실할 것과 상대에 대한 비판의 자대를 들기보단 자기에 대한 비판의 자대를 들고 생각할 일이 우리 조선족의 과제다. 그리고 채워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일이 두번째 과제이기도 하다. 세번째 과제는 헤어질 때와 다시 모일 때를 아는 지혜이다.

25세에 밟은 한국땅, 내가 본 한국인, 9박 10일간의 한 조선족으로서의 생각. 감추어진 것들을 발견하는 순간부턴 사람이 사람이 되는 법이다.

<연변대 조선-한국학학원 조선문학전공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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