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벡 꼬레 사람들의 재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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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벡 꼬레 사람들의 재이주
  • 구본규
  • 승인 2003.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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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벡 사람들은 거짓말을 너무 잘해서 안됩니다. 일을 다 끝내도 트집을 잡아 계약서상의 돈을 주질 않아요. 지방사람들은 다른 민족이 잘되는 것을 두고 보질 않습니다. 좀 컷다 싶으면 아예 죽여 버립니다. 그저 조용히 일이나 하면서 살면 되지요.'
3년전 우즈베키스탄의 서남부 지역 호레즘주(州)의 우르겐치에서 타쉬켄트로 이주해 온 우가이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취(39세)의 푸념이다. 그는 용케도 3년전 이곳 타쉬켄트로 이주하는데 성공하면서 집도 사고 자가용도 샀다. 이곳으로 오기전까지 우르겐치와 타쉬켄트를 오가며 틈틈히 건축일을 하면서 적당한 기회를 잡아 여동생 가족과 함께 완전 이주해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부모님은 우르겐치의 뜨거운 태양아래 살고 계신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그런 그가 다시 재이주를 계획하고 있다. 타쉬켄트로 온 것만도 성공적인 이주였는데, 이제는 러시아쪽으로 아예 떠나 갈 생각을 하고 있다.
구소련 꼬레사람들은 그래도 잘 사는 민족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구소련에서 독립한 이래 전반적으로 형편이 많이 나빠졌다. 비단 우즈베키스탄의 꼬레사람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국가 경제가 지속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고 정부 당국은 발표를 하지만 이를 그대로 믿는 사람들은 없다. 나날이 상승하는 물가와 저임금은 이들의 생활을 더욱 곤란하게 만들뿐이다.
‘우르겐치에는 떠나고 싶어도 못 떠나는 사람들만 남아 있어요. 우리 부모님도 떠나는 것이 어디 쉬워요. 먼저 돈이 있어야지요. 집을 팔려고 해도 팔리지도 않고, 팔아도 돈도 안됩니다. 내가 빨리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데....’
타쉬켄트에서 약 1천Km 떨어진 우르겐치의 상황을 묻자 대뜸 한숨 먼저 쉬면서 꼬레사람들의 기구한 운명을 늘어놓는다. 1937년 강제이주를 당한 조부모님을 따라 카자흐스탄을 거쳐 우즈베키스탄의 서쪽끝 우르겐치에 들어온 우가이 세르게이의 부모님은 이제 그곳이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자식마저 타지로 보내고 노부부가 외롭게 살고 있다. 이제는 농삿일을 할 힘도 없고, 작은 밭떼기나 가꾸면서 소일 할 뿐이다. 이웃집에 살고 있는 따냐 할머니 내외 사정도 마찬가지다.
필자가 지난해 5월 타쉬켄트에서 150Km 떨어진 시르다르야주의 주도인 굴리스탄에서 만나 꼬레 할머니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독립국가연합으로 흩어진 자식들이 저마다 살길 바빠 작년에 죽은 남편의 제사를 혼자서 외롭게 지내고 계셨다. 남은 집이라도 팔면 그 돈으로 딸네 집이든 아들네 집이든 가서 손자손녀를 보면서 살고 싶은데, 떠나지도 못하는 상황에 한숨만 나온다. 이제는 죽은 남편곁으로 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젊은 꼬레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고 그나마 농사짓던 사람들도 고본질을 한다고 러시아로 떠다닌지 오래되었다. 고향 땅에 남겨진 사람들은 노인들뿐이다. 여러 형제가 한자리에 모여 담소를 나누며, 정다웠던 시절을 회상하던 일도 아득하기만 하다. 끝없이 펼쳐진 뜨거운 사막의 열기만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고 있을 뿐이다. 이제는 저 멀리 신기루와 함께 찾아올 자식도 없어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지방인구의 대도시 유입을 막기 위해 독립한 이래 자국민들의 타쉬켄트 진입을 법으로 막고 있다. 물론, 무조건적인 도시 유입을 막는 것은 아니나 거주이전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뒷돈을 주고 전입에 성공하지 않는 한 우즈베키스탄 국민이면서도 타쉬켄트에서 불법 체류자와 같은 신분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사실, 이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들이다. 지금도 타쉬켄트시 구지역의 촐수 바자르나 꾸일륙 바자르 인근에 형성되어 있는 인력시장에서는 지방에서 올라온 현지 민족들을 이른 아침부터 쉽게 만나 볼 수 있다. 타쉬켄트 경찰 당국도 이들이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방관하는 입장이다
우즈베키스탄의 꼬레사람들은 수도인 타쉬켄트로 진입하기보다 독립국가연합 소속의 국가로 가는 것이 한결 싶다. 아직은 언어가 같고, 서로 왕래하며 살던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구소련에서 독립한지 10년이 갓 넘은 지금의 상황에서 문화적 동질성을 갖고 하나의 연방의 구성국으로 비교적 자유롭게 왕래하며 살았던 사람들에게 두부 자르듯이 딱 소속 국가 이외의 다른 나라로 완전한 전출이나 왕래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독립국가연합 구성국간의 비자협정이 체결되고 국경이 봉쇄된다 하더라도 하루아침에 부모형제 친지가 이산가족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우가이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취가 연해주로의 이주를 생각해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연해주로의 이주는 러시아로 이주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선택이다. 다시 연해주 지역이 1930년대의 문제 지역처럼 될지 모르는 상황이고, 마땅히 아는 사람도 없으며 경제상황이 좋아 일자리를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적 고향이라고는 하지만 딱히 반갑게 오라는 사람도 없는 생면부지의 땅으로 찾아갈 수 없는 형편인 것이다. 더구나 독일이나 이스라엘, 그리스처럼 자국민을 받아들이는 재외동포정책이 펼쳐지는 것도 아닌데 괜히 고국에 대한 미련을 갖고, 고국 가까이 위치한 연해주 지역으로 간다한들 더 마음만 아플 것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전혀 다른 민족들이 살고 있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사람들 속으로 깊숙히 잠입해 들어가 정착하는 것이 자신들과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서 더 나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날이 어려워져 가는 우즈베키스탄의 경제상황에서 제2, 제3의 우가이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취는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곳이 연해주가 될지 러시아가 될지 우크라이나가 될지는 본인들만이 결정할 문제이다. 험난한 인생행로의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우즈베키스탄의 재외동포.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우즈베키스탄의 재외동포들을 바라보면서 한반도가 위치한 동쪽을 향해 긴 여운을 남기며 중앙아시아의 열기 속으로 뛰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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