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부시.고이즈미 동맹'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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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부시.고이즈미 동맹'이겼다
  • 김명철
  • 승인 2003.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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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철 / 재일 시사평론가

지난 2월에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이 국내에서 벌써 '사면초가'에 몰렸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5월 중순, 기존 지지파들로부터 "대미 굴욕외교를 했다"고 몰매를 맞았다. 그런데 6월 초엔 보수파들이 "대일 치욕외교를 했다"며 난리라는 것이다. 이에 더해 노 대통령은 형의 '부동산 스캔들' 때문에 각종 매체들로부터 연일 신랄한 공격을 당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 매스컴들에 따르면 노 대통령 집권 1백 일 시점의 지지율이 역대의 다른 대통령과 비교할 때 최저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벌써부터 "대통령 못 해먹겠다"는 등 나약한 소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은 성급하고 과격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일리가 있는 소리인 듯하다. 고속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인해 탄생한 대통령인 만큼, 느린 아나로그가 아니라 고속 ADSL적 성과를 바라는 한국인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금 여유를 갖고 객관적으로 지켜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노 대통령도 매스컴의 비판에 지나치게 신경질적으로 대응하거나 그들의 시비에 하나하나 반론 및 자기변호를 강행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

노무현의 외교성적을 평가하려면 우선 현 국제정세하에서 한국의 최우선 과제가 무엇인지부터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노무현의 방미와 일본 수상의 방미를 비교하고 누가 더 국익에 이로운 선택을 했는지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한국의 다른 역대 대통령과 비교해 보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노무현은 한국의 최우선 과제 실현에 충실했다>

한국 정부에 있어 당면한 최우선 정책 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안보문제다. 한반도에 새로운 전쟁이 발발하는 것을 방지하는 일이다. 지난 2001년 부시 행정부가 집권한 뒤부터 한반도에서는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북한의 핵 개발 문제를 둘러싸고 전쟁재발의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필자는 이 같은 상황을 두고볼 때 노무현 대통령은 방미.방일을 통해 훌륭한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한다.

우선 지적해야 할 사실은 지난 5월 14일 발표된 한.미공동성명과 6월 7일의 한.일공동성명엔 '북에 군사적 압력 및 옵션을 가하겠다'는 문구가 빠지고 '외교?평화적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문구가 삽입되었다. 비록 한.미공동성명엔 '북에 대한 추가적 조치'가 언급되었고 5월 23일의 일.미정상회담에서도 '더욱 강력한 조치'가 언급되긴 했지만 시기적으로 가장 최근인 한.일 공동성명에서는 양 문구가 모두 삭제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외교력이 뛰어나다고 판단한다. 공동성명에 등장하는 '북조선의 핵은 용인할 수 없다' '추가적 조치' 등의 강압적 용어들은 추상적 표현으로 다소 부시의 입장을 배려한 것으로 생각된다.

부시 정권이 한.미공동성명에 삽입하고 싶은 구절은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북한은 즉시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계획을 포기하고 폐연료봉에 대한 재처리를 중단해야 한다. 또한 북은 국외로 추방한 핵 사찰관을 다시 받아들이고 핵확산방지조약(NPT)으로 복귀해야 한다. 이에 따르지 않으면 한.미양국은 군사행동도 불사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한.미공동서명이 발표되었다면 한반도의 전쟁위기는 현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격화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표현은 일체 보이지 않는다.

부시는 지금까지 북한의 최고 지도자를 증오한다고 공공연하게 떠들어왔으며 북을 '악의 축'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그는 또 김정일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선제공격도 불사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이런 부시가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는 말조심을 했던 것이다.

외교상 실책으로까지 불려진 지난 2001년 3월 7일의 김대중-부시 정상회담 때 부시가 햇볕정책을 얼마나 신랄하게 비난했었는지 상기해 보라. 2001년의 상황과 비교해 봐도 노무현 대통령의 외교력엔 특별한 것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에 사는 필자의 입장에서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지난 일이긴 하지만 김대중-부시 정상회담 때 한국 매스컴의 보도태도가 자국에 대한 자긍심을 완전히 상실한 것처럼 보여 짜증이 났던 적이 있다.

부시는 노무현과의 회담에서 왜 이토록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을까.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폐연료봉 8천여 개의 재처리를 완료했다고 선언한 바 있다.

<부시는 왜 소극적이었을까>

'악의 축'에 대해서는 선제공격도 불사하겠다고 떠들어 대던 부시가 이른바 '부시 독트린'의 적용을 주저하며 "북핵 문제는 외교적.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노무현 정권이 한국도 공멸하게 될 '북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옵션'을 전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5월 15일 [뉴욕타임스]는 '부시와 노무현은 대북정책에 대해 애매모호'란 표제하에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한.미정상회담에서 양국 간에 정책상의 상이점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핵사찰을 받아들이라거나 핵무기용 플루토늄 재처리를 중지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부시는 북의 지도자 김정일의 이름조차 입에 담지 않았다."

이러했는데도 불구하고 부시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으로 많은 진전이 있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한.일정상회담에서도 일본의 고이즈미 수상은 대북압력을 중시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대화를 강조하는 등 양국간의 의견차가 뚜렷했다. 지난 6월 9일자 영국의 유력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노무현-고이즈미, 대북정책에서 견해차이'라는 기사에서 이렇게 보도했다.

"한.일 양국 정상의 의견 차이는 미.일 양국이 북한에 대해 형성할 공동전선에 한국이 참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사실 일본의 언론매체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을 비중 있게 취급하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일본 언론들은 북에 대한 공포감과 적대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지나칠 정도로 열성적인 반북 캠페인을 벌여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노무현이 고이즈미와 전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 일본 언론 자신들의 보도태도가 부자연스럽게 비칠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일본에서 북한과의 공존공영 의식을 강조했고 특히 6월 8일엔 주일 한국 특파원들과의 인터뷰에서 3일 뒤 나가카 항에 들어올 예정인 만경봉호에 대한 일본 정부의 특별사찰 준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같은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일본에서 '역시 남북은 같은 민족이며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비쳐졌을 것이다.

일본의 한 외교평론가는 지난 6월 7일 노무현과 고이즈미의 공동 기자회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이즈미는 거북한 표정이었고 노무현은 당당하게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변호사가 되고 거기에 대통령까지 올라간 사내의 남다른 모습이었다."

결국 고이즈미도 노무현의 평화번영 정책에 지지를 표명할 수밖에 없었다.

부시는 동맹국인 프랑스와 독일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라크 전쟁을 강행한 자다. 여러 가지 정황들을 종합해본 결과 필자는 이런 부시와의 교섭에서 노무현이 외교통상부를 질타.격려해 가며 한민족의 이익과 번영을 전면에 내세웠고 이를 받아들이게 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일본의 고이즈미 정권에 대해서도 노무현은 지론을 굽히지 않고 일본의 '유사법제'에 대해 "불안과 의혹이 겹쳐진 심경으로 지켜보고 있다"고 못을 박았다.

만약 노무현이 대북 압박정책에 전면 지지를 표명하며 미국과 일본을 오갔다면 한반도가 전장으로 전락하고 한.일 양국도 전 국토가 불바다로 변해 소멸할 가능성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을 것이다. 전쟁이 발발하면 그 피해가 1950년의 한국전쟁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한.일 양국은 전쟁 발발 순간에서 1시간도 채 지나기 전에 공멸할 것이다.

그래서 부시 정권이 서울의 북쪽에 배치되어 있는 미군을 재배치하려는 것이다. 주한 미군의 제1 임무는 서울의 북쪽에서 북한 인민군과 맞서는 것이지만 이를 두려워해 서울을 인간방패로 삼아 남쪽으로 도피하려는 것이다. 최근의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은 서울의 2천만 시민을 희생양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미군의 본질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일본의 매스컴은 반은 자학적이고 반은 자랑삼아 '일본은 미국의 식민지이며 애완견'이라고 자평한다. 최근엔 다음과 같은 말을 부끄럽지도 않은지 태연하게 내뱉고 있다.

"노무현은 백악관에서 30분밖에 부시와 만나지 못했지만 우리 고이즈미 수상은 부시의 텍사스 목장에 초대되어 트럭에 동승하는 등 10시간이나 환대받았다."

<노무현의 30분, 고이즈미의 10시간>

세계 제2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일본이 미국의 식민지이며 애완견이라면 한국은 그 이하의 것이란 말일까. 하긴 영국의 블레어 수상도 '부시의 푸들'로 불려지고 있긴 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과 만난 것은 겨우 15분이었다. 그것도 백악관이 아닌 뉴욕의 유엔대표부에서였다. 당시 상황으로 볼 때 김영삼은 미국의 비위를 맞추러 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클린턴과 실제로 이야기한 시간은 3분에 불과했다고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당시 김영삼은 미국을 방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노무현이 부시와 만난 '30분'이란 시간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를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는 바로 '대북 군사옵션'에 대한 노무현의 반대다. 노무현이 '부시 독트린'에 반대한다고 해도 부시로서는 외견상으로나마 한국과 동일보조를 맞춰야 했다. 현재의 시점에서 한국과의 관계가 삐걱거리는 모습으로 보여지는 것은 '부시 행정부 외교실적에서의 큰 실점'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시 정권쪽에서 타협을 시도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30분 이상 한.미정상회담을 속행하면 양국 정상 간의 견해 차이가 공공연하게 될 우려도 컸다.

바꿔 말하면 노무현 본인은 어쩌면 '부시가 나를 애완견으로 여겨도 좋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부시쪽이 부드럽게 거절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에 비해 고이즈미는 부시의 애완견이 되길 갈망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노무현에게 그 30분은 30시간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엄청난 긴장감을 느꼈을 것이다. 무서웠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노무현이 자신을 '부시의 애완견인 척했던' 것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물론 고이즈미가 스스로 부시의 애완견이기를 바라고 그 상태에 만족하고 있는 것에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미 정부의 지원이 아니라 민족적 자주와 번영을 바라는 한국의 젊은 세대의 지지 덕분이었다. 부시 행정부의 지지가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아니란 이야기다. 그리고 노무현 자신이 정말 부시의 애완견이 되었다간 국민의 기대를 완전히 배신하는 것뿐 아니라 부시 행정부의 도발로 한반도가 삽시간에 잿더미로 주저앉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이즈미는 그렇지 않다. 비록 한국의 10배에 달하는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고이즈미의 기반은 부시 행정부 및 숭미파 일본인들의 지지다. 그리고 일본 내 경제정책의 실패에 대한 불만을 다른 쪽으로 돌릴 수 있는 알맞은 상대가 바로 북한인 것이다. 그래서 고이즈미는 진심으로 부시의 애완견이고 싶어 할 수 있는 것이다.(그러나 지난 5월 4일자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런 고이즈미도 부시와의 정상회담에서는 "북조선을 과격하게 자극해 전쟁의 위기를 범하는 일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이 미국과의 동맹관계에 정면으로 도전할 수 있는 세력은 아니다. 프랑스나 독일 정도의 자주권이라도? 현재로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한국 대통령은 국군에 대한 전시 통수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더욱이 미국 시장을 잃어버리면 한국 경제는 곧바로 파탄에 이른다. 한국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미국의 영향력이 침투하고 있는 현실에서 '서툰' 행동은 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노무현 정권은 지난해 12월의 선거에서 근소하게 승리한 것에 불과하며 현재도 단순히 행정부만 쥐고 있을 뿐이다. 여당인 민주당도 의회에서는 소수파로 입법부도 사법부도 장악하지 못했다. 이 같은 불리한 상황에서 노무현은 '부시에 대한 30분간의 저항'을 시도해 성공시킨 것이다.

노무현의 기지는 그가 이번 방미.방일과 관련, 존경하는 인물로 김구와 링컨을 거론한 것에서도 엿보인다. 김구 선생을 존경한다는 것은 친일.친미 보수세력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며 미국과 일본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이기도 하다. 김구는 평양을 방문, 김일성과 회담 후 서울로 돌아왔으나 미국의 지시를 받은 이승만에게 암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인물로 링컨을 든 이유는 제일 무난한 대답이 되는데다 미국의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김구 선생과 링컨은 둘 다 남북통일을 주장한 인물이다.

<노무현 외교실적 비판은 위선적>

그래서 필자는 노무현의 방미 성과에 대한 비판을 이해할 수 없다. 혹시 고이즈미처럼 부시의 애완견으로 트럭에 태워져 목장이나 구경하고 저녁 만찬으로는 텍사스주 특산 방울뱀이라도 먹고 와야 했다는 것일까.

한국 보수파는 노무현의 방미는 한.미관계를 복구한 성공적 외교였지만, 방일은 '외교사상 치욕으로 기록돌 얼간이 외교'로 비판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노무현이 현충일에 방일한 것, 그리고 유사법제 통과 기간 동안 일본에 간 것을 지적하고 있다.

필자는 그들도 이해할 수 없다. 한국 보수파라는 것의 뿌리는 그 상당수가 전쟁 전 일본에서 교육을 받은 친일파들이 아닌가. 이런 자들이 미국엔 아부를 떨고 일본엔 비판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위선적인 행위가 있을까. 한.일 군사제휴를 추진해온 것이 누구였던가. 일본에 의한 과거청산 없이 한.일 국교 정상화를 추진한 것은 누구였나.

노무현이 보수파들의 주장을 따른다면 한.미.일 동맹군은 북한에 압력을 가하다가 최후엔 이른바 '외과수술'적 폭격을 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한반도는 초토화될 것이다. 물론 보수파들이 미워한다고 위선을 떠는 일본도 그 전쟁의 여파로 파국을 맞긴 할 것이다. 어쩌면 보수파들은 전쟁이 터져도 자신들만은 미국의 보호를 받을 것이므로 안전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보스파들이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다음의 한국전쟁은 1시간 내로 종료되고 그 사이에 한반도는 물론 일본과 미국 본토도 불바다가 되어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들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기도 전에 공항은 파괴되어 사라질 것이다. 아니 피해야 한다고 생각할 여유도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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