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팀의 아쉬운 패배에 엇갈린 표정을 내비친 이탈리안-오스트레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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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팀의 아쉬운 패배에 엇갈린 표정을 내비친 이탈리안-오스트레일리안
  • 호주한국신문
  • 승인 2006.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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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호주팀과 한국팀이 순조롭게 승리해서 8강에서 만났다면?

그렇다면 호주의 한인들은 시민권자들조차도 대부분 한국팀을 응원했으리라.
부질없는 상상 같지만, 충분히 실현 가능했던 일이다.
대표적인 이민 국가 중의 하나인 호주에서 이와 같은 일은 늘 발생하지만 언제나 주변의 관심을 끌게 된다.

월드컵에서 호주팀과 이탈리아팀이 대결을 펼친 27일 새벽, 시드니 이탈리안 커뮤니티의 대표적인 거리인 라이카트의 노튼 스트리트는 호주 언론의 관심의 표적이었다.

인근의 애쉬필드 카운슬이 하버필드에 있는 페더레이션 스퀘어에 호주 최대의 가로 8.5 미터, 세로 4.7 미터의 대형 스크린을 확보하고 선전했으나 노튼 스트리트의 상징성은 쉽게 허물기 어려웠다.

애쉬필드 카운슬의 닉 아담스 부시장이 “하버필드야말로 진정한 이탈리안 타운의 효시”라며 “노튼 스트리트는 90년대에 와서야 각광 받기 시작했다”고 주장했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그다지 뜨겁지 않았다.

노튼 스트리트의 차도를 봉쇄하고 세워진 거대한 전광판 앞은 말 그대로 사람들로 가득 찼다. 사고를 우려한 경찰이 더 이상의 출입을 강력히 통제하고 있었다.
전광판 앞의 응원석은 자연스럽게 반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전광판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오른쪽이 이탈리아팀을 응원하는 사람들, 왼쪽이 호주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이었다.
경기가 진행되면서 보여 준 그들의 표정은 각각의 국기 색깔을 모방한 얼굴 페인팅 만큼이나 서로 달라 제 3자의 위치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양쪽 팀을 모두 응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이날의 응원은 사실 온라인에서 먼저 달아올랐다.

Robbie Baggio씨는 시드니모닝헤럴드의 인터넷판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이탈리안 백그라운드를 가진 호주인으로서 자신은 120% 호주팀을 응원한다”며 “자신과 같은 처지의 친구들도 모두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Aussie Azzuri라는 아이디로 글을 올린 한 이탈리안-오스트레일리안은 “30년 전에 호주로 이민해 온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몸에 아주리(스카이블루)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번에는 호주팀에게 더 애정이 간다”고 밝히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Joe씨는 “이기는 팀이 우리 팀”이라는 재치 있는 정답(?)을 내놓기도 했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응원석 앞 자리에서 서로 두 손을 꼭 잡고 응원을 하던 Franco씨 커플. 남자는 이탈리아팀 티셔츠를, 여자는 호주팀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서로 응원하는 팀이 달라도 두 사람의 애정은 든든하다는 사실을 과시하듯 쌀쌀한 날씨에 서로를 격려하는 다양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우세한 기술의 이탈리아팀의 전반전 활약에도 호주팀이 침착하게 방어해 나가자 호주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Yes”, “Go” 등의 구호를 외치며 분위기를 띄었다.

이들의 반응은 후반 들어 점차 호주팀의 체력에 밀리던 이탈리아팀의 한 선수가 퇴장 당하는 상황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반면 바로 그 옆에 있던 이탈리아팀 응원단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저리타임에 들어간 경기 종료 30초 전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페널티 박스 안에서 공을 몰고 들어가던 이탈리아 선수가 쓰러지면서 페널티 킥이 주어진 것.

이 순간 이탈리아팀을 응원하던 사람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지르며 열광했다.그리고 토티 선수가 페널티 골을 성공시키고 그대로 경기가 끝났다.

맨 앞에서 열심히 호주팀을 응원하던 소녀들의 눈에 눈물이 고였고 몇몇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기도 했다. 소녀들은 자리를 떠나며 “It(페널티 킥 선언) was not justified!!”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환호성을 올리던 이탈리아팀 응원단의 한 사람과 옆 자리에서 호주팀을 응원하던 사람이 시비가 붙어 주먹다짐을 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다행히 경찰이 재빨리 뛰어들어 싸움을 말려 큰 불상사는 없었다.

호주팀 응원단이 쓸쓸히 자리를 떠난 뒤에도 이탈리아팀을 응원하던 사람들을 자동차의 크락숀을 울리고 미니 불꽃놀이를 벌이며 승리를 자축했다.
한편, 이날의 다소 어이없는 패배에 이탈리안 커뮤니티를 제외한 호주 전역이 괴로움에 신음했다.

호주 언론들은 일제히 “Too Cruel” 등의 자극적인 제목으로 심판의 판정에 불만을 나타냈다. 시민들도 대부분 너무 황당하다는 입장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전한 호주팀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워드 총리 역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라면서도 “잔인한 패배에도 불구하고 호주팀은 진정 용감히 싸웠다”고 선수들을 격려했다.

이 날 써큘러 키를 비롯한 호주 곳곳에서 10여만 명이 단체응원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패배에 실망해 난동을 피운 20여 명이 경찰에 긴급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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