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의 새벽을 깨운 붉은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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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의 새벽을 깨운 붉은 물결
  • 시드니=임경민기자
  • 승인 2006.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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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취재기 호주편

   
▲ 시드니 대 프랑스 전 응원전에서 만난 호주인 크리스씨는 한국팀의 열정적인 팬이다
응원했던 자리 뒷마무리까지 깔끔… 지켜보던 호주 경찰 “Wonderful” 연발

19일 대 프랑스전에서 종료 시간 10분을 남기고 박지성이 동점골을 넣는 순간, 센트럴 스테이션 앞 벨모아 파크를 가득 메운 2,500명(주최측 추산)의 붉은 악마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쌀쌀한 날씨 만큼이나 계속되는 한국팀의 답답한 플레이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응원단은 이후 경기가 끝날 때까지 자리에 않지 않고 계속해서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열광했다.
이 날 벨모아 파크에는 한국과 프랑스의 경기 이전에도 호주와 브라질의 경기를 보기 위해 새벽 2시부터 한인 젊은이들 1천 여명이 이미 모여 있었다.

이들은 500 여명의 현지인들과 함께 열렬히 호주팀을 응원했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 소지자인 최선영씨는 “현재 생활하고 있는 여기 호주의 대표팀에 대해 한국팀 만큼이나 관심이 간다”며 “두 팀 다 잘해서 함께 16강에 올라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호주팀의 경기가 끝나고 한국팀의 경기가 시작될 동안 한인 응원단들은 준비해 온 컵라면을 먹으면서 추운 몸을 녹였다.

두 경기 사이의 시간을 이용해 숙소에 두꺼운 옷을 가지러 가던 이수진씨는 “김수희 공연에 동반한 밴드의 일원으로 호주를 방문했다”며 “시드니에서도 단체응원이 열린다는 사실을 서울에서부터 듣고 여행가방에 응원도구부터 먼저 챙겨왔다”고 밝혔다.

한국팀 경기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벨모아 파크에는 하나 둘 한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시드니 붉은 악마’의 주도 아래 본격적인 응원이 시작되었다.

‘시드니 붉은 악마’의 박노혁 단장은 응원을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들 하나 하나가 한국을 대표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행동했으면 한다”며 “응원 도중 술을 마시거나 응원이 끝난 이후 소란을 피우는 행위를 자제하자”고 말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대형 스크린에 이천수와 티에리 앙리, 박지성과 지네딘 지단을 각각 비교하는 화면이 나오자 응원단은 일제히 환호성을 올리기 시작했다. 한 한인 여성이 “지단은 집에 가서 지단이나 부쳐라”고 가볍게 야유하자 주위의 응원단에서는 폭소가 터졌다.

경기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앙리에게 선취점을 허용하자 벨모아 파크는 일순 이를 안타까워하는 한숨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곧 이어 응원단은 “괜찮아”를 크게 외치며 한국팀에게 힘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지난 토고와의 경기보다 더 철저한 준비를 해온 듯 ‘시드니 붉은 악마’는 대형 태극기와 붉은 악마의 로고가 새겨져 있는 다양한 깃발들을 흔들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이 ‘파란 눈의 붉은 악마’ 호주인 크리스씨.

이마에는 태극 문양의 띠를 두르고 붉은 티셔츠를 입고 ‘시드니 붉은 악마’의 일원으로 응원에 앞장서던 크리스씨는 “한인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 한국으로의 유학을 결정했다”며 “지금쯤 그녀도 광화문에서 열심히 응원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현장에는 적지않은 외국인들이 참여해 한국팀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였다.
역시 붉은 티셔츠를 입고 정확한 발음으로 “대~한민국”을 외치던 중국계 호주인 폴씨는 “아시아의 대표팀 한국을 응원하기 위해 왔다”며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이 너무 부러워 이 자리에까지 오게 됐다”고 밝혔다.

한편, 후반 들어서도 한국팀의 무기력한 플레이가 이어지자 응원단 내부에서는 “공격다운 공격을 한번도 못해보고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기 막판으로 갈수록 프랑스 선수들이 지쳐 하는 모습이 역력해지고 한국팀의 공격빈도가 늘어나자 응원단은 “골, 골, 골”을 소리 높여 외치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결국 박지성의 극적인 동점골이 터지고 벨모아 파크는 축제의 장으로 변했다.

경기가 끝나고 가방을 매고 등교길에 나서던 고교생 정지윤씨는 “한국팀을 응원하기 위해 학교 친구들과 함께 밤샘을 했다”며 “세계적인 강팀인 프랑스와 비기게 되어 승리한 것 만큼이나 기쁘고 즐겁다”고 말했다.

경기가 끝나고 ‘시드니 붉은 악마’와 다른 한인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머물렀던 자리를 깨끗하게 정돈하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한 호주 경찰은 “정말 유쾌(hilarious)하면서도 바르게 행동(well-behaved)하는 청년들”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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