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의 결실, 이제 다시 출발선에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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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의 결실, 이제 다시 출발선에 섰습니다”
  • 코리안위클리
  • 승인 2006.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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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공인 회계사 자격증 취득한 이주연씨
“안녕하세요 이주연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녀의 외모와 목소리가 앳되기만 하다. 첫 만남에 나이가 어떻게 되냐는 실례되는 질문부터 했다. “75년생 이예요.”
이제 갓 서른의 나이에 직장인, 수험생의 1인 2역을 해내며 영국 공인 회계사 자격증(ACCA)을 취득한 이주연(30)씨, 수줍은 미소 뒤 자신감 가득한 눈망울을 가진 그녀를 본지가 만났다.

소녀, 영국을 알다
‘교과서가 없다!
칠판에 필기도 해주지 않는다!
수학 시험은 답이 아닌 풀이 과정으로 채점한다!’
영국 도착 후 첫 수업 시간 그를 당황하게 하는 것은 많았다.
92년 회사원이던 아버지의 발령으로 밟게 된 영국 땅. 언어도 문화도 생김새도 낯설기만 했던 열 일곱의 소녀에게 한국과 다른 교육 방식은 피부로 와 닿는 어려움이었다. 객관식 시험에 길들여졌던 그에게 논술 시험은 또 하나의 넘어야 할 높은 산이었고 결국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개별 어학 공부에 리포트 공부까지 따로 해야만 했다.
“언어의 한계에 부딪히고 문화의 차이를 느낄 때마다 한국이 그립고 친구들이 보고싶었지만 언제까지 그 생각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어요.”
늘 문화적인 차이에 고민했지만 학생 신분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공부 밖에 없었다던 그는 94년 고교 과정을 마치고 당당히 런던대 Royal Holloway University of London 에 합격했다. 명문대에 입학하기까지 그 흔한 과외 한 번 받지 않았다. 영국에 건너온 지 만 2년만에 온전히 자신의 땀으로 이룬 첫 쾌거였다.

능력 인정받고싶어 전문직 선택
그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후 졸업, 국제 시중 은행의 대부계(Business lending officer)에서 근무했다. 2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이, 성별, 결혼 여부, 인종에 상관없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전문직을 가져야 한다는 욕심이 생겼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놓칠 수 없는 기회가 찾아왔다. 상공부 소속 표준과학연구소 (National Physical Laboratory) 에서 회계사 시험에 필요한 학비지원과 함께 시험기간에 업무시간 편의를 제공하는 등 파격적 대우로 직원을 채용한다는 것이다.
인터뷰가 있던 날 “‘저는 회계 장부를 보는데 거부감이 없는 것 말고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할 자신이 있습니다.’면접관의 두 눈을 맞추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부족하지만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하진 않았다고. 하지만 누구보다도 잘 해낼 자신이 있음을 그는 당당한 목소리로 고백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했던가. 솔직한 고백과 미래의 가능성을 눈여겨 본 회사는 그를 채용했다.

주말 없이 보낸 3년
ACCA(The Association of Chartered Certified Accountants) 시험은 일년에 두 번 6월과 12월에 있다. 회계학, 경영학, 경제학, 세법, 상법 등 총 14과목을 모두 통과해야만 한다.
시험을 준비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회사 생활과 공부를 병행해야 한다는 것, 즉 시간 관리의 문제였다. 3년 간 주중에는 근무를, 주말에는 온전히 책상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하루 24시간 중 먼저 수면시간과 공부시간을 정하고 나머지 시간으로 개인적인 계획을 세웠죠...”
언제나 공부가 우선이었다던 그. 작년 8월 마지막 과목을 통과했다는 소식과 함께 ACCA 자격증을 취득했다. 오랜 경주를 끝낸 승리자의 심정이 궁금했다.
“자격증을 땄다는 감동보다는 ‘올 크리스마스는 마음껏 즐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더 기뻤어요.”긴 시간을 달려 목표를 이뤄낸 선수의 흥분된 감동이 전해질거라 기대했지만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3년이란 시간동안 하나의 목표를 향한다는 게 지칠 법도 한데 오히려 이것이 빡빡한 상황 속에서도 그를 더 초연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 것은 아닐까.

No shortcut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힘들진 않았냐고 물었다. 뻔한 질문에 당연한 답이 돌아 올 거라 생각했지만 그의 대답은 달랐다.
“많이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애매한 대답이긴 하지만 분명 크게 힘든 기억이 없었다는 투로 들렸다. 가족과 남편 등 주위의 격려와 도움으로 어려움 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며 감사한 마음을 돌렸지만 그는 하나를 더 강조했다. 바로 목표를 멀리 두고 자신을 채찍질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
“회사나 국가가 5개년, 10개년 계획을 세우듯 하나의 목표를 세우고 오늘, 이번 주, 이번 달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계획했어요.”
자신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고 실현 가능한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회 진출을 앞둔 학생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No shortcut. 뻔한 얘기지만 인생에 있어 쉽고 빠르게 가는 길은 없는 것 같아요. 좋은 결과를 얻고자 한다면 성실함과 꾸준한 노력만이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5개년 계획 다시 세워야죠'
자격증 취득 후 그는 런던시 산하의 교통국(TFL)에서 경영회계사로 근무 중이다. 경영회계사는 결과적으로 나와 있는 수치를 보면서 사람들의 움직임을 예측, 판독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지난 경영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보완된 계획을 세우는 것이 그의 일. 매 분기 결과물은 그를 거치는 순간 단순한 데이터에서 유용한 정보로 되살아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게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는 그는 아직 목마르다고 말했다. 욕심 많은 그의 두 눈에 회계 감사, 세금, 경영회계 등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은 분야들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

“자격증은 땄지만 끝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다시 출발선에 선 기분이죠. “
3년의 결실을 이뤘지만 이제 겨우 기본을 갖췄다고 말하는 그는 또 다시 5년, 10년 뒤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대뜸 마라톤을 해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당황한 그는 “없다”고 대답했다.
마라톤을 할 때 너무 멀리 있는 도착점만을 생각하고 달리다 보면 금새 지쳐 쓰러지기 쉽다. 그렇기에 한발자국씩 자신의 앞만 보며 꾸준히 달려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자신에 대해 깊이 있게 되돌아 볼 줄 알고 한발자국씩 나아가는 그의 모습이 흡사 마라토너와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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