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신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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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신외교
  • 코리아나 뉴스
  • 승인 2003.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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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신외교 맞나?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을 국빈으로 방문하고 지난 9일 귀국하였다. 방일 정상외교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한나라당의 이상배 정책위의장은 '등신외교'를 하였다고 발언하여 국회가 파행을 거
듭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지난 10일 이상배 의원이 사과를 하면서 국회는 겨우 정상적인 회의
를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전반적인 방문의 평가는 뒤로 가려지고 '등신외교'에 따른 분쟁만 떠오르고 있다.
본지는 노 대통령 출국 전에 이미 〈한일정상회담을 기대〉한다는 바램을 게재하면서 귀국 후
그 성과를 다시 보도하겠다고 약속하였다. 한국의 언론들은 실제적 성과에 대한 평가는 없고
말꼬리가 문제되어 확대되고 있는 정황만 알리는 형편이다.
한·일간의 각종 문제는 다른 나라와는 다른 국민적 정서가 있기 때문에 정치인들도 세심한 배
려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의 국빈 방문 바로 직전에 일본의 유사법제가 통과되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
자민련의 김종필 명예총재가 적극 두둔하는 발언을 하는 등 대일 관계가 복잡하게 전재되고 있
다.
한·일 정상회담은 과연 어떠했는가를 조명해 본다.
<편집자 주>

◎ 국빈방문 중에 그런 일이
노무현 대통령의 일본 방문은 한국의 현충일인 6월 6일 이루어졌다. 현충일은 순국선열을 기리
는 날이라 일본 방문이 적합한 날이 아니라는 여론도 많았으나 일단 결행되었다. 그러나 일본
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국빈으로 온다는 사실을 이미 알면서도 자민당의 아소 다로 정조회장
이 "창씨개명은 한국인이 원해서 한 것이라는" 헛소리도 하였고 전시동원 체재를 연상케 하는
유사법제의 의회통과도 방문 바로 직전에 있었다.
그런가하면 다음날인 7일의 일본 언론에도 세이스케 전 법무상이 "창씨개명은 일본과 동등한
대우를 하려고 했던 것으로 강제는 아니었다"고 심장 긁는 소리를 한 것이다. 이렇게 일본 정치
인들의 역사관 특히 한국관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 아직도 한국의 역사가 친일사관에서 한
발자국도 못나가고 있는 우리 스스로의 문제도 예삿일이 아니다. 친일의 잔재가 곳곳에 박혀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현실문제는 일본인들이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은 잘못된 역사인식으로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한국의 정치인이나 지도급 인사들이 이런 논조에 동조하며 설치고 있다는 사
실이다.
이번에 통과된 일본의 유사법제에 대해서도 정치노객인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는 희한한 발언
을 하였다. 일본의 '자민당'과 한국의 '자민련'은 끝 글자만 달라서인지 생각도 비슷한 모양이
다. 그러기에 그야말로 일본 자민당의 제2중대 같은 망발을 터뜨린 것이 아닐까 말이다. 자민련
의 김종필 명예총재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하는 일에 주변국들이 비난하는 것은 소아병에 불
과하다"고 거침없이 발언했다.

◎ 지구를 떠나거라∼
김종필 명예총재의 논리대로라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선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려고 해도 당연하
다는 논리가 아닌가? 그리고 자국의 이익을 고려해서 하는 행동에 다른 나라가 말을 해서 안
된다면 세계질서가 어떻게 존재하겠는가? 어떤 나라이건 이웃나라와 상호관계도 당연히 고려되
어야 할 것이다.
같은 당의 이인제 총재권한 대행은 "일본의 무력침략에 고통받은 이웃 나라들의 이해와 신뢰를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무력행사를 제도화한 이번 조치는 아시아인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
며 완전히 다른 발언을 하였다. 같은 자민련이라도 바른 정신이 들어 있는 말이다.
그리고 자민련의 송광호 의원은 아예 탈당까지 감행했다. 송광호 의원은 자신이 친일잔재 청산
과 민족정기 회복에 앞장서 온 사람으로 김종필 명예총재의 망언을 묵과할 수 없다는 요지의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제법 소신이 돋보이는 행동이다.
한편 한나라당의 이부영 의원은 KBS라디오 프로그램인 '박찬숙 입니다'에서 JP에 대해 "한·
일 협정을 통해 우리 국익의 상당한 권리를 포기하게 만든 분이 일본 쪽 입장에서 말씀을 하는
것에 대해 국적을 바꾸라고 권하고 싶다"라고 뼈아픈 말을 하였다. 즉 1965년 한일회담이 굴욕
적으로 성사되어 많은 피해가 있었던 것을 상기시킨 것이다. 예전의 코미디언 김병조는 국적을
바꾸라고 권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지구를 떠나거라∼"했을 것 같다.

◎ 백범 김구 선생은 실패한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이 링컨을 존경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스스로 '내가 만난 링컨'이란 책도
저술하였고 고생한 어린 시절과 성장과정,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의지, 변호사라는 직업 등등
유사점도 많아 더욱 그럴 것이다.
한국에 존경할 정치인이 없어 미국의 링컨을 존경하는 것은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해 '실패한 정치인'으로 운운한 것은 너무 말도 되지 않는 소리이다. 그것도 대통령이
일본에 가서 TV프로그램에서 그랬다는 것은 일종의 수치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도쿄방송에서 한 이런 발언은 자민련의 김종필 명예총재의 발언보다 더 심각
한 성격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누구인가? 백범 선생은 가장 치열하게 항일투쟁을 벌인 독립운
동의 표본이자 상해임시정부의 주석이었다. 다른 지도자들이 외교전으로 독립을 하자느니 힘과
실력을 기르기 위해 교육이 중요하니 하였지만 직접 무장하고 투쟁하자면서 윤봉길 의사 등 많
은 애국열사들이 목숨을 던지도록 지휘했다. 그리고 해방 후에도 단독정부는 절대 되지 않는다
고 단정(單政)을 반대하다가 안두희의 총탄에 암살되었다.
또 김구 선생의 어떤 점이 실패라고 보는 지도 밝혀야 하리라 본다. 경비가 허술하여 암살을
당해서인지, 아니면 북한의 김일성이 버티고 있는데도 남한만의 단정을 반대해서인지, 아니면
링컨도 대통령이 되었고 노무현도 대통령이 되었는데 김구 선생은 대통령이 되지 못해서인지
등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명분을 중요시하고 민족을 가장 사랑한 큰 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
은 지하에서 통곡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개혁적이고 진보적이라 많은 젊은이들이 표를 몰
아주어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 일본에 가서 한다는 소리가 기껏 김구 선생을 실패한 정치인으
로 평가하고 있으니 말이다. 많은 정치인들과 심지어 일반인들까지 가장 훌륭한 지도자 중의
한 사람으로 꼽는 김구 선생을 일본인들 앞에서 대통령이 직접 실패한 정치인으로 깎아 내렸다
는 사실은 일본 정치인들이 또 망언을 할 구실을 주고 만 셈이다.

◎ 결국 말썽만 많게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일본의 유사법제에 대해선 우려를 표명하고 발언의 수위도 높였다. 이점은 국
민들의 속마음을 시원하게 하여 여론의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국민들이 원하던 과거사는 언급
을 하지 않고 오직 미래 쪽으로만 눈길을 돌렸다. 대통령이 일본을 갈 적마다 과거사가 언급되
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또한 격변하는 정세에 과거에만 집착하기보다는 현실
과 복잡한 미래의 엉킨 실타래를 함께 푸는 지혜가 더 필요할 것이다.
일본과는 지리적으로도 가장 가깝고 경제적으로도 너무 밀접해 있다. 그러나 아직 한국은 속
시원히 일본의 사과를 받은 적이 없고, 있다면 교과서 파동이나 이번의 창씨개명과 같은 헛소
리뿐이었다. 무역역조도 아직 심각한 상태에 있다. 한마디로 적게 팔고 많이 사 오고 있는 형편
이다.
이번 방문의 결과도 그렇다. 전 번 미국방문과 마찬가지로 특별하게 얻은 것 대신 국내의 여론
만 분열되고 막가는 말들만 세상에 나와 국어를 더럽히고 있다. 정치인들의 말은 연예인들의
말과 같이 유행을 타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더욱 조심조심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대통령부
터 먼저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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