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그르노블로 설 쇠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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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그르노블로 설 쇠러 오세요
  • 하효선
  • 승인 2006.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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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다양성(Diversité culturelle) 과 공적 공간(Espace Public)의 활성화.

이 두 주제를 나름대로 풀어보고자 한 실천적 접근이 제 5회 그르노블 한국 설날 페스티발 행사의 전반적 성격이 되겠고 그 내용으로 교감(synesthésie)이란 테마를 설정하여 이번 그르노블 한국설날 페스티발을 구성하였다. 본 페스티발은 또한 한불수교 12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과 프랑스를 통틀어 첫 번째로 치뤄지는 행사로서 보다 관객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그리고 무엇보다도 축제의 성격을 한층 돋우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 내면에 깔린 몇 가지 의도는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냉전 종식 이후 세계사는 방향을 잃은 채 몇 명의 사생아(유고슬라비아 전쟁, 이라크 전쟁, 및 9.11사태)를 낳았다. 그러나 최근 채택된 문화다양성 국제협정과 더불어 인류사의 방향조정과 시각조정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2005년 10월 20일, 유네스코(UNESCO)는 이 협정을 찬성148표와 반대2표(미국과 이스라엘)로 채택하였는데, 이로써 독선과 독점을 유지하고자 무력 행사를 마다하지 않던 세계의 부랑아가 누구였던지 잘 드러나버린 셈이라 할까.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국제 협정은 각 민족과 문화단위가 각각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고 고유의 문화적 메커니즘을 고려하는 발전과 진보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우리는 이 협정이 세계사의 진보에 모두가 함께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로부터 본 페스티발의 이름(그르노블 한국설날 페스티발)이 지나치게 토속을 강조하는 여린 타이틀이란 비난을 받으면서도 이 타이틀을 굳이 고집해온 의도가 조금은 이해되었기를 바란다. 더구나 본 페스티발이 우리 문화의 타 문화에 의한 수용을 가늠해본다는 의미에서 다축문화를 실현하는 도구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타이틀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편, 문화 자체가 다양성을 전제로 할 수 밖에 없다면 이제 고려해야 하는 것은 특정의 문화가 다른 문화적 토양에서 흡입되고 교류되는 장(field)과 과정(process)을 유심히 보아야 할 것이다. 이는 다양성의 이름으로 각각의 문화적 특질을 고집하며 고립적인 사태를 유발하기보다 다양성을 바탕으로 보다 열린 그리고 무엇보다도 평등한 입지를 세워나가면서 다른 문화와 소통을 하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소통을 통해 각 문화들은 보다 설득력 있는 인류공영을 위한 가치들을 모두의 이익에 더욱 가깝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문화적 다양성이 갖는 내용들을 바탕으로 세계가 공적 공간을 형성하게 될 경우를 상상해 본다. 한편, 몇몇 메트로폴들에서는 더욱 적극적인 방식으로 다양성을 보유하려 들 것인바 그들의 위상은 그들이 달성한 다양성의 정도에 따라 판단될 것이다. 그러나 메트로폴을 벗어나자말자 문화적 다양성은 갑자기 사라지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즉 문화적 다양성은 여전히 메트로폴에만 한정된 현상인 것이다. 다른 한편, 메트로폴에서 보여주는 문화적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다양성을 구성하는 각 문화가 독자적인 축을 가지면서 상호 평등한 소통의 장을 형성한다기보다는 모든 외래문화가 나그네 처지에 빠져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메트로폴에서도 진정한 문화적 소통의 실현은 여전히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실재로 한국문화라는 한 특정문화를 다른토양의 문화에서 한 고유한 축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될 수 있을까와 그를 위한 질적가치를 점검해 보기 위해서는 일정공간(도시적 성격과 규모를 고려한)이 필요하고 그 공간에 지속적인 교류의 장을 터놓고 (그것을 토착화시켜) 서로 다른 문화적 특성들이 깊이 있게 비교될 수 있는 어떤 주제들을 중심으로 만나 서로 소통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바로 이것이 한국문화협회가 그르노블에서 한국문화의 테마적 구성으로 수년에 걸쳐 페스티발을 통해 대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문화적 다양성이 갖는 의미를 염두에 두고 공적 공간의 현재를 함께 짚어보자.

공적 공간이란 무엇보다 열린 공간이며 때로는 여론이란 용어와 같이 쓰이기도 한다. 즉 많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는 장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공적 공간은 부르주아들이 종교계급과 절대왕정의 권력독점에 대항하여 보다 진보적인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던 공간으로 시작되었다. 그 후 카페와 살롱 등에서 교류되던 새로운 경향들이 점점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유발하여 언론을 매개로 변화 발전되어 왔다. 오늘날에는 사회운동의 장에서 보여지는 대중모임이 바로 여론 조성을 위한 목적 관철성 공적 공간의 활용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005년 설날 페스티발 행사가 있던 날 공교롭게도 주 35시간 노동제를 지키기 위한 전국적인 시위가 있었다. 그르노블 경찰은 같은 시간에 진행되게 되어 있던 이 시위 대열과 본 행사의 시가행진이 조우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출발지, 도정 및 종착지를 사전에 철저히 조정하고 행사 당일도 도처에서 감시했다. 혹 있을지 모르는 불상사의 방지가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사회적 목적의 표현과 문화적 표현은 결코 같은 성향이 될 수 없다는 이곳의 전통이 작용했기 때문은 아닐까.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많은 시위들이 음악을 동반한다는 것이 한국적 특색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우리의 가면극이 군중을 제한하지 않는 마당극으로 펼쳐지며, 마당극은 일종의 시위적 표현의 하나라는 점도 이와 상통하는 바가 없지 않다.

특히 우리의 굿이나 풍물은 내면에 쌓인 한을 드러내어 풀고 또 공감하는 주제를 함께 해결한다는 점에서 공적 공간의 공동체적 활용이다. 게다가 무의식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합’이란 명제에까지 다가가노라면 이것은 그 어느 곳에도 찾기 어려운 공적공간의 활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2006년 그르노블 한국 설날 페스티발은 우선 열린 공간을 한껏 활용하여 시민들의 대대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나아가 공연의 질을 담보하여 공적공간의 성격을 변화시킨다는 목적도 함께 있다.
메세지를 담은 플랭카드와 의심할 수 없는 실력을 보유한 예술인들이 함께 어우러져 시민들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는 불특정의 공간인 거리와 공원들을 문화적 공적공간으로 활용함과 동시에 한정된 유명장소가 마치 예술의 질을 담보하는 장으로 간주되는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것이기 하다. 이는 미학적 근거가 다른 타예술문화를 현지에서 통하는 기존의 예술적 기준으로 그 가치를 무리없이 여과해낼 수 있을 정도로 프랑스의 일반적인 미학 기준이 완성되어 있다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예술도 매번 보호되고 과장되어 외국에 소개되기보다는 오히려 일반시민들(이들이 바로 관객이고 또 교류 대상이므로)과의 이 노골적 만남이야말로 상호 이해에 더욱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음악이나 예술의 디테일한 감각을 전달할 수 있는 실내공연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이 실내공연은 보다 전문적인 식견과 감각을 가진 이들과의 더 깊은 예술적 교류를 실행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볼 때 «교감» 은 여러 측면의 접목으로 나타난다. 우선, 우리의 다양한 예술적 표현들은 각각의 영역에서 고유성을 가지면서도 서로 보완된다는 점이다. 다음, 그 내용 자체가 무엇보다도 설득력을 동반하는 특질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교감적 기능을 가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비록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내용을 가미한 경우에도 인간의 감성이 묘미 있게 고려된다는 점이다. 이처럼 우리 예술에 절절히 베어있는 교감적 기능에 대해 본 조직자는 확실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

장기간 준비되어 온 본 행사는 국제교류재단의 지원 거부와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 결정액의 미흡으로 타격을 입고 전체 규모의 대폭 축소가 불가피했다. 이러한 축소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한국측 지원금도 확보할 수 없어 행사 전체의 포기를 각오하고 있을 때 이를 말려주신 대사님을 비롯한 대사관측과 재외동포재단의 지원으로 겨우 무산만을 막았다. 결코 이벤트성의 행사에는 편승하지 않겠다는 철학과 지방에서의 문화활동을 고집하는 것이 준 어려움이라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행사를 축소하라는 압력(권유?)에도 불구하고 최종 확정된 프로그램들이 전체적인 하모니를 유지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였음은 이 자리를 빌어 밝히고 싶다. 그리고 한국관광공사 파리지사와 농수산물유통공사 로테르담지사의 도움에는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본 페스티발의 도전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본 페스티발이 지역 고유 행사로 정착될 수 있도록 해마다 아낌없는 후원을 베풀어준 그르노블 시와 이제르 도의회의 타 문화의 수용을 위한 열린 자세와 그 능력에 대해 감사의 마음과 부러움을 함께 갖고 있다. 그르노블 씨네마테끄의 우정어린 협조를 빼놓을 수 없음은 물론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본 행사의 취지를 이해하고 흔쾌히 초청에 응해주신 우리 국악 명인들의 열린 시각에 존경을 표하며, 어려운 조건 제시에도 기꺼이 참여해 주기로 하신 모든 예술인에게 감사 드리고 싶다. 끝으로 모든 악조건을 무릅쓰고 헌신적으로 같이 움직여 준 본 조직 팀의 구성원들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진행을 함께 해 나갈 그르노블 한인들의 많은 노고가 남아있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이 축제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이제 축제의 기운은 서서히 번질 것이고 조직인의 영역에서 공공의 영역으로 이동되었다. 이제부터 이 축제는 그동안의 준비를 받아들이는 관객의 몫이다. 그들의 수용이 축제의 가치를 가늠할 것이다. 이렇게 그르노블 한국설날 축제는 각각의 경험과 생각들 그리고 상상과 전망들이 자유롭게 교류되는 마당(장)이자 미래지향적인 축제이다. 이 마당축제에 많은 동포들의 관심과 동참을 기대한다.

그르노블 한국문화협회 회장 하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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