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인의 가슴 속" 서문에 실린 신숙옥씨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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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의 가슴 속" 서문에 실린 신숙옥씨의 글
  • 강국진
  • 승인 2003.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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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의 가슴 속>

들어가며

'한국'은 언제나 내 마음에 상처를 주었습니다.
한국정부는 줄곧 재일조선인을 간첩 취급하여 왔고, 징병제에서 재일조선인을 제외한 것도 그런 이유일텐데, 그러면서도 재일조선인은 지금까지 외국에서 편안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무리들이라는 식으로 취급해왔습니다. 또 한국말을 못하면 '그래도 네가 한국인이냐'며 무시하고, 재일조선인이 '모국어'조차 배울 수 없는 환경에 처해있다는 사실은 염두에도 두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소 한국말을 구사하면 이번에는 '조총련이냐'고 추궁해옵니다. '자,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하면 마음에 들겠습니까!"하고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울부짖었는지.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상처받은 민족적 우월감을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듯이 재일조선인을 향해 경멸의 화살을 쏟아 부었습니다.

한국에 있어서 '재일조선인'의 가치라는 것은 오랫동안 '돈',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재일조선인으로부터 돈을 끌어들이기 위해 훈장을 주고, 국회의원 자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선거권을 줄 생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역대 대통령들이 일본에 올 때마다 반드시 입에 올리는 구절-'자랑스런 한국인'. 그리고 이어지는 투자 권유. 그러나, 단 한 번도 재일조선인이 안고 있는 비극에 대해 눈물을 보인 적도, 조국으로서 사과를 한 적도 없습니다. 일본과 교섭 테이블에 앉을 때만 '불쌍한 재일한국인'을 탄환으로 사용해왔습니다.

대통령님, 당신은 정치가로서 재일조선인에게 도대체 무엇을 했습니까? 한국정부는 국적이라는 종이 한 조각의 표시로 우리를 적으로 몰았다가 아군으로 안는 듯 했다하면서, 우리 앞에서 '귀화'를 입에 담는 일본정부 관계자들을 그대로 방치해두고 있습니다. 조선반도는 그토록 고난의 역사를 겪어왔음에도, 왜 이토록 남북 모두 현명하지 못한 정치가 계속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해방 후, 재일조선인은 황국 신민에서 '조선인'이 되었습니다.
외국인등록증의 국적란에는 '조선'이라는 지명(이 '조선' 표시는 국적을 의미하지 않습니다)이 기입되었습니다. 1965년 한일간에 국교가 회복되면서 '한국적'이 인정되게 되었고 많은 재일조선인이 한국적을 취득해 갔습니다. 그러나, 한국적 취득은 지역에 따라서는 민족단체의 이권으로 이어졌고 한편으로는 일종의 사상 검증의 수단이 되어 대다수의 가난한 재일조선인들을 괴롭혔던 것이 사실입니다. 결국 가난한 사람들은 국적 취득을 하지 못하면서 배제되어갔던 것입니다.

저는 한국적을 신청하고 나서 취득할 때까지 7년을 기다렸습니다.
그 사이 한국에서 온 사업가들과 여러 차례 일을 했는데, 내 국적 표기가 '한국'적이 아닌 '조선'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면 바로 손바닥을 뒤집듯 태도가 돌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치 괴물이라도 보는 것처럼 건네 줬던 명함을 돌려달라고 떼를 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단 한 사람도 다시 연락을 주는 이는 없었습니다.

'당신의 조국, 한국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입니다. 힘든 일이 있으면 내게 달려오세요'라며 애정 어린 눈빛을 보내주었던 그 사람도 다시는 편지를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런 부류의 상대방의 처사에 얼마나, 보기 흉할 정도로 울었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옛날에도, 나는 그대로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나를 거부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나를 받아들여 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그들이 바라는 '한국인'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때 그들은 또 나를 거부하고 배제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들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조금 몸을 돌렸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일본사회는 저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일본과 한국이 전쟁을 하면 어느 쪽에 편을 들겠습니까?"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만약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죽임을 당하는 것은 재일조선인일 것입니다. 일본에 있다 하여도, 한국에 있다 하여도, 북조선에 있다 하여도 그 땅의 총탄에 맞아 쓰러지겠지요. 그것이 전쟁입니다'

나라와 나라의 틈바구니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 그것이 '재일조선인'으로 태어난 제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003년 4월
신숙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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