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론만 분열된 방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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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론만 분열된 방미
  • 코리아나 뉴스
  • 승인 2003.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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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8일 한국에선 5·18 민주화운동 제23주년 기념식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하여 치사를 하려고 하였으나 한총련 학생들의 기습시위로 행사장 정문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희극적인 사태가 발생했다.
그리고 한나라당의 서청원, 이재오 의원 등은 멱살을 잡히는 수모를 당하고 말았는데 이는 대미 굴욕적 외교에 학생들이 분개한 탓이라고 한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은 방미기간 내내 지나친 친미적 발언을 하여 많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찬반양론이 일고 있고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에서 말들이 무성한데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검증을 시도해 본다.
<편집자 주>

◎ 사진 찍으러 가진 않겠다
지난 12월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바람은 월드컵 축구와 미선 효순 양의 촛불추모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한미양국의 대등 관계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열망은 소파개정을 외치기 시작했고 월드컵 4강에 따른 자신감과 응원에서 온 단결의지는 새로운 변화를 요구했다.
당시 거센 촛불시위에 놀라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도 현장을 찾아 소파개정을 외치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았고 월간조선의 조갑제 사장은 이런 이회창 후보를 맹비난하기도 했다.
당시 노무현 후보는 "반미 좀 하면 어때?" 또 "나는 사진 찍으러 미국엔 가지 않겠다"고 하면서 국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다. 이런 발언은 강대국에 굽실거리지 않고 민족자주를 내세워 당당하게 처신하겠다는 후보자의 발언이라 인기가 상종가를 친 것이다. 그리고 많은 국회의원들이 미국을 방문하여 별로 한 일은 없으면서 유명 정치인들과 그야말로 사진이나 한장 찍고 난 다음 이를 울겨 먹고 있으니 이를 비꼬는 말투이기도 했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의 소위 '햇볕정책'을 한나라당이 자꾸 반대를 하자 일부 진보세력과 시민단체들은 민족의 동질성을 내세워 이를 수구반동으로 표현하며 노 후보를 지지한 것이다. 결국 이론상으론 이길 수 없는 선거를 노무현 후보가 이기고 말았다. 당시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세력은 호남대 영남, 진보대 보수로 확연히 갈라서 있었기 때문에 노무현 후보가 절대적 약세에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약한 세력이 이긴 것은 바로 바람의 탓이었고 그 바람의 최대 화두는 '민족자주'와 '당당한 외교'였던 것이다.

◎ 그런데 막상 미국에 와 보니
그러나 이런 기대와는 다르게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5월 10일 미국을 방문하면서 마치 카멜레온과 같은 변신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우선 방미기간 중 노 대통령의 발언을 살펴보자 "50년 전 미국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지금 나는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 것", "미국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 "미국에 올 때는 머리로 호감을 가졌으나 이틀이 지나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호감을 갖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보이지 않는 엄청난 것이 있구나 생각했다", "얼핏 생각하기에 엄청난 부자는 친절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으나 내가
만난 부자들은 친절했다" 등등이다.
할 수 있는 말들이고 립서비스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노무현 대통령을 바라보는 지지자들의 입장과 정서와는 너무나 상반된 발언이었다. 그리고 이런 발언들은 원고에도 없었던 노무현식 즉석 발언들이라고 한다. 그러니 모두들 변해도 너무 변했다고 입방아를 찧었고 이같은 변신은 한국 정치권에 이상기류를 형성하기도 했다. 청와대에서조차 지지층이 변하는 게 아닌가하는 우려도 낳았다고 하니 말이다.
방미성과를 과소 평가하는 것이 정석이어야 할 야당인 한나라당은 전반적으로 노 대통령의 변신을 환영하였다. 다만 김덕룡 의원은 "이회창 씨가 미국 갔나? 착각할 정도"라고 꼬집으면서 "노 대통령의 감상적 민족주의가 한미관계에 어떤 영향을 줬느냐?"고 묻기도 했다. 여당보다 야당이 더 반기는 이상한 장면들이 연출된 것이다.

◎ 대통령의 변명은?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5월 18일 한총련 학생들의 기습시위가 끝난 다음 전남대에서 가진 연설에서 방미기간의 행적에 대한 변명을 하였다.
노 대통령은 "노무현이 변한 것 같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다. 나는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재야 민주화 투쟁 시는 오로지 문제를 제기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 싸우고 비판했고 초선의원 때도 비슷했다. 그러나 중진 때는 대안을 생각하고 대안을 만들어 새로운 시대에 대비하려 했고 대통령이 돼 보니 시시각각 결정하는 자리라서 역시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대통령 후보시절 동등한 한미관계나 소파개정 등을 얘기했지만 대통령이 된 후 생각해보니 한미관계가 사사건건 충돌하고 갈등이 생기면 북핵문제를 푸는데 어려움이 닥치고, 곧 전쟁이 날 것 같은 불안한 상황이 올 것 같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북핵문제와 관련한 문제에 대해선 "미국이 너무 쉽게, 너무 빨리 무력수단을 택하지 않도록 막는 게 1차 목표여서 그랬던 것이다.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하며 몇가지 역사적 비유를 들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우리 역사에서 반복되는 논쟁이며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일제시 엎드려 세수도 하지 않았지만 한신 장군도 한 때 동네 부랑아의 가랑이 밑을 기었다"고 초한지의 예를 들었다.
또 "중세 교리가 천동설이었을 때 브루노라는 사람은 압력에 굴하지 않고 지동설을 주장하다 화형 당했지만,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신봉하였지만 종교재판에서 부인하다가 나중에 풀려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했는데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브루노를 좋아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두 개 다 의미가 있는 식"이라고 언급한 것이다.

◎ 자세만 저자세 실리는 없다
문제는 이런 저자세로 인해 실리라도 얻었다면 다행인데 별로 소득이 없다는 현실에 국민들은 더욱 분개하고 있다.
대표적인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한반도 평화 및 남북관계에 대한 철학의 부재가 드러났다. 미국의 요구사항은 다 수용하고 우리 주장은 관철시킨 것이 없는 대단히 실망스러운 저자세 외교"라고 혹평했고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과 교수는 "대북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는 심각한 문제를 노출했다"고 말했다. 물론 위험스럽고 색깔도 분명한 것 같아 보이지 않는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에게 친근하고 호감을 갖도록 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런 만큼 받는 것도 있어야 외교 아닌가 말이다.
일반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아양을 떨거나, 하청업자가 오더를 주는 원청업자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이나, 벤더가 바이어에게 후한 접대를 할 때에는 뭔가 바라는 것이 있고 이를 성취해내야 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이루어진 것 없이 마냥 굽실거릴 순 없는 것이다.
현실을 생각하면 노무현 식 방미는 탓할 것이 없다. 그렇다면 대선 기간 중에는 왜 그렇게 큰 소리를 쳤는가? 많은 젊은이들이 그 말이 시원하고 통쾌해서 표를 몰아준 것 아닌가? 그런데 지금 그렇게 변해버리고 현실에 어쩔 수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면 다른 후보와 틀릴 바가 전혀 없고 이건 일종의 사기선거 아닌가? 아니면 국민들이 너무 순진하고 어리석었는가? 그런 후보의 말을 그냥 믿었으니 말이다.
영국의 수상이었던 처칠 경의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그는 "훌륭한 정치가의 조건은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예측할 수 있는 능력과 함께 훗날 그 예측이 들어맞지 않았을 때 그 이유를 아주 그럴 듯하게 들러댈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개념에서 보면 훌륭한 정치가일 수 있겠다. 잘 둘러대고 있으니 말이다.
구 소련의 수상  후르시초프도 "정치가란 결국 시냇물이 없어도 다리를 놓겠다고 공약하는 사람들이다"라고 하였듯이 '자주외교'는 아직은 시기상조인데 노무현 대통령은 이를 미리 팔아먹은 것이다. 어쩌면 철이 이제 든 것이고 국민들은 한 때 꿈을 꾼 것이다. 일장춘몽의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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