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러시아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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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러시아의 빛과 그림자
  • 백동인
  • 승인 2005.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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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경제는 2000년 이후 매년 거의 5%대 이상의 성장 속도를 유지해 왔으며 2004년 부터는 7.1% 의 고성장을 달성하고 있다.

그것은 99년 이래로 계속되고 있는 세계적 고유가 추세에 의존한 것이었지만 이러한 오일 달러에 힘입어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연일 도처에 신흥 부유층을 위한 고가 아파트가 즐비하게 세워지고, 개방 이후 설립이 자유화된 도박장이 시내 중심가 곳곳에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서면서 황혼녁이 되면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일부 지역은 그곳이 마치 라스베이거스인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모스크바에만 60여 곳이 성업 중이라는 러시아의 카지노 수입은 지난 해 24억 달러에 불과하였으나 그 수익이 2007년에는 9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될 정도로 러시아의 도박 수입은 천문학적으로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도박의 대중화 현상의 부작용으로 말미암아 모스크바의 경우, 주민의 5%에 해당되는 50만 명 정도가 도박증 환자라고 알려질 정도가 되었다.

금년 7월 11일 미국 포브스지가 발표한 개인재산 10억 달러 이상의 세계 갑부 명단에는 러시아인이 무려 27명이나 포함되었는데 이들의 재산을 모두 합치면 무려 906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러한 수치를 기준으로 보면 러시아는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갑부를 소유한 나라가 되는 셈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처음 집권한 2000년에 포브스지가 선정한 그 해의 갑부 명단에 러시아인이 한 명도 오르지 못한 것과 비교한다면 러시아 사회의 빈부격차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벌어지고 있는지 예상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러시아 사회의 다른 한 구석에는 한숨과 주름살을 운명처럼 품고 살아가는 힘 없는 서민들을 보게 된다. 무엇보다 치솟는 인플레가 이들에게 큰 문제이다. 지난 해 인플레율은 12%였고 올해는 그보다 높은 15%에 쉽게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서민의 주식인 고기와 설탕, 맥주와 빵, 소시지, 채소류의 값은 1999년 이래 최소 대여섯 배 이상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의 빈부격차는 해마다 더욱 벌어져서 전체 인구의 10%가 전체의 30%의 부를 독식하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전체 인구의 15%인 2080만 명 정도가 월 90달러 미만의 최저 생계비로 살아가면서 질병과 기아의 위기에 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정부는 예산절감을 이유로 그 동안 은퇴 노년층에 혜택을 주어 오던 대중교통 무료 이용과 의료비 보조 등 각종 혜택을 2005년 초에 폐지 또는 축소함으로써 러시아 사회의 소외계층은 페레스트로이카 이래 최악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러시아 사회는 정치적으로 위기가 잠복해 있다. 잘 알려진 대로 푸틴은 2003년 10월, 자신을 반대하는 신흥재벌, 소위 올리가히에 대한 전격적인 사정을 단행하여 차기 대통령 후보로 까지 거론되던 러시아 제 2의 석유기업 ‘유코스’의 사장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를 전격 구속하고, 지난해 유코스를 해체하고 국영기업으로 편입시켰다.

그리고 2000년 3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89개 연방으로 분류되던 러시아 전역을 7개 연방지구로 통합, 구획하고 각 지구에 대통령 전권대표를 파견함으로써 자치장의 권력을 무력화 했다. 부총리급인 이들 지역의 대통령 전권대표에게는 대통령의 공약을 해당 지역에서 실행하고 그 지역 기관을 통제하는 막강한 권력이 부과되었다.

이는 독일의 나치 정부 당시, 권력의 중앙집중화를 견제할 수단이 전무한 결과, 홀로코스트 즉 유대인 대량학살과 세계화 대전으로 비화되었던 것을 반성하여, 1945년 종전 후 독일의 지역대표인 상원이 사사건건 하원과 정부를 견제하며 권력의 중앙집중을 막고 균형감 있는 민주주의를 진척시켜 온 것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차대전 전승 60주년 기념행사 전일인 금년 5월 8일 모스크바 근교 노보-오가료보 러시아 대통령 전용 별장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러시아 정부가 민주주의의 성장을 억제하고 있다”며 러시아의 민주화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민주주의 원칙은 러시아 전통에 맞추어 진행할 것”이라며 미국식 민주주의의 이식에 일단 거부 반응을 나타냈다.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통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그의 집권 기간 동안 언론의 개방을 뜻하는 글라스노스티를 최대한 지원했었다. 이러한 정책기조는 옐친 대통령 시절에도 유지되었으나 푸틴 정부에 들어서면서 사정이 완전히 달라져서 푸틴 정부에 먼저, 반정부적 성향의 민영 NTV가 2001년 국유화 되었고, 2002년에는 같은 이유로 TV6 마저 강제 폐쇄 조치를 당했으나 이에 대한 시민사회나 언론계의 지속적인 저항은 없었다.

뉴욕 타임즈는 지난 4월 26일, 러시아 중부 우랄 지방의 바슈코르토스탄 자치공화국에서 수천 명의 주민이 지난 선거에서 푸틴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당선된 지역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자치공화국에서 이례적으로 대통령 전권대사에 주민들이 조직적으로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이러한 일은 러시아에서 처음 있는 일로서 러시아 민주화의 시발점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를 낳았으나 찻잔의 태풍으로 그치고 말았다. 이는 과거 소련에 속했던 형제국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야 그리고 몰도바 등에서 반러시아와 민주화 노선으로의 변화의 바람이 거센 것과는 무척 대비되는 대목이다.

잘 알려진 대로 1990년 6월, EU 회원국간 국경철폐를 위해 베네룩스 3국과 프랑스 그리고 독일등의 5개국 정부에 의해, 서명 발효된 쉥겐 조약(Schengen Agreement)의 쉥겐정보시스템에 올라와 있는 수십 만 명의 블랙리스트 가운데 거의 대부분이 러시아와 중동인으로 알려져 충격파를 던진바 있다. 특별히 이 후 가입한 서유럽 지역의 회원국들이 숨겨진 EU 가입 이유가 이들 블랙리스트 들로부터 자국의 사회적 안보를 염려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러시아 지역의 5천여 마피아 집단이 세계적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들은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국제적인 매춘, 마약 및 무기 밀거래에 깊이 관여되어 있고 특히 헤로인의 서유럽 확산에 중간 기착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공식적으로 판명되었다. 이들은 러시아 국내에서 관료들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고 외국인들의 러시아 투자에 직간접으로 관여하고 있어서 러시아의 세계화가 넘어서야 할 산이 간단치 않음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한국사회가 한국인들의 조급한 성향으로 그 때 그 때 사회적 불의에 대해서 적절한 대응을 하며 민주주의를 진척시켜 온 과는 달리 러시아에서는 일단 할 수 있는 한 기다려 보는 느긋한 대륙적 기질로 말미암아 위에 열거한 러시아의 민주주의 발전의 많은 장애들이 일 순간에 제거되지 않고 있으나 한번 터지면 걷잡을 수 없는 수위로 소용돌이 치는 그들의 기질상 머지않은 시기에 적절한 사회변화의 욕구 분출이 이루어질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러시아 지식 계층 가운데 최근, 한국을 배우자는 흐름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 무엇보다 러시아 사회학계의 양 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페테르부르크 사회학을 대표하는 니콜라이 스크보르초프 학장이 11월 7일부터 한 주간, 류드밀라 페르비츠카야 총장과 더불어 한국의 연세대학교를 방문하고 관계자들과 만나 한국의 근대화와 민주주의를 러시아 학계에 이식하려는 작업의 일환으로 양교간의 글로벌 사회학 복수 석사학위 과정을 개설하기로 합의하고 이의 실천을 결행할 예정으로 있는 점은 러시아 사회를 위해서 참으로 긍정적이다.

러시아 학계는 지금 한국의 사회변동을 자국의 적절한 모델로 삼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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