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포 참정권은 민주주의의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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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포 참정권은 민주주의의 기본"
  • 오니바
  • 승인 2005.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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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일본 재외동포 선거권 쟁취 주도한 고이또 주니치씨

다음은 프랑스에서 발행되는 오니바신문 75호(2000년 2월15일자)에 게재된 일본인 고이또 주니치씨 인터뷰 기사이다. 파리에 거주하는 일본인 고이또 주니치씨는 해외일본인 참정권운동을 이끌었던 인물중 한명이다. <편집자>

조용하던 빠리의 일본인 사회가 재외일본인 선거인명부등록을 계기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1999년 5월 통과된 개정선거법에 따라, 금년 5월 1일 이후로는 전국선거에 대해, 즉 중의원 비례대표의원 및 참의원비례대표의원 선출에 모든 일본국적의 유권자가 참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투표권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는 한인 교포사회로서는 한편으로 부러운 일이며 다른 한편으로 투표권 회복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킬 만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일본 헌법에 의하면 일본국적을 가진 모든 사람은, 거주지역이 국내이든 해외이든 '국가적 사안'에 대한 투표권을 가지고 있다. 또한 지역선거나 자치구 선거에는 국적에 관계없이 모든 거주민이 투표권을 가질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하위법인 선거관련법이 해외거주 일본인의 투표권을 제한하고 있어 참정권에 제한을 받아온 것이다.

헌법에 보장되어있는 투표권을 되찾는 데는 정권교체로 표현되는 일본내 정치적 분위기 변화 뿐만 아니라 해외 일본인 사회의 길고 끈질긴 노력이 있었다. 1993년 이후로 진행되어온 일본해외유권자협회(Japanese overseas voters association)의 운동은 아직도 투표권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해외 한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이또씨에 의하면 1955년부터 1993년까지 정권교체 없이 자민당이 일본정치를 지배해왔다는 사실이 투표권 회복의 장애물이었다고 한다. 이 정당은 다른 정당에 비해 보다 보수적이었고 관련 선거법개정을 반대해왔다는 것이다. 93년 정권의 교체는 일본 교포사회에 투표권 되찾기 운동의 가능성을 일깨운 정치환경의 큰 변화였다고 고이또씨는 말했다.

1993년 제일먼저 이 운동을 시작한 것은 뉴욕이었다. 뉴욕에 거주하는 법학전공의 한 학생이 투표권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돌리기 시작함으로써 이 운동은 시작됐다. 빠리에서도 거의 동시에 유사한 문제의식을 가진 몇 사람이 청원서에 서명을 받는 운동을 조직했다. 본격적인 국제연대는 로스엔젤레스 일본인의 이니셔티브하에 시작되었다. 일본해외유권자협회가 창설되어,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필리핀, 브라질, 페루, 홍콩의 일본교민을 연결하는 국제적 네트워크를 통해 각 지역운동간 상호접촉이 시작되었다. 이들지역에서도 역시 청원서에 서명을 받아 정부 및 참의원, 중의원에 보냈다.

"빠리에서는 아사히 신문의 전직 기자였던 저의 친구가 저와 함께 시작하여 1천5백여명의 서명을 받았습니다" 고이또씨의 회고다. 1만 5천내지 2만명으로 추산되는 프랑스 거주 일본인의 10%는 적지 않은 성과이며 일본인 투표권 회복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98년 정부의 선거법 개정 결정과 99년 5월 개정법안의 통과까지 긴 운동기간이 증명하듯이 결실을 보기까지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우선 청원운동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어서 협회는 일본내 주요 신문에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해 기사를 보내는 작업을 진행시켰지만 역시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동시에 모든 국회의원을 상대로 선거법개정의 당위성을 알리는 요청서를 돌렸다. 고이또씨는 동료와 함께 정부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작년 개정 선거법이 통과되고 난 이후에 패소라는 결과가 나왔지만 이 헌법소원은 투표권을 되찾는데 아주 효율적이고도, 강력한 수단이었다"라고 고이또시는 강조했다.

운동의 어려움은 일본 내부의 정치적 분위기에도 있었다. 이 문제를 둘러싼 정단간의 이해관계의 차이가 의견 수렴을 방해한 것이다. 대도시 선거구의 국회의원들은 많은 경우 이 개정에 반대했다고 한다. 대도시에 위치한 많은 일본기업이 해외지사에 직원을 내보내고 있기 때문에 대도시는 지방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거법 개정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되는 상황에서, 대도시 출신의 의원들이 개정에 반대해왔다는 것이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운동이 성공을 이루는 데는 활동가들의 열정 뿐만 아니라 교민사회 나아가 본국의 지지 여론이 불가결한 요소였던 것으로 보인다.

필요한 경비조달은 전적으로 개인적 기부에 의존했다. 프랑스의 경우 관심을 가진 교민들의 수십프랑 내지 수백프랑씩의 개인적 기부로 필요한 경비를 충당했다. 일본 내부로부터는 일본 변호사연합회의 지원을 받았다. 예컨대 헌법소원과 관련한 모든 소송비용을 무상으로 지원받는 식이었다.

협회의 끈질긴 노력의 결과로, 20세 이상의 성인으로 해외 체류 3개월 이상인 일본국적 해외동포는 투표권을 갖게 됐다. 이제 투표가 있을 경우 재외공관에서 직접 투표하거나, 우편 또는 귀국의 방식으로 국정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법안개정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빠리에서 불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후지와라(28세)씨는 "선거권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가장 기본적인 시민권의 하나입니다. 지금까지 이 권리를 박탈당해왔다는 게 민주주의사회임을 주장하는 일본사회에겐 오히려 이상한 일이죠"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고이또씨는 투표권의 획득을 절반의 성공으로 보고 있다. 획득된 권리는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다른 반은 본국에서보다 투표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할 수 밖에 없는 교민들을 투표에 참여시키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30여명의 다른 일본인들과 함께 또다른 협회를 창설했다. 교민에게 국내정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투표에 참여시키기 위한 운동을 벌이기 위해서다. "우리는 일본의 모든 정치인들에게 10개의 질문을 보내 그 결과물을 우리가 만든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는 작업을 진행중입니다. 질문은 현실의 정치적 쟁점에 관한 것이라기 보다는 주로 일본의 미래, 21세기의 비전을 묻는 것이 주를 이루고 있죠".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과 동일한 문제에 직면해 있는 한인 교민사회에게 일본의 경험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선거권의 회복에는 국내 정치의 분위기 변화뿐만 아니라 교민들의 권리에 대한 높은 자각 및 끈질긴 노력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한국에서도 지금까지 역대 정권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관련선거법 개정에 반대해 왔다면 최근의 정권교체는 교민사회가 선거법 개정의 희망을 품어볼 수 있게 하는 큰 변화가 아닐까. (김계환 여금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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