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동포사회 과거사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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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동포사회 과거사 정리
  • 이은희
  • 승인 2005.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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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속의 인용을 통해 본 대사관의 자세-
지난 10일 노무현 대통령의 재독동포 간담회 보도는 재독동포사회에 드리운 분단과 분열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선 재외공관의 대민 자세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새삼 확인하게 한다.

연합뉴스 보도가 인용한 대사관 고위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대사관은 "과거 기존 교포 사회나 단체와 '거리를 뒀던' 교민들을 대사관이 문을 연 이래 처음으로 이런 행사에 초청“했다. 동시에 예의 대사관 고위 관계자는 "이 분들은 이른바 친북 좌익은 아니라고 보며, 용어가 애매하기는 하나 이른바 '진보적 성향의 교민들' 정도로 표현하면 될 것"이라 했다고 한다. 또 연합뉴스 보도가 인용한 대사관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대사관측에서는 "다만 이번엔 '과거 대북 행적에 문제 없는' 분들 중에서 소수만 초청했으며, 혹시 일반 교민이나 교민회에서 반발이 있을 까 우려도 했다"고 한다.

예의 기사에는 “盧대통령 방독 계기 교민사회 화해ㆍ협력의 싹”이라 제목을 붙였으나, 보도 속의 인용을 볼 때, 과연 그러한가 하는 의문이 강하게 불기만 한다.

왜냐하면, 보도 속의 인용을 분석해 보자면, 동포들을 “친북 좌익”이라든가 “진보적 성향의 교민들” 등으로 구분하는 태도가 전제되어 있으며, 이런 전제는 화해와 협력의 시대에 대사관이 근본적으로 취할 발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포들의 사회의식이나 정치성향에 대해 민감하게 살피고 성향을 기준으로 분류하는 업무로 만족하지 않고, 그러한 분류를 아직도 공공연히 선명한 기준인양 전제하는 태도에선 과거 재외공관이 동포사회에 저지른 분열의 역사를 반성한 흔적이라곤 조금도 찾을 수 없다.

또한 "과거 기존 교포 사회나 단체와 '거리를 뒀던' 교민들“이란 말은 무엇인가? ”국정원 직원이 한 마디 흘리면 금새 소문이 나고 그렇게 되는 당사자는 불쌍하게 격리된다“는 말은 격리되지 않은 어느 충실한 한인회 인사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과거 공관에서 흘린 말들로 인해 피해를 입고 동포사회에서 격리된 이들을 두고 마치 스스로 거리를 둔 것처럼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진보적 성향의 교민들”을 초청하는 일을 두고 “교민들이나 교민회”에서 반발을 할까 우려했다는 대사관 관계자의 말은 또 무엇을 뜻하는가? 이는 재독동포사회의 흐름을 분명 잘못 읽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지금 재독동포사회의 지방한인회는 다수 한인회의 회장이 한독가정의 여성들이며, 권위보다 실질적으로 다양한 행사를 통해 한인사회의 화합과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대사관 관계자가 말하는 것처럼 “진보적 성향의 교민들”을 초대하든 말든 그리 관심 없다. 또, 80년대에 풍물을 한 재독동포 여성들이 일반 한인사회에서 격리된 편이었으나, 지금은 일반 한인행사와 일반 한글학교 행사를 비롯하여 행사 주최자의 사회의식 성향과 무관하게 출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난 70년대 재독여성모임이라든가 노연의 활동으로 인해 그 이름에 "딱지“가 붙은 사람들이 한국 국내를 드나들고 한인회가 주최하는 모임에 참석하는 일은 이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는 현지 동포언론의 기사들을 통해서도 입증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대사관은 ”진보적 성향의 교민들 소수“를 초대한 일을 두고 생색을 내는 것일까? 이미 동포사회 일상에서 진행되고 있는 화홰와 협력의 상황보다 떨리는 더 작은 발걸음을 내세웠으면서 말이다. 단지 ”대통령님“이란 중요한 분이 오시는 자리여서일까?

대사관이 말하는 “교민과 교민단체”는 누구를 뜻하는가? 단지 과거에 재외공관과 긴밀하게 협력한 과거 때문에 이러한 동포사회의 변화를 불필요할 정도로 섬뜩하니 느끼는 몇몇 원로 동포들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원로 동포들이 현 재독한인총연합회 집행부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재외공관과 여전히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재독동포사회의 현실이란 점은 틀림없다. 또한 이 작은 부분의 부분이 동포언론의 “논조”를 관리하며 사주에게 집요하게 전화를 하곤 했다. 그렇지만, 이 분들은 “나라를 대표”한다고 믿는 재외공관 직원들에게 갖고 있는 무조건적인 신뢰와 의지의 마음이 강한 편이니 만큼 재외공관이 한국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변화, 아니 재독동포사회 일반에서 진행되고 있는 변화에 발맞출 경우 그리 반발할 만한 반골 기질 또한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독 대사관의 발상이 한국 국내에서 진행된 변화, 아니 재독동포사회 일반에서 진행되고 있는 변화보다 뒷걸음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 시점에서 다시금 재독동포사회의 과거사를 이야기해야겠다. 70년대에 동포들이 소그룹으로 모여 함께 책을 읽거나 토론을 하는 모임의 사진첩에는 양복을 입고 위압적으로 서 있는 대사관 직원들의 모습이 있다. 그리고 이 중 모씨는 승진하여 다시 독일로 오고, 과거의 “교민” 동지들과 좋은 사이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그 모씨의 과거를 개인차원에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 70년대의 공무원과 21세기 참여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자연인으로는 한 인간이지만, 변화를 겪은 대한민국 외교관으로서 필요한 통과제의의 흔적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재외공관 및 공관 직원들의 거듭나기와 통과제의를 위해 바라노니 70년대 재외공관의 그들이 받은 지침과 수행한 작전, 70년대, 80년대에 그들이 행사한 조직 사업과, 90년대와 21세기에 이르면서까지 계속되는 동포사회 관리지침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그 모든 것이 공개된다면, 왜 지난해 광복절 행사 같은 한인회총연합회 행사에 참여하는 동포의 수가 아무리 불리고 또 불려서 계산해도 3만5천 재독동포의 10퍼센트도 되지 않는지 선명해질 것이다.

동포사회 백성들은 우민(愚民)이 아니다. 과거의 우민화 사업이란 기차가 아직도 달리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는 재외동포사회의 과거사가 정리되지 않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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