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베일을 벗는 러시아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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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베일을 벗는 러시아 사회학”
  • 백동인
  • 승인 2005.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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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학이 러시아 사회학과 공식 관계를 갖기 시작한 것은 불과 1여 년 전, 러시아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사상적 접촉이 필요하다고 여긴 당시 백동인 자유대 총장과 이승철 전 의원이 국립대측과 접촉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이들은 8명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현 러시아 정부의 대통령 및 주요 각료, 그리고 집권 기반을 제공한 상트테페르부르크 국립대학의 사회학대학 학장 스크보르초프 학장과 부학장 갈라빈 교수를 한국의 서울대학교 정치연구소(당시 소장 김세균 교수)가 초청하도록 도왔다.

스크보르초프 학장 일행은 이승철 의원의 도움을 받아 국회에서도 러시아 사회에 관한 특강을 하고 각계의 한국인들과 접촉하며 한국의 역동성을 몸으로 체험했다. 특별히 온통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서울이라는 후기 자본주의의 메트로폴리탄에서 오히려 그들은 거리를 가득 메운 젊은이들에게서 밝은 활력과 미래의 가능성을 읽었다. 그것은 오늘의 러시아 젊은이들에게서 보이는 그것과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그들은 한국인들은 인테넷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새로운 정권창출에 주도적으로 관여했다는 놀라운 소식도 들었다.

그것은 1960년 당시 일인당 국민소득 110달러의 세계의 열등 국가였으며, 일그러지고 피폐했던 식민지와 분단을 경험했다는 희미한 기억 속에 존재하는 그 국가는 더 이상 아니다. 스크보르초프 학장 일행은 5천년 가난의 때를 벗은 현대화와 자본주의 성취에 관한 한국사회학의 축적된 경험들을 전수받기를 원했다.

사회학자들은 수많은 데이터를 내어놓는다. 그것은 과거의 경험에 기초한 것이면서 미래를 예측하는 힘이 있다. 그러한 데이터는 프랑스 혁명 직전의 계몽주의 사상가들에게서 와 같이 혁명의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한국사회학의 데이터들은 구약성경의 그것과 같이 실패와 어두움으로 점철된 일그러진 영웅들의 반복된 실패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미래를 향하는 희망의 길목을 차지하고 있다. 그것은 분명히 전세계적 차원의 보편적 경험과 인식론적으로 연결된다. 러시아 사회학자들은 이제 그들과 정서상으로 가까운 한국사회학과의 접촉적을 통해서 그들의 경험적 사회학 이론을 재생산하려 한다.

러시아에서 사회학이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1860년대이다. 사회학의 기초가 놓여지던 그 시기에 러시아는 집약적 근대화 과정을 겪었다. 사회 발전의 문제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회학의 중심적인 주제이다.

러시아 사회학의 특징들 중 하나가 되는 것이, 해당 시기의 철학과 종교적 분위기가 사회학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1917년 10월 혁명 이전에 러시아의 높은 종교적 열정은 대중이 갖는 실용적 필요에 대한 연구와 하나의 관심으로 합류하였다.

러시아 종교 문화의 특이성은 처음부터 거시사회적 사상의 우월성을 미리 결정해 놓아, 사회학의 향방을 사회 발전의 기본적 문제들로 틀어 놓았는데 그러한 특성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보존되고 있다.

발생 당시의 러시아 사회학은 국제 사회학 토론의 장에 참여하였고 전쟁으로 1930년대에 중단되었던 러시아 사회학과 세계 사회학 사상의 연계는 점차적으로 재생하고 있다.

러시아 사회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지식 계층과 정치 권력 사이의 갈등이 갖는 큰 의미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러시아 사회학자들과 국가 권력은 지금까지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의 불신을 갖고 있다.

제20차 소련 공산당 대회(1956년) 이후 국내 사회 사상이 다소간의 자유화를 겪었고 뒤이은 토론의 결과로 1970년대에 사회학적 지식의 다단계 구조에 대한 확고한 관념이 세워졌다.

그것은 일반 사회학 이론-중간 수준 이론 (특수 사회학 이론)-이론 발전을 자극하는 경험론적 연구의 ‘3단계 방법론’이다.

이러한 관념은 미국의 사회학자 R. 머튼의 견해와 상응한다. 머튼은, 경험론적 연구의 기반 위에서 중간 수준 이론(중간 등급 이론)들을 발전시키고, 나아가 이 이론들의 기반 위에서 일반 사회학 이론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회학에서 일반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의 사회학 체계로 간주되는 일반 사회학 이론은 이미 갖추어져 있다고 인정되어 왔다. 그것은 다름아닌 역사유물론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회학에서 저수준으로 평가되는 경험론적 연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현재 새 사회 계층들, 특히 기업가 계층과 빈민 계층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기업가들에 대한 연구(I. 부닌, T. I. 자슬라브스까야)와 빈곤 상태 연구(예를 들어, V. M. 보론꼬브)를 참고해 볼 수 있다.

V. I. 일리인에 따르면 알려진 바와는 달리 러시아에서 계급이라는 개념이 러시아 사회의 계층 형성에 대한 분석을 위해 충분치 못하다는 점이다. 오히려 계급과 관련된 기준보다는 사회적 불평등의 다른 기준들이 큰 의미를 갖는다. (V. I. 일리인. 국가와 사회 계층 형성. -- 소련 사회와 소련 시대 이후의 사회를 기준으로 --. 1917~1996. 씤띄브까르. 1996)

최근의 제1차 전 러시아 사회학 국제 회의(2000년)에서 밝혀진 바, 현대 러시아 사회학의 정신적 리더는 삐찌림 쏘로낀이다.

러시아 사회학의 입장은 소련 공산당 중앙 위원회 서기장 미하일 쎼르계예비치 고르바쵸브의 정치 개혁과 더불어 변해 왔다. 1988년 소련 공산당 중앙 위원회 명령에 의해, 학문으로서의 사회학의 독립성이 확정되어, 사회학은 대학 수준의 교육 프로그램에 학습 과목으로 도입되었다. 이 점에서 1988년은 러시아 사회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해로서, 러시아 사회학의 새로운 지평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991년 말 M. S. 고르바쵸브는 사회의 역동적 변화를 컨트롤하는 능력을 상실하였고, 소련의 개혁은 사회의 다음과 같은 네 측면의 변모 과정으로 돌변해 버렸다.
경제 체계의 경질 - 국가 정치 제도의 재편 - 국가 체제의 변화 - 영토의 변화
그러한 상황 속에서 사회학자들은 다시 격렬한 토론을 벌였고 그 주제는, 역사유물론을 대하는 입장, 러시아 사회 발전을 위한 사회학의 사회적 역할, 러시아 사회학으로 하여금 국제 사회학 토론의 장에 참여하게 하는 일, 그리고 경험론적 사회 연구 방법과 사회학의 제도화 등이다.

러시아에서 최근에 일고 있는 역사유물론 비판은 3단계 사회이론체계를 거부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3단계 이론'에 따른다면, 역사유물론은 T. 파슨스의 ‘사회 행동 일반 이론’과 같은 등급의 ‘보편사회학’ 이론이며, 그 영향을 받은 학문으로서의 공산주의도 현대 사회의 ‘사회학 일반이론’이다. 서구에서 다양하게 논의된 특별 사회학 이론들은 저수준의 경험론적 연구(사상, 가치 체계 및 민중의 ‘사회적 원형’의 상호 관련에 대한 가설 등)로 향하는 길목이라는 것이다.

'3단계 이론'은 R. 머튼의 '중간 수준 이론'의 개념과 흥미로운 유사성을 보인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머튼은 경험론적 연구를 기반으로 사회 개별 분야 이론을 작성하자는 의견을 발표했는데, 그가 말한 경험론적 연구는 사회의 개별적 분야들을 설명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회에 대한 전체적 설명은 시도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구소련에서는 그와 반대로, 보편사회학 이론이 이미 역사유물론의 형태로 개발되어 있다고 믿고 있었고,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오직 ‘역사유물론’의 이론 명제를 하급수준으로 평가절하한 “개별적 사회 문제들에 대한 경험론적 연구”에 적용하는 일이라고 간주했다. 바로 그와 같은 고급 이론을 저급 사회학 이론에 적용하는 임무를 ‘특별 사회학 이론’ 즉 머튼의 중간 수준 이론(사회 제도 이론, 인간의 사회화 이론, 사회 변화 이론 등)과 유사한 이론이 행해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 사회학자들은 역사유물론이 복잡한 현대 사회의 현실에 아무런 관계도 갖고 있지 않은, 연역적 철학법칙론적 구조라고 여기고 이를 지지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오히려 개인적이고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개별적 사회 생활의 특성을 주목하며, 사회의 지역적 특성들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과 사회 집단의 다양성에 관심을 갖는다.

그들은 역사유물론이 더 이상 전 사회에 대하여 보편적이며 합법적이며 효력을 갖는다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선다. 이러한 학계의 흐름은 1956년 이래로 발전되어왔고 역사유물론의 추종자들은 그 때로부터 더 이상 국가 권력의 정치적 지지를 받고 있지 못했으므로, 토론에서 소극적이거나 자신의 학문적 입장을 비교적 빨리 포기하는 것으로 태도를 결정했다.

역사유물론을 대표하는 자들과의 토론에서 쉽게 거둔 승리로, 보편사회학의 범주로서의 이론사회학의 우월성이 구 소련에서 사라지면서, 현대 러시아 사회학은 유물론 이전의 긴 역사적 전통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는데, 그것에 따르면 사회학은 사회와 사회의 변혁에 대한 학문이다.

그리고 거시사회학의 법칙들과 더불어 미시사회학의 현상 역시 사회학의 대상으로서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러시아 사회학의 향방을 정교하게 다듬은 사람이 V. A. 야도브이다. 이로써 거시사회학적 입장의 우월성을 상당히 약화되었다.

예전과 비교할 때 새로운 상황 가운데에서 사회학자들은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실현하는 데에 있어 나은 형편에 놓이게 되었다. 사회학은 여론으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고 있었다. 사회학은 객관적인 학문인데 이전에는 박해를 받았었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한 상황에서 사회학자들은 개혁의 학술적 지지를 자신들의 과제로 삼았다.

그들은 '병든 사회'를 진단하였고, 사회주의를 고치기 위한 처방전을 제시하였다. 사회 재건을 목적으로 그들은 인도주의와 민주주의의 이상에 부합하는 사회주의를 요구하였다. 이러한 운동을 '재건(페레스트로이카)의 사회학'이라 부를 수 있다.

이 운동을 대표하던 자들은 문제의 분석에 있어서 그 당시로서 놀라울 정도의 깊이와 정확성을 보여 주었다. 비록 '재건의 사회학'은 이데올로기화된 슬로건과 낡은 이론 문구들을 아직 많이 갖고 있었지만, 사회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분명히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사회주의 슬로건을 지닌 재건(페레스트로이카) 역시 종식되었고, 위에서 언급되었던 학계 내부에서 일었던 운동, 즉 '재건의 사회학'도 소멸되었다. 그러나 현재에도 여전히 많은 사회학자들이 사회 개혁에 대한 학술적 지지를 행할 자세를 갖추고 있다.

‘역사유물론’이 러시아 학계에서 영향력을 상실하면서 러시아 사회학 이론에 커다란 공백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러시아 사회학은 부득불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서 사회적 성취를 이룬 국가들과의 학문적 연계를 갖는 일과 관련을 갖게 되었다. 현재의 러시아 사회학은 세계 사회학이 달성한 다음의 세 가지 사항을 습득하고자 한다. 즉 “현대의 인성(人性) 이론”, “문화적 다양성” 그리고 “세계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이론사회학의 공백에 대한 첫 반응으로서 나타난 것이, 세계 사회학의 고전을 번역하여 출판한 일이었다. 최근 10여 년간 각국 사회학의 주요한 저서들이 러시아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사회학 토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서 또한 그 엄격한 단어적 의미로 따질 때 사회학적이지 않은 개념들이 있는데, 이는 '사회적 시장 경제', '다원적 사회', '민주적 법치국가'라는 개념들이다.

이 개념들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소멸 후에 생긴 공백을 부분적으로 메워 주었지만 그것은 러시아 사회문화의 맥락에 적응하지 못했고, 이론 내부에 다분히 모자이크적인 그림이 그려졌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러시아 사회학자들은 서구 이론 명제들을 단순히 차용만 하면 안 되고 성과를 가져올 수 있는 사상들을 집성하여, 기본적 문제들을 러시아식으로 개조하여야 토착화하여야 한다는 확신을 점차 갖는 것으로 움직이고 있다. 현재의 러시아 사회 이론 가운데는 서구에서 수입되었으나 러시아식으로 어느 정도 개조된 흥미로운 형태의 이론 명제들이 존재하고 있다.

예를 들면, 사회학자 K. 까씨야노바는 러시아 민족성에 대한 사회문화적 연구를 행하였다. 그녀가 러시아인들 및 미국인들의 인성 타입들에 관한 경험론적 자료를 비교해 본 결과, 러시아인들이 미국인들에 비해 심리적으로 좀 더 개인주의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므로 그녀는 러시아 사회가 해체되지 않기 위하여, 개별적 인간의 도에 지나친 개인주의를 억압할 만한 집단주의적 문화를 만듦으로써 사회의 집약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까씨야노바가 사회적 작위 이론의 관점에서 행한 가치 체계 분석에서 알 수 있는 바, 러시아에서는 서구에서와 달리, 사람들의 작위가 목적 위주의 합리성을 훨씬 덜 지니며, 가치 위주의 합리성을 훨씬 더 지닌다(M. 베버의 유형 분류에 따르면). 까씨야노바는 또한, 서구인들의 그것에서와는 달리 러시아인들의 가치 체계에서는 인내가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노동은 이 체계 내에서 매우 미미한 역할을 한다. 노동하는 삶을 강조하던 1970년대 사회주의 선전에 역행하듯, 노동은 인간이 지니는 제1의 삶의 요구가 되지 못했다.

까씨야노바의 이론은 러시아인들의 경제 활동 및 정치 행동의 많은 특징들을 잘 설명해 준다. 그녀의 이론을 러시아에서는 국가, 정당, 노동 조합 등 목적 위주의 합리성에 따라 세워진 정치 기구가 왜 서구의 그것들과는 다른 기능으로 이행되는지 알 수 있다.

그러한 기구들은 서구의 그와 유사한 기구들의 기능을 동일하게 이행하지 않는다. 그것은 서구의 국가나 정당 같은 기관들이 목적 위주의 합리성에 따르지만 러시아인들에게 있어서는 그러한 기관들의 가치 위주의 합리적 성격과 완전히 부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러시아인들은 목적과 수단을 셈하기보다 일정한 가치를 추구하기를 선호하며, 비공식적 기반 위에서 자신의 관계들을 실현한다. 이러한 이론은 러시아 국민이 왜 그렇게 비정치적이며 현대의 정치 제도 및 경제 제도가 가져야 할 기능에 대하여 왜 큰 관심을 갖지 않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이 이론은 또한, 러시아에서 중요한 정치적 선거를 치를 때 마다 왜 정치가의 이데올로기적 입장 대신 그의 개인적 지위가 그리 큰 의미를 갖는지 잘 설명해 준다. 여기서 러시아 사회에 철저히 깃들어 있는 러시아 보수주의의 성격이 해명되며, 국민이 개혁 사상과 그 진행과 관련된 관념에 대해 관심이 적은 이유가 설명된다.

러시아인들은 아무리 물질생활에 궁핍을 느껴도 물질생활의 향상을 위해서 노동시간을 증가시켜야겠다는 생각을 갖지 못한다. 그것에 대한 설명으로 사회학자 A. A. 지노비예브는 사람들이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지 않고도 자신의 사회 환경에 잘 적응하도록 해 주는 단순한 행동 법칙들이, 지배적 우위를 점하는 현상이 실현되는 바가 바로 사회주의 체제라고 주장한다.

그러한 법칙들은 인간의 사회생물학적 진화의 법칙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그것과의 결합 속에서 사회 체제를 형성한다. 러시아 사회는 서구 사회보다 더 자연친화적이다. 러시아 사회가 생물학적 진화의 법칙에 부응하는 단순한 행동 법칙들을 기반으로 삼고 있는 연고로 좀 더 자연보편적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서구 사회야말로 사회 진화 과정에서 '특별한 경우', 즉 돌연변이일 가능성이 많다. 지노비예브의 이론을 통해서 우리는 왜 러시아에서 수많은 개혁들이 난관에 봉착해 있는지 그 난점들을 잘 해명해 준다. 이러한 이류로 그는 러시아 사회의 공산주의 구조로의 귀환 가능성에 대해서도 커다란 커다란 가능성이 예고한다.

서구이론의 러시아 토착화 작업의 일환으로 또 하나 흥미롭게 개발된 이론이 ‘러시아 사회의 구조에 관한 이론이다. 이 이론이 시작된 것은 공식적으로 인정된 '2+1'(서로 친밀한 노동자 계급과 농민 계급과 지식인들로 이루어지는 중간층)이라는 공식의 비판으로부터이다. 러시아 사회학은 사회 계층이라는 개념을 사회적 불평등의 네 가지 고전적 지표(수입, 권력, 직업의 귀천, 교육 수준)를 바탕으로 수용하였으나, 최근의 연구 결과 이 지표들이 러시아 사회에서 사회적 불평등을 매우 부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음이 판명되었다.

사회학자 V. 일리인은 '네 가지 고전적' 지표보다 러시아 사회의 구조를 훨씬 더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다른 기준들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일정한 ‘경제 부문에의 귀속’, ‘주거 지역 및 주거 장소’, ‘민족성’ 그리고 ‘권력 구조 내에서의 위치 및 입장’ 등이다.

다른 나라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도 사회 체제 이론은 보편적 체제 이론과 일정한 사회주의 전통과의 결합을 바탕으로 발전한다. 예를 들면, 파슨스는 보편적 체제 이론을 사회적 작위 이론과 연결하며, 니클라스 루만은 이를 의사 소통 이론과 연결한다. 현대 러시아 사회학에서 체제 이론은 사회의 조화로운 상태의 모색과 그러한 상태로 이끄는 길의 모색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러시아 사회주의 체제 이론의 특성이 나타난다. 서구 이론사회학의 대표자들이 사회적 조화를 더 이상 믿지 않는 것과 대조적으로, 러시아의 체제 이론은 '우주론'이라고 하는, 사회적 조화의 모색을 지향하는 문화철학적 경향과 연관되어 있다.

러시아 사회학이 저수준으로 평가했던 경험론적 연구가 러시아 사회학의 주요한 흐름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1990년대는 경험론적 연구에서 중요한 변화가 인 시기이다. 특별히 ‘여론 연구 분야’가 두드러진 확산을 보았다. 그 가운데 정치 연구에 많은 힘을 쏟았는데, 무엇보다도 선거 결과 예측과 관련해서였다.

최초로 1989년과 1990년에 진행된 선거들에서 사회학자들은 경험적 사회학 분석 기법을 통해서 정확하게 민주주의자들의 승리를 예측했는가 하면, 1993년의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모든 예측이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 후 1995년, 1999년, 2000년에 진행된 선거들은 예측의 정확성이 점차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유의하여야 할 점으로, 러시아에서의 선거 연구 방법은 미국과 비교할 때, 아주 상이하다. 그러므로 주도적 역할을 하는 러시아 사회학 연구진들은 그 선거 예측 방법의 교정에 돌입하였는데, 이는 특히 선거권자가 지니는 잠재적인 호감과 반감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이루어 졌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경험론적 연구의 결과들은 분명이 사회 이론 발전에 새로운 자극이 된 것이 사실이다.

사회의 다원화에 발맞춰 사회학의 제도화라는 오래된 문제 역시 해결되어 갔다. 학술원 산하 'Institute of sociologic studies'가 'Institute of sociology'로 바뀌었다. 그리고 사회학 연구 기관들이 새로 생겨났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것은 모스크바에 있는 '전 러시아 여론 연구 센터'이다.

사회학 학술지들이 새로 간행되기 시작했다. 사회학은 대학 수준 교육 기관들에서 학업 과목과 전공으로서 교육되고 있다. 현재 러시아 대학 전체를 통틀어 290개의 사회학과가 있다.

그러나 소련의 붕괴로 인하여, 독립 국가 연합에 속한 나라들의 사회학자들과의 의사 소통이 어려워졌다. 또한 학자들이 정치적 성향을 띠게 되어 학술원 산하 사회학 연구소의 양분 현상이 생겨났다. 그 결과, V. A. 야도브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학 연구소는 기본적 문제들을 연구하고 있으며, G. 오씨뽀브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 정치 연구소는 정치 변모 과정에 영향을 끼치려 노력하고 있다.

1995년부터 사회학 공동체의 집약 경향이 보이고 있는데, 주로 지역 수준에서 직업 연합이 조성됨으로써 집약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이 가장 명백하게 드러난 것은 제1차 전 러시아 사회학 학술 회의(2000년)에서였다.

이 회의에는 773명의 사회학 관계자들(그 중에는 유명한 학자들도 있었고 사회학을 공부하는 대학생들도 있었다.)과 굴지의 사회학 학술지들의 편집자들과 러시아 사회학 공동체 소속의 편집자들이 참여하였다. 회의의 24개 분과에서 291건의 학술 발표와 344건의 연설과 18건의 토론이 행하여졌다. 이 회의는 사회학 공동체 내부에서 학술 토론을 되살렸고 사회학 공동체의 향후 제도화를 보장하였다는 데에서 의미를 갖는다.

총괄적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회학 토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낼 수 있다.

1990년대 러시아 이론사회학의 발전은 역사유물론 비판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이 발전은 서구 사회학의 이론들이 갖는 가능성과 이를 러시아 사회 현실에 적용할 가능성에 대한 집약적 사고를 동반한다.
이를 통해 러시아 사회 이론의 기초가 마련된다.
러시아 사회의 사회 구조 분석에 따르는 흥미로운 관념과 이론 명제들이 존재한다.
사회 체제의 러시아식 이론이 계속적인 발전을 보고 있다.
러시아 사회학에서 러시아 사회철학적 전통이 계승된다.
러시아 사회학의 발전은 다음의 요인들의 상호 작용에 달려 있을 개연성이 높다.

특별이 주목할 만한 현상이 사회학자들의 세대 교체가 활발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서구 사회학에 대한 기초 교육을 받은 자들이 점차 학계로 진입하고 있다.

러시아 사회학의 미래에 대한 문제에 대한 대답은 러시아 사회 발전의 길에 달려 있다. 러시아에서 사회의 개방성이 보존되는 상황에서 경제 안정 및 정치 안정이 도달되면, 점차적으로 소련식 전통이 고갈하고, 사회학자들이 학술 서비스 시장 및 정치가들에 대해 갖는 관계가 안정될 것이다. 국제 사회학 토론에 대한 입장의 개방성이 유지되고 기초 교육을 받은 젊은 사회학도들이 저작 활동에 돌입하도록 원활한 국제적 후원 체계가 구축되고 러시아 사회학의 빛나는 전통이 재생되면 러시아 사회학은 러시아 사회적 미래의 빛나는 촉진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제 한국의 연세대와 서울대 같은 명망 있는 대학들과 국제교류재단, 그리고 땀 흘리는 정치인들의 효율적인 정신적 문화적 대러협력 체제가 원활이 구축되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 하는 것은 바로 오늘부터 흘리는 우리 땀의 성격에 달려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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