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하 강제동원, 노동계급이 최대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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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강제동원, 노동계급이 최대 피해자”
  • 레이버투데이
  • 승인 2005.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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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2월13일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지난해 11월10일 전기호 경희대 명예교수(68)를 위원장으로 하는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가 국가기구로 정식 발족했다. 그리고 지난 달 1일부터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신고 접수가 16개 시도에 설치된 실무위원회를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3월5일 현재 벌써 5만1,793건의 피해자 신고가 접수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와 전 위원장의 만남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들'로 불리는 최봉태 사무국장(변호사)이 보충설명을 맡았다.

전기호 위원장 주요 약력 
1938년 경남 밀양 출생
경희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일본 동경대 객원연구원
노동경제학회 회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
민족문제연구소 이사
통일운동 및 민주화운동으로 두 차례 구속

주요 저서
<노동경제학>
<부당노동행위사례연구>
<일제시대 재일 한국인 노동자계급의 상태와 투쟁>


- 학자로서 재일 한국인 노동자 문제를 연구하게 된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었나?
“10년 전부터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일제 때 일본으로 갔던 노동자들의 상태가 어떠했는가, 또 그 사람들이 어떤 저항을 하고 운동을 했는가 이 문제를 밝혀놓는 게 학계를 위해서나 후대를 위해서나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했다. 논문을 1년에 한두 편씩 발표했고 10년간 진행하다보니 그것들을 묶을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 책으로 발간하게 됐다.”

▲ 전기호 위원장의 10년 연구성과를 묶은 저서 <일제시대 재일 한국인 노동자계급의 상태와 투쟁>(2003). 표지 속 사진은 전후 첫 일본의 메이데이 행사에 참가한 재일 한국인 노동자들의 모습. - 연구과정에서 도움을 얻은 재일동포 학자나 단체들이 있다면? “지금은 작고하신 박경식 선생의 선행 연구가 큰 도움이 컸다. 당시 경찰기록들까지 망라한 다섯권의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과 <조선문제자료총서> 15권이 있다. 그가 이끈 재일조선인운동사연구회는 1년에 두 차례씩 논문집 <재일조선인사연구>를 펴내고 있는데 지금까지 약 30권 정도가 나왔다. 이밖에 ‘조선인강제연행조사단’이 펴낸 자료와 재판기록들, 일본인 학자들의 단행본 등 다양한 자료들을 기초로 나름대로 학문적 체계를 잡아나갔다. 여기에 비하면 국내에서의 강제동원에 관한 자료나 연구는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총독부 자료를 뒤진다면 상당한 내용이 나올 수 있는데 정리된 것이 별로 없다. 국내 연구는 지금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 그렇다면 한일 양국에서 입체적인 조사와 진상규명이 필요한데 일본 정부나 기업이 제대로 협조할 것으로 기대하나. “해외실무위원회도 구성할 계획이고 일본에서 재판투쟁을 했던 분들로부터 자료를 일괄 넘겨받기로 했다. 또 일본 기업들에 대해서도 경단련 등을 통해 관련자료를 요청할 계획이다. 그러나 시작부터 직접적으로 이 문제를 강조하면 외교적인 문제도 발생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일단 정부간 외교채널을 통해 요청하는 절차를 밟아나갈 것이다. 재일동포 단체들은 민단과 총련 모두 위원회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통일사업의 의미도 있다.” - 위원회의 조사범위와 대상은 어떻게 설정되나? “강제동원이 핵심이다. 위원회의 조사대상은 만주사변이 발발한 1931년 9월18일부터 태평양전쟁이 종료된 1945년 8월15일까지 일제에 의한 노동력 동원, 병력·군속 동원, 성 동원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일제가 목표를 세워 계획적으로 강제동원에 나선 것은 1938년 4월의 국가총동원법과 1939년 4월의 국민징용령이 발동 이후, 같은 해 7월에 후생성, 내무성, 조선총독부 3자 합의로 ‘조선인 노무자 내지 이주에 관한 건’이 발표되면서부터이다. 이 시기에 모집-관 알선-징용 등의 단계를 거치면서 강제성과 폭력성이 점점 노골화됐다.” - 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배상’ 문제를 직접 거론했다. 위원회는 일단 6월말까지 피해자 신청접수를 받기로 돼 있고 피해사실에 대한 판정을 내리게 돼 있다. “위원회의 활동은 진상규명에 한정되기 때문에 배상문제와 직접 관련은 없다. 보상 또는 배상 문제와 관련해서는 총리실 산하 대책반에서 민관합동으로 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다. 다만 국가기구인 진상규명위가 직접 피해사실을 확인할 것이기 때문에 위원회의 판정 내용이 이후 배상 또는 보상문제 논의의 기초자료로 쓰일 수는 있을 것이다.” ▲ 전기호 위원장

- 일본 기업들은 조선인 노동자 강제동원을 통해 직접적인 이득을 얻었다. 그 기업들이 진상규명위 활동이나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보는가.
“일본 기업들이 과거 강제동원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국제적인 기업활동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강제노동과 비인간적인 착취, 수탈을 통해 돈을 벌었다는 것은 떳떳하지 못한 일이다. 이른바 전범기업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우선 자료공개 요청에 적극 협조하는 것이 필요하다.”

- 피해신청 접수 외에 미공개 자료에 대한 발굴 등 문헌연구를 통한 진상규명 작업도 매우 중요하지 않나.
“진상규명에는 신고접수된 피해사례를 통한 조사활동과 문헌 등을 통한 특정 사건들에 대한 진상조사가 모두 포함된다. 당장 할 일은 접수된 사건들을 처리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자료들을 가능한 범위 안에서 모두 수집한 뒤 사료관에 집적해 놓으면 앞으로 연구자들이 지속적인 연구활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연속성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6월말까지 신청건수가 최소한 10만은 넘을 것이다. 만약 20만건이 접수된다고 할 때 한달에 1만건을 처리해도 꼬박 2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너무 욕심을 내다 보면 일 자체를 감당 못할 수가 있다.”

 - 위원회는 각 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과 위원회가 채용한 별정직 공무원, 민간위원 등 다양한 층으로 구성돼 있다.과감한 진상규명이 뒷전으로 밀려날 우려는 없는가?
“행정처리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한 것인지 모르지만 일단 신청접수된 피해사례를 조사해서 확인하는 작업이 중요하고 본질적인 업무이다. 이밖에 추모공간 설치, 유골수습·봉환 사업, 사료관 박물관 건립 등 부가적인 사업도 있는데 여기에는 우선 예산이 확보돼야 한다. 10여명의 박사급 전문위원들도 있는데 진상조사 등 연구도 필요하지만 피해사례에 대한 판정기준을 제시하고 피해유형의 구분 등에 이들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 한국노총이 정신대 문제로 ILO에 일본정부 제소를 추진한 지 10년을 맞았다. 위원회 활동과 관련해 노동계에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군인과 군속, 위안부 또는 정신대로 불리는 성 동원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노무자로 끌려간 사람들이었다. 지금까지 피해 신청접수에서도 노동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위원회는 국가기구로서 진상규명 작업을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양대노총 등 노동계가 '선조' 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활동해주면 좋겠다. 일본 노동조합과의 국제연대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 일제하 노동자들의 문제를 보면 노동계급내 민족적 차별과 전근대적인 중간착취 등 오늘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현실과 겹쳐진다. 2차 대전이후 ILO는 일제 시대 만연했던 간접고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했지만 70년대 이후 다시 합법화되고 있다. 우리가 그것을 다시 따라가야 하나.
“일본이 한다고 그것을 따라서 하자는 것은 어폐가 있지만, 비정규직 문제 등은 본질적으로는 80년대 이후 자본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전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흐름이 강화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인간을 위한 경제학'을 평생의 신념으로 삼아 온 원로 학자는 "역사적 진실규명에 강제동원됐다"며 소박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의 어깨에 선배 노동자들의 따뜻한 격려와 응원이 함께 하기를 기대해본다.

박영삼 yspark@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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