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한인재단 하와이, ‘독립유공자의 집 문패 달기 사업’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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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인재단 하와이, ‘독립유공자의 집 문패 달기 사업’ 추진
  • 서정필 기자
  • 승인 2023.03.0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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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최초로 하와이 독립운동가 후손에 문패 전달

국가보훈처와 LGU+ 후원...올해 광복절까지 모두 120가구에 전달 예정
김노듸 지사 후손 집에 독립유공자 문패를 설치한 뒤. (왼쪽부터) 김주용 국가보훈처 국장, 박재원 미주한인재단 하와이 이사, 김노듸 지사의 딸 위니프레드 남바 김노듸 지사의 손자 윌리엄 남바, 이덕희 하와이 한인이민연구소 소장/ 에드워드 슐츠 미주한인재단 하와이 회장 (사진 미주한인재단 하와이)

‘미주한인재단 하와이’는 올해 한인 이민 120주년과 104주년 3·1절을 맞아, 대한민국의 주권 회복을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와 보훈 가족들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미주 최초로 하와이에서 ‘독립유공자의 집 문패 달기 사업’을 시행 중이다. 

‘독립유공자의 집’ 문패는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하와이 독립운동가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후손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됐으며, 지난 1월 13일 미주 한인 이민 12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 참석한 독립운동가 후손과 3.1절 기념식 자리에 참석한 독립운동가 후손 등 지금까지 총 60가구에 문패를 전달했다

‘미주한인재단 하와이’는 김노듸, 황(강)마리아, 권도인/이(권)희경 애국지사 3분의 후손 가정에는 직접 방문해 문패를 설치했다.

앞으로 하와이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더 찾아, 8월 15일 광복절까지 모두 120가구의 독립운동가 후손의 가정에 문패를 추가로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2023년 1월 13일 열린 미주 한인 이민 120주년 기념 만찬식. (왼쪽부터) 에드워드 슐츠 미주한인재단 하와이 회장, 안원규·안정송 지사의 손녀 카렌 안(karen Ahn), 정원명·정원라 지사의 손녀 엘사 리(Elsa Lee), 박재원 미주한인재단 하와이 이사 (사진 미주한인재단 하와이)

하와이는 한인 이민이 최초로 시작된 지역으로 당시 한인들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에 모든 노력을 바쳤다. 한인 이민자들의 독립을 향한 염원은 장인환, 전명운, 안중근 재판경비 모금을 시작으로 국권회복 운동을 후원하는 한인 단체를 조직했으며, 민족 정체성을 교육하는 학교설립과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교회설립 등 당시 5천여 명의 초기 이민자들은 한국 독립운동의 든든한 재정적 역할을 담당했다.

하와이 ‘독립유공자의 집’ 문패는 지난해 8월 LGU+가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기며 하와이 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느껴볼 수 있는 게임형 콘텐츠 ‘알로하RUN’을 개발하고, 이 콘텐츠 참가자 1인당 815원의 기부금을 적립해 조성된 기금을 국가보훈처와 함께 전달한 금액으로 제작됐다.

김노듸 지사는 1919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제1차 한인대표자회의에 참석해 여성 인권 유린행위를 폭로하고 남녀평등을 역설했다. 이후 대한부인구제회 임원으로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했고, 1921년부터 미국 각지를 돌며 한국의 독립을 호소했다. 

황(강)마리아 지사는 1913년 4월 19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조직된 대한인부인회 회장, 1914년 동회(同會) 재무로 활동하고, 1919년 3월 29일 동 대표로 독립운동 지원을 목적으로 대한부인구제회를 조직했다. 또한, 1928년 호놀룰루 감리교회 부인보조회 부회장, 1930년 '임시정부로 집중, 독립당 통일' 등을 목적으로 한 하와이 한인협회 조직에 참여했으며 1934년 하와이 미감리교회 부인보조회 회장, 1936년에는 상해 임시정부에 군인양성자금 100달러를 보내는 등 적극적인 독립운동 기금모금에 가담했다.

이(권)희경 지사는 1912년 하와이 여자청년회 안에 마더클럽을 조직했다. 1919년 호놀룰루에서 창설된 ‘대한부인구제회(大韓婦人救濟會)’ 회원으로 가입해 국권회복운동과 독립전쟁에 필요한 후원금을 모집·제공했으며, 애국지사 가족들에게 구제금을 송금하는 등 구제 사업을 전개했다. 1928년 대한부인구제회 탈퇴 후 그해 9월 김보배, 박금우, 곽명숙, 박정숙, 이양순 등과 함께 ‘영남부인회(嶺南婦人會)’를 조직 후일 ‘영남부인실업동맹회(嶺南婦人實業同盟會)’로 개칭한 뒤 회장을 역임하면서 15년간 한인부인사회의 발전과 독립운동 후원, 재미 한인사회의 구제사업 활동에 공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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