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양반춤을 추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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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양반춤을 추는 사람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3.02.1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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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양반춤은 느릿하면서도 정제된 느낌의 아주 멋들어진 춤입니다. 이 양반춤은 누가 추는 춤일까요? 저는 양반춤 이야기는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봅니다. 양반춤은 다른 대부분의 민속춤이 그러하듯이 양반을 풍자하기 위해서 추는 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고성 오광대 춤을 보면 양반의 탈을 쓰고 춤을 춥니다. 분명한 풍자입니다. 양반은 이렇듯 늘 풍자와 질시의 대상입니다. 비꼬고 싶은 존재이면서 되고 싶은 대상이기도 합니다. ‘이 양반이!’라는 표현과 ‘양반은 못 된다’라는 표현을 비교해 보면 느낌이 올 겁니다.

풍자의 모습을 강조하면 양반은 위선적인 느낌을 줍니다. 점잖은 척, 안 그러는 척하는 모습을 담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이지요. 아마도 비가 와도 뛰지 않는 모습이 양반에 대한 시선을 위선이나 꽉 막힘으로 고정화했을지 모릅니다. 지금도 양반춤을 추는 많은 모습은 이런 양반을 담고 있습니다. 왠지 풍자가 깊으면 불편하기도 합니다. 내 춤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어서 그럴 겁니다. 

저는 양반춤을 양반이 추는 춤으로 보고자 합니다. 물론 춤의 시작에는 풍자가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양반춤은 양반이 출 때 가장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바로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덜 관심을 갖고, 먹고 사는 일에 무심한 양반이지만, 그래도 세상에 타협하지 않고 곧게 살아온 인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양반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존중하였습니다. 

어떤 양반이 한 평생을 살고 나서 즐겁게 춤을 춥니다. 느린 춤사위지만 흥겨움이 넘쳐납니다. 어깨춤에 몸이 들썩들썩 거립니다. 얼굴에는 웃음이 한 가득입니다. 이런 모습을 ‘만면에 미소를 띠고’라고 표현하였을 겁니다. 이 웃음은 꽃을 피우는 맑은 웃음입니다. 웃음꽃입니다. 부채를 접고 펴는 소리에 듣는 이의 흥도 절로 오릅니다. 양반의 부채소리와 청중의 손뼉소리가 조화를 이룹니다. 

한 평생 세상을 살아보니 여러 일이 있었으나 살 만하더라는 기분 좋은 고백입니다. 늙는 것도 나쁘지 않더라는 깨달음의 고백입니다. 느리게 사는 것도, 부드럽게 사는 것도, 웃으며 사는 것도 나이를 먹으니 자연스레 되더라는 수줍은 고백입니다. 그리고 그 고백은 춤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춤을 추며 한 발로 균형을 잡고, 사뿐사뿐 뛰기도 하고, 시간이 멎은 듯 잠깐 모든 동작을 멈추기도 합니다. 팔과 다리를 멀리 뻗기도 하고, 하늘 보고 땅 보고 웃기도 합니다. 세상과 나의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순간입니다. 나마저 잊어버리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춤입니다. 

양반춤의 시작은 풍자였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꿈꾸고, 추는 춤은 깨달음입니다. 양반춤의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는 겁니다. 이제 양반춤은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을 살아낸 모습으로 맑게 추는 춤입니다. 보는 이는 춤추는 이의 삶에 수긍하고 함께 맑은 미소를 짓습니다. 살아온 날을 기뻐하며 축하하는 순간입니다. 양반춤은 늙은 양반의 맑은 춤입니다.

저는 요즘 양반춤을 배웁니다. 비교적 쉬운 동작처럼 보여 배우기로 했으나 정작 배워야 할 것은 춤 동작이 아니라 춤 속에 담긴 마음이었습니다. 인생이었습니다. 얼굴 한가득 기쁜 웃음으로 추는 양반춤, 저도 그런 춤을 추고 싶습니다. 어쩌면 한참 지난 후에도 춤 동작은 다 배웠는데 맑은 웃음은 짓지 못할 수도 있겠네요. 이건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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