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외래어는 우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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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외래어는 우리의 모습이다
  • 조현용 기자
  • 승인 2022.12.2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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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외래어는 국제화나 세계화 시대에는 불가결합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겠죠. 국가 간의 교류는 물적, 인적인 것으로 교류에는 반드시 언어와 문화가 수반됩니다. 강제적으로 자신의 언어나 문화를 다른 이에게 강요하는 경우도 있고, 자연스레 서로에게 스며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강제적인 힘이 작용하면 생채기가 됩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들어온 일본어 외래어는 상처를 남겼고, 사람들이 상처라고 깨달으면서 하나 둘씩 빠른 속도로 사라졌습니다. ‘와리바시’, ‘벤또’, ‘다꽝’ 같이 누가 봐도 일본어 같은 말은 생활어였지만 금세 지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방’이나 ‘구두’처럼 우리말인 줄 알고 있는 말들은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합니다.

그밖에도 한자의 모양으로 들어온 수많은 일본식 한자어는 인식조차 못한 채 우리 속에 있습니다. ‘입장’, ‘취급’, ‘취조’, ‘장소’ 등이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입장(立場)은 일본어에서는 ‘tachi(立), ba(場)’처럼 고유어로 표기되지만 우리말에서는 한자어 음독으로 읽어 ‘입장’으로 번역되어 들어와 있습니다. 일본어가 아니라 한자어라고 생각하여 쓰고 있는 겁니다. 사실 한자어도 외래어입니다만 너무 오랫동안 사용하였기에 고유어 취급을 해 주고 있는 겁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한자어도 차용어입니다. 

영어로 대표되는 서양어도 엄청난 속도로 우리말에 들어옵니다. 그 중에도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외래어도 상당수 있습니다. 아예 일본어식으로 모양이 바뀌어 들어 온 단어도 있습니다. ‘아파트’나 ‘볼펜’이 대표적일 겁니다. 이런 어휘를 제외하고도 번역 없이 외국어가 그대로 외래어가 되어서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옵니다. 일부는 문화와 문명을 통해서 들어왔고, 미처 손쓸 새도 없이 우리말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운송 수단을 보면 버스나 택시, 오토바이나 트럭 등이 그렇습니다. 이른 시기에 들어온 자전거는 한자어로 남아있네요.

우리의 일상생활을 보면 외래어의 위력을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의 하루를 살펴볼까요? 아침에 일어나면 ‘스마트폰’의 ‘알람’을 끄고, ‘샤워’를 합니다. ‘샴푸’와 ‘린스’로 머리를 감고, ‘드라이’로 머리를 말리고 ‘로션’을 바릅니다. ‘텔레비전’을 보며 ‘토스트’와 ‘커피’ 한 잔을 마십니다. ‘티셔츠’를 입거나 ‘스웨터’를 입고 가방에 ‘노트북’을 넣고 집을 나섭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를 나섭니다. 

어떻습니까? 그야말로 외래어는 홍수입니다. 밀물처럼 우리 삶에 밀려와 있습니다. 생활 속의 외래어는 그나마 양반입니다. 전문분야로 가면 외래어인지 외국어인지 구별할 수 없는 어휘가 한 가득입니다. 전문성을 자랑하듯 전문가는 외국어를 외래어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합니다. 외래어가 자기들만의 은어처럼 사용되는 순간입니다. 의사들이 사용하는 수많은 용어는 환자나 보호자에게는 은어입니다. 패션을 이야기하는 디자이너의 말은 정말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수많은 외래어가 딴 세상의 언어생활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저는 외래어를 쓰지 말자든가, 없애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외래어는 그 자체로 언어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으로 하자면 한자어도 없애야 할 겁니다. 허나 한자어를 없애자고 했던 여러 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과거가 있습니다. 순우리말이라는 말에서 ‘순’이 한자임은 묘한 일입니다. ‘우리말 쓰기 캠페인’이란 말도 본 적이 있습니다. 

다만 저는 외래어를 사용하는 우리의 마음을 보기 바랍니다. 언어는 사고와 태도를 반영합니다. 굳이 고유어가 있는데도 외래어를 사용하는 마음이나, 남이 알아듣지 못할 말로 외래어와 외국어를 쓰는 것은 말이 소통에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외래어를 쓰는 우리에게는 우리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외래어는 그대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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