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가 선택한 디자이너 - 문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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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가 선택한 디자이너 - 문영희
  • 한위클리
  • 승인 2005.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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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동포 문영희
세계 패션의 흐름을 주도하는 파리컬렉션은 모든 디자이너들이 꿈꾸는 최고의 무대다. 특히 파리컬렉션 개막 다음부터 이어지는 사흘 동안의 무대는 세계적인 디자이너들만이 설 수 있는 특별한 자리다. 그런데 여기에 한국인 디자이너 '문영희'의 이름이 9년째 올라 있다. 문영희씨는 지난 2003년 ‘월드디자이너육성사업’에서 지해, 홍은주 씨와 함께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마레의 좁은 골목길중 하나인 Rue Charlot 62번지에 위치한 그녀의 아뜰리에서 만난 문영희씨는 군더더기 없이 검은 단발머리를 하고, 검은 단화와 청자켓을 입고 있었다. 옷을 만들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줄곧 자신이 좋아하는 옷만 만들어 왔다고 말하는 그녀. 올 3월 초에 있을 프레타포르테 파리컬렉션 준비로 분주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파리에 터전을 잡게 된 이유는?
쉽게 말해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중간급, 또는 중상위 급 디자이너로 머무는 게 아니라 정상에서 활동하고 싶었죠. 그러려면 국제적인 트렌드를 보고, 파리에서 정상급 디자이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파리에 대한 이국적인 신기함 등은 이미 70년대에 여행하면서 다 느꼈던 점이었고, 파리에서 다시 시작했던 이유는 그거였죠. 80년대부터 파리와 서울을 오가다가 아예 자리를 잡은 지도 벌써 꽤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파리 콜렉션에 계속적으로 참가하고 있는데….
지난 96년부터 9년째 참가하고 있어요. 한마디로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 장벽이 정말 넘기 힘들고, 한번 들어가고 나서도 계속적으로 인정받는다는 게 더 힘든 거죠. 지식적으로도 풍부해야 하고, 프랑스의 다른 분야가 그렇듯이 인정받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잖아요.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문영희'만의 것을 만드는 것, 그게 가장 어렵죠. 또 내가 계속 새로운 것을 제시하고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과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어야 하니까요.

한국에서의 지원은 받고 있는지….
거의 지원이 없다고 봐야 해요. 문화가 중요하다고들 많이 말은 하는데, 어떻게 지원하고 키워야하는지에 대한 방안이 구체적이지 못하죠. 패션 분야가 특히 그래요. 특히 한국의 대기업이나 정부 차원에서 한국 패션 아트에 대한 지원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어요.
 파리의 패션 시장은 이미 너무 거대화되고, 첨단화되었기 때문에 이제 조직적인 팀이 짜여지고 대규모 자본이 들어오지 않으면 자리를 잡을 수가 없어요.
 작년에 Salle WAGRAM에서 쇼를 했을 때도, 한국 기업이 아닌 에비앙이나 몽블랑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스폰서를 해주겠다고 했죠. 예술가가 영업을 뛰고 나서서 투자자를 찾지 않아도 기업 차원에서 배려해주는 문화가 한국에도 있어야 합니다. 70년대에 이미 세계 진출을 고민했던 일본은 80년대에 이미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어요. 하지만 그 땐 이 정도로 장벽이 높지도 않았고 대기업화 되어 있지도 않았던 때였습니다.
 우리는 90년대에 와서야 세계 진출을 생각하고 조금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죠. 그러나 70년대와는 다른 만큼 개인이 하도록 내버려두기보다는 보다 조직화된 지원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한국과 프랑스의 차이에 대해서….
패션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프랑스는 패션이 예술의 중심에 있어요. 한국에선 아직까지도 패션을 장려하기보다는 '사치'와 연결시키고 산업적인 측면에서만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 외에 전반적으로는, 한국에서는 옛 것에 대한 재창조나 계승이 없는 '새것'만을 추구하는 점이 아쉬워요. 프랑스는 70년대나 지금이나 외형적으로 별 다른 모습이 없는데, 그 안에 들어 있는 문화적인 전통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현지의 평가는 어떠한지….
뭐 제가 제 평가를 말하는 게 좀 그렇죠. 그렇지만 파리패션협회에서 인정을 받았고, '파리를 넘어선 국제적인 디자이너'라고 평가를 받았습니다. 

본인의 작품을 설명한다면.
아까도 말했다시피 '문영희다운 것', 자기만의 오리지낼리티를 찾는 것이 중요한데요.
 저는 한국적인 것을 그대로 보여주기보다는 내 안에 자연스럽게 있는 한국적인 것들을 어떻게 현대화, 단순화시켜 내 것으로 드러내는지에 초점을 둡니다. 그게 정말 '창조'(creation)에요. 일단 제 중심은 가지고 있되 한 해에 두 번씩 콜렉션을 준비할 때는 그 때 그 때 제가 중점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을 제 개성에 맞게 재해석합니다. 군더더기를 싫어하고 모던하고 순수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 저의 개성인 것 같습니다.
흔히 패션계를 '피라미드'에 비유하곤 합니다. 중간급, 또는 중상위급 디자이너들은 트렌드를 잘 감지하고 그것에 맞게 따라가기만 해도 어느 정도의 성공이 보장됩니다. 그러나  정상에 있는 디자이너는 단순히 트렌드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해야 하는 역할을 해줘야 하죠. 가장 어려운 작업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시작할 때부터 제가 좋아하는 것만 찾아 외길을 팠기 때문에 '문영희만의 것'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싫은 것은 죽어도 싫고, 어쨌거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 발전시키고 개발해 왔어요.

파리가 아닌 다른 해외 진출 계획은?
시장을 넓히기 위해 진출해야죠. 밀라노나 뉴욕, 런던 등 앞으로도 계속 진출하고 싶습니다. 콜렉션은 계속 파리에서 해야 하겠지만요.

파리에서 의상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제일 중요한 것은 학교 디플롬이 아니다"라는 것이에요.
한 20-30% 정도는 학교에서 배우고 나머지는 현장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말 값지죠. 학교에서 1년-1년반 정도의 STAGE 기간을 허락해주니, 그 기간을 100% 활용하라는 게 제 충고입니다. 프랑스가 산학 협동 시스템이 참 잘 되어 있는 점이 한국하고는 많이 다르거든요.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남들이 10년, 20년 쌓아온 노하우를 금방 익히게 되어서 앞으로 자신이 작업을 하게 될 때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도 있고 단 몇 년만에 그들이 쌓아온 노하우를 체득할 수도 있다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사실 현장에서 일해보면 모든 게 쉽지 않아요. 그것 때문에, 중간에서 지치기도 하고 포기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것을 이겨내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그리고 그 전에 일단 자기 적성이 이 직업에 맞는지를 충분히 검토해봐야겠죠. 적성과 맞다고 생각하고 일단 이 길에 접어들었으면 잠자는 것 빼고는 다 일과 연관시켜 생각해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버스를 타고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하는 일상 속에서 작업의 아이디어를 찾아야 해요. 파리는 예술적인 감성을 많이 불어 넣어주는 곳이니까요. 이렇게 평상시에 많은 생각을 하다 보면, 작품이라는 것은 책상머리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시간 관리를 굉장히 철저하게 했을 것 같은데….
시간 관리, 참 중요하죠. 저는 가정이 있는 어머니이자 또 직업인으로써 남들보다 시간을 어떻게 하면 더 활용할 수 있을까를 일상적으로 고민해요. 예를 들어서 부엌에서 거실로 가야 한다고 했을 때, 저는 어떻게 하면 두, 세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면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지 아이디어를 찾습니다. 절대로 그냥 버리는 시간이 없어요. TV를 볼 때도 뜨개질을 한다던가 해서 남들보다 2-3배의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찾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닮은 옷들을 만들어낸 문영희씨는 개인적으로 세 아이들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이제는 어엿하게 자라 대학생이 된 그들에게 그동안 많은 시간을 내주지 못해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무엇보다 그들이 패션 아티스트를 어머니로 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조언도 해주기에 너무 고맙다고 그녀는 전한다. 또 바캉스 기간에는 모든 일을 놓아 두고,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내면서 그동안 못 나눈 자녀들과의 정을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시간관리에 철저하고, 군더더기를 싫어하는 그녀는 단순하되 단정한 중심이 있는 그 무엇을 계속 추구해왔다. 그녀의 작품에서 보이는 자연적인 감성, 순수함, 절제된 모던함은 그녀의 생활 그 자체를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올해 또다시 그녀가 보여줄 새로운 작업들을 기대해본다.


[한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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