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은 과연 바다를 건널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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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님은 과연 바다를 건널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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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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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제사를 모시는 어느 해외 동포의 고민

오늘은 설날이니 머나먼 외국 땅인 여기 호주에서도 차례 제사를 모신다. 외국에 살더라도 나는 한국인이고 우리집에서는 장남이니 제사 모시는 것은 나의 몫이다. 제사 지내는 방식은 한국과 다를 바 없다.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제사이고, 어른들 하시던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니 특별히 어렵지는 않다.

제사준비엔 아무 문제없어
제사 음식도 거의 구색을 맞춘다. 오징어를 칼질해서 올리고, 대구포도 진열한다. 과일과 소고기는 한국에 비해 절반 가격도 안 되니 많이 올릴 수 있다. 떡은 아내가 집에서 직접 만들기도 하고, 떡을 만들어 파는 한국 방앗간도 있으니, 제사 음식에 고민은 없다. 산채 나물도, 호주에서 오래 살다보니, 구하는 데 문제가 없다.

내가 우리 집 제사를 직접 관장하게 된 것은 6년 전의 일이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어머님마저 돌아가시자 장남인 내가 당연히 제사를 물려받게 되었다. 하지만, 제사를 물려받는 과정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어떻게 귀신이 바다를 건너서 그렇게 멀리 외국까지 가실 수 있나?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제사는 당연히 한국에서 지내야 하네.” 어떤 집안 어른의 말씀이셨다. 이 말씀에 많은 동조가 있었다. “큰일 날 일이구만. 이제 조상님 네들이 제삿밥도 못 드시게 생겼구만.”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내가 호주로 제사를 모시고 왔다. 장남이 제사 모시고 간다고 하니, 불만이던 형제들도 어쩔 수 없었다. 제사를 모시고 올 때, 그 방법에 대해서도 여러 조언이 있었다. 어떤 친구는 이런 조언을 했다.

“영정은 땅에 닿는 것이 아니야. 그러니, 사진을 가방에 모셔서 직접 기내에 가지고 들어가야 하네. 그리고 '지금 어디로 모시고 갑니다'라고 말씀 드려야 해. 비행기에 오를 때 '이제 비행기에 오릅니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는 '이제 호주 땅에 도착하였습니다'라고 말씀 드려야 조상님들이 헷갈리시지 않네.”

호주로 제사를 모셔 온 다음, 기제사, 생신제사, 명절제사를 잊지 않고 꼭꼭 챙긴다. 그러나 제사 지낼 때는 항상 마음이 편치 못하다. 올해 설날 차례 제사도 우리 식구들만 단출하게 모셨다. 형제들이 모두 한국에 있어서 제사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다. 멀리 떨어져 사니, 제사 때 오지 않는다고 고함 지를 계제가 아닌 것이다.

형제 뿐만 아니라, 조상님들께도 면목이 없다. 호주는 한국과 8천km 이상 떨어져 있다. 그 먼 바닷길을 건너서 과연 조상님들이 제사 시간에 맞추어 호주의 우리 집까지 오실 수 있으실까?

제사를 비롯한 모든 의례가 그렇지만, 그 바탕은 '귀신'에 대한 문화적 가정이다. '제사에 오셔서 흠향하신다'는 가정이 성립하지 않으면 제사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이야 이 문화적 가정을 부정하여 제사를 안 지내지만, 제사를 모시는 우리들은 그 가정에 충실하다.

시간 맞추어 당도하실는지
그런데 나의 고민은 그 가정 자체가 아니라, 여기가 바다 건너 외국이라는 데 있다. 과연 여기까지 조상님들이 오시는 것일까?

이러한 문제는 나에게 국한되지 않을 수 있다. 외국에 거주하여 사는 한국인이 5백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주재원과 유학생 등 유동 인구까지 따지면, 700만명 이상이 올해 설날을 외국에서 맞았을 것이고, 그 중 많은 사람이 나처럼 제사를 외국에서 모셨을 것이다. 더구나, 장남이 외국에 살기 때문에, 나와 비슷한 사례가 한국 가정에 많을 것 같다. 그렇다면, 그들 또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지 않을까?

귀신은 과연 바다를 건널 수 있을까?          시드니=김종호기자     
  chonghokim@optusnet.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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