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꾸란과 성경의 예언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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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꾸란과 성경의 예언자들’
  •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장
  • 승인 2022.06.2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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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이슬람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텍스트는 역시 이슬람의 경전 ‘꾸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는 이슬람학 또는 꾸란학을 가르치는 대학이 없기 때문에 꾸란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가 많지 않았다.

최근에 미국의 WIPF & STOCK 출판사에서 <꾸란과 성경의 예언자들>이란 책이 간행됐는데, 서구의 저자(Mark Durie, Peter G. Riddell, Gordon D. Nickel, David W. Shenk, Jacqueline Hoover)와 한국인 저자(다니엘 백신종, 김삼, 공일주, 황원주)가 집필진으로 참여했다.

이 책 속에는 필자의 논문 ‘성경의 아브라함과 꾸란의 이브라힘에 대한 텍스트적- 컨텍스트적 이해(Textual and Contextual Reading of Biblical Abraham and the Qur’ānic ’Ibrāhīm)’가 실렸는데, 이 논문에 대한 개요를 소개하고자 한다.

최근 미국의 WIPF & STOCK 출판사가 간행한 ‘꾸란과 성경의 예언자들’ 표지
최근 미국의 WIPF & STOCK 출판사가 간행한 ‘꾸란과 성경의 예언자들’ 표지

우선 이 책에서는 꾸란의 예언자와 성경의 예언자의 명칭을 서로 다르게 표기한 것(이브라힘/아브라함)이 하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랍어 성경에서 ‘이브라힘’이라고 하고 아랍어 꾸란에서도 ‘이브라힘’이란 명칭을 그대로 사용한다. 
 

꾸란을 영어나 한국어로 의미 번역한 경우 꾸란 속 인물의 명칭을 성경과 동일하게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학술적 연구에서 서로 다른 점이 잘 부각되지 못했다. 가령, 꾸란의 이싸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성육신하지 않았고 십자가에 돌아가시지 않았는데 이런 내용을 갖는 꾸란의 이싸가 성경의 예수는 아니다. 물론 꾸란의 이싸는 무슬림이고 기독교인이 아니다. 

우리가 인터넷에서 아브라함을 검색하면 세 종교의 공통된 조상이라고 말하는 곳이 많다.  2022년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에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의 예배 시설이 완공된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한국 언론의 보도에서는 모두 ‘아브라함 가족의 집’이라고 했다. 미국과 한국 언론에서는 ‘아브라함’이라고 하고 아랍언론에서는 ‘이브라힘’이라고 한다. 그래서 꾸란을 연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브라함의 세 종교라고 하면 각 종교가 갖는 고유의 영역이 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언론과 인터넷 자료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국내 일부 출판사들이 학술적인 연구의 결과보다는 인터넷에서 통용되는 용어를 우선한다. 그러나 학술적인 연구물에서는 전문적인 연구 결과가 반영되지 않는 것은 지양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필자가 지금 소개하는 책 <꾸란과 성경의 예언자들>에서는 성경의 아브라함과 꾸란의 이브라힘이란 어휘를 서로 구별해 사용하고 있다.
  
아부다비는 세 종교 간의 대화와 관용을 촉진하기 위해 아브라함/이브라힘의 집을 건축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 프로젝트는 2019년 바티칸의 프란치스코 교황과 순니 이슬람의 본산인 이집트 알아즈하르의 대이맘 아흐마드 알따입이 2019년 ‘세계평화와 공생을 위한 인류의 형제됨’이란 문건에 서명함으로써 시작됐다(공일주, 아브라함의 종교, 127).

그런데 이 건축물은 아랍어로 ‘이브라힘 가족의 집’이라고 하고 영어로는 ‘아브라함 가족의 집’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세 종교를 ‘아브라함의 종교들’이라고 하거나 ‘이브라힘의 종교들’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이 세 종교의 공통된 조상이 바로 아브라함 또는 이브라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꾸란의 이브라힘은 모든 예언자들의 아버지이고 기독교인들에게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고 유대교인들에게 아브라함은 히브리인들에게 조상이다.

사실 각각의 경전을 살펴보면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있다. 꾸란 3:67에서 “이브라힘은 유대교인이 아니고 나쓰라니도 아니고 하니프, 무슬림이었다(중략).”고 해 당시에 유대교, 나쓰라니(naṣrānī: 이싸를 따르는 자), 하니프라는 말을 무함마드가 사용하고 있었다. 

이슬람이 610년 처음 태동되기 전, 하니프가 아라비아 특히 메카와 히자즈 지역에 존재하고 있었다. 꾸란에서는 하니프를 이브라힘의 종교와 연관짓는다. 하니프의 종교 즉 이슬람이 이브라힘의 종교라는 것이다. 이런 꾸란의 주장을 적용하면 이브라힘/아브라함의 종교는 이슬람뿐이고 유대교나 나쓰라니(이싸를 따르는 자)와는 상관이 없다.
 
전문용어로서의 하니프의 의미는 ‘종교들을 버리고 참 종교로 기울어진 자 또는 이브라힘의 종교에 따라 메카 대사원을 기도 방향으로 받아들인 자’란 뜻이다. 흔히 이슬람을 ‘복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휘적 의미를 가리키는 말이고 ‘이슬람’에 대한 전문용어적인 의미가 아니다. 

따라서 오늘날 이슬람 종교를 논할 때 그 때의 이슬람을 ‘복종’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이슬람학과 꾸란학을 전공하지 않으면 전문용어적인 의미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디스에서 이슬람은 피조물을 인도하기 위해 알라가 그의 예언자에게 보낸 종교(딘)이다.
 
전 세계 무슬림들이 메카 순례에 가서 반드시 부르짖는 이름들 중 하나가 이브라힘이란 이름이다. 무함마드는 그의 무슬림 공동체에게 “이브라힘과 그의 가문에게 알라가 준 존귀함(tashrīf, karāmah)이 영속되기를 빌어 달라”고 명했다. 

무함마드의 하디스(무함마드의 말과 행동과 그가 동의한 것을 기록한 책)에는 “알라여! 이브라힘과 그의 가문에 주신 존귀함이 영속되게 한 것처럼 무함마드와 그의 가문에게도 이런 존귀함이 영속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라고 했다. 

꾸란의 이브라힘과 성경의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는 것과 아들을 희생제물로 바치려 했다는 점에서 서로 유사하지만, 꾸란에서는 어느 아들을 희생제물로 바쳤는지 그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또, 이슬람의 이브라힘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 가서 카아바 신전을 세웠다고 하지만 성경에는 그런 기록이 나와 있지 않다.

필자의 논문에서는 종교 간의 대화에서 ‘아브라함의 종교들’이란 말이 어떻게 사용됐는지 역사적으로 검토해 보았고 신약에서 아브라함이 누구인가를 밝혔다. 그 결과 아브라함과 이브라힘에 대한 내러티브의 구성과 강조점에서 서로 다르다(공일주, 아브라함의 종교, 4). 

결국 꾸란의 이브라힘은 성경에서 사용된 아브라함과는 다른 목적으로 사용됐고 꾸란 안의 이브라힘은 성경의 아브라함이 갖는 고유의 특징을 그대로 상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금세기에 가톨릭과 이슬람의 종교 지도자들이 성경의 아브라함과 꾸란의 이브라힘을 공통의 조상이라고 하면서, 상호 대화를 하자고 한다. 그중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브라함/이브라힘 가족의 집’이란 프로젝트다. 일부 무슬림 종교 지도자들이 세 종교를 한 가족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무슬림이 종교 지도자들의 생각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아부다비에 건축되고 있는 이브라힘 또는 아브라함 가족의 집은 하나의 단지 안에 세 종교가 있다는 상징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건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슬람의 모스크는 메카를 향하고 있고, 유대교는 예루살렘을 향하고, 기독교의 교회는 동쪽을 향하고 있다. 무슬림들도 세 종교가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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