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랍 사상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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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랍 사상의 변화
  •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장
  • 승인 2022.05.30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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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지성주의와 이성주의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선거 유세 기간에 ‘반지성주의’란 말이 나왔는데, 국어사전에서 지성주의는 ‘지각된 것을 정리하고 통일하여, 이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식을 낳는 태도’라고 한다. 반면에 이성주의는 ‘진정한 인식은 경험이 아닌 생득적인 이성에 의하여 얻어진다고 하는 태도’라고 한다.

이슬람역사를 보면 아랍 무슬림들 중에는 이성에 의존하는 이성주의를 강조하는 무슬림도 있었다. 그러나 지성주의나 이성주의는 인간의 이성과 지각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모든 일에 항상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철학은 비평적 사고를 길러준다는 점에서 아랍 세계가 지난 20년 기간에 철학으로 돌아가자고 부르짖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결과 이제는 노년층보다는 청년층이 더 비평적 사고와 관련이 깊어졌다.

그런데 아랍 이슬람 세계에는 지난 몇년 동안 다음 두 가지가 존재해 아랍 지성인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하나는 근본주의자들이 철학을 이용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철학에 관심을 둔 무슬림들이 근본주의의 위험을 모른다는 것이다.

모든 아랍 무슬림들이 비평적 사고와 철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2021년 12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철학 학술회의는 아랍 무슬림들에게 비평적 사고와 철학에 관심을 갖도록 촉발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또 다른 철학 포럼이 오만에서

2021년 12월 8~10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전 세계 저명한 철학자들이 ‘예측 불가능성’이라는 주제로 학술회의를 가졌었다.

그리고 2022년 5월 16~19일 오만의 바이트 알주바이르(Bait al Zubair)에 아랍의 지성, 철학자, 연구자들이 참가해 ‘바이트 알주바이르 철학 포럼’을 개최했다. 개회사에서 술탄 까부스대학교 총장 파흐드 븐 알줄란디 알사이드는 연구자와 전문가들 사이에 소통과 상호 활동이 창출되는 포럼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처럼 사우디와 오만에서 철학 포럼은 ‘소통’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번 포럼에서는 철학 서적의 전시와 무함마드 니잠, 하산 미르, 마르얌 알자달리, 라브하 마후무드, 압둘 카림 알마이마니 등 오만의 14명의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됐다.

이번 포럼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달리아 툰시가 ‘청년기의 big ideas’란 제목으로 어린이를 위한 철학 워크숍을 진행했다. 그리고 어린이를 위한 철학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프랑스 철학자 오스카르(Oscar Brenifier)의 책들이 번역된 것도 소개됐다.

모리타니아에서 온 압둘라 오울드 아바흐는 ‘현대 철학적 이성의 비판: 철학과 인류의 현대적 위기’에 대해 발제했고, 알제리에서 온 무함마드 샤우끼 알자인은 ‘철학의 기원에 대하여: 철학적 경험과 수피 경험의 교차점’을 발표했다. 압둘 살람은 ‘철학과 번역’에 대해 발표했는데 이 세 가지 논문이 이번 오만 철학포럼에서 아랍인의 관심을 모았다. 이미 필자도 이슬람의 수피즘은 철학 과목과 연계돼 학습되면 좋겠다고 『이슬람과 IS』에서 지적한 바 있다.

지난 수십년간 걸프 국가에서 냉대받은 철학

적어도 걸프 국가의 청년들의 사고와 의식 속에는 걸프국가에서 최근 수십년간 철학이 냉대를 받았다고 생각했고 그 증거로 각급 학교와 대학교의 커리큘럼에서 철학 과목이 부재한 것을 들었다. 아마도 학교의 철학(비평적 사고가 아닌) 과목은 교육기관의 보수주의자들의 압력을 받아 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집트, 모로코, 튀니지, 레바논에서는 걸프국가에서와 상황이 조금 달랐다.

지난 20세기의 마지막 수십년 동안 아랍에서 칸트, 헤겔, 하이데거, 폴 리코르, 하버마스, 챨스 테일러에 대한 전공으로 명성을 날린 학자는 없었다. 물론 요르단대학교나 카이로대학교에서는 철학 과목이 있었지만 철학은 아랍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아랍인들이 새로이 철학에 관심을 보이고

유럽과 미국에서 1차와 2차 세계대전 사이 그리고 전후 시기에 철학적 논문이 많았는데 이제는 일부 아랍국가들이 철학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는 것 같다. 이 점은 아랍 혁명 이후 크게 달라지고 있는 아랍 세계의 특징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번 포럼에서 오울리드 아바흐는 최근 수십년간 철학이 인류의 위기와 그 문제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사실 아랍 사회는 빈부의 양극화, 실직과 무지와 빈곤이 주요 쟁점이 됐고 종교적 담론은 아랍인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랍국가는 1960년부터 90년대까지 30여년간 이슬람 유산(전통)과의 충돌 속에 살았다. 지금도 이슬람 종교계에서는 여전히 그 유산을 지켜내려는 세력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아랍혁명 이후에 이성주의를 부르짖던 일부 아랍인들은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입을 다물고 있다고 불평을 쏟아냈다.

아랍 역사를 보면, 아랍인들의 옛 유산은 아랍사회가 모더니티(Modernity)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되고 있었다. 대부분의 모더니티의 전달자는 리버럴(자유주의)한 무슬림이었고, 그들은 아랍에서 이성주의를 주창했다.

리버럴 무슬림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서양이 부흥할 때 아랍 이슬람세계가 참여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더구나 당시의 이슬람 유산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비평은 냉전이란 파고 속에서 대부분 마르크스주의 배경을 갖고 있었다. 예를 들면, 마르크스 레닌의 사상을 추구하는 이집트 공산주의 정당이 1922년에 시작됐고, 나중에는 근로자, 농부,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계층까지 확산됐다.

1990년대 이슬람 유산에 대한 공격은 ‘문명의 충돌’을 주창하는 사람들과 휩쓸리게 됐다. 이런 충돌에 전심으로 참여한 측은 이슬람 국가와 전투적인 지하드를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무슬림 지식층이었다.

카타르 그리고 상당히 세속화된 것으로 보였던 터키가 이슬람주의에 집착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슬람주의로 잘 알려진 무슬림 형제단의 리더를 만났을 때 그가 말하는 무슬림 형제단은 상당히 온건적이었지만 역시 시대가 지나고 나니 무슬림 형제단 안에는 극단적인 세력이 형성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금년도 카타르가 월드컵을 개최한다고 해서 카타르 왕가가 무슬림형제단과 이슬람주의를 옹호했던 일이 월드컵 속에 묻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난 20년간 아랍의 일부 청년들과 일부 장년들은 이슬람 유산의 포로로 묶인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관에 대한 철학적 작업을 하는 쪽으로 선회하기 시작했고 인류의 위기에 직면한 사람들과 직접 대면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무슬림들은 아랍 국가마다 성향의 차이가 있고 그 수효의 많고 적음도 다르다.

이슬람과 다른 세상과의 대화

이슬람 세계가 철학을 도입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이슬람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와 소통하기 위함이었다. 아랍 무슬림들은 자신들의 문제가 다른 세계 사람들의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다면 자신들의 유산만을 집착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했다. 이를테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에게 운전을 하게 하는 것 등 몇가지 변화를 보였지만 그렇다고 사우디가 건국 때부터 함께 했던 살라피를 모두 청산한 것은 아니다.

이처럼 아랍 이슬람 국가들이 이슬람이 본래 갖는 문제와 외국에서 수입된 문제들을 모두 해결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런 문제를 다루는 방법이 변화되고 수정되고 발전해 무슬림도 국제 사회의 일부라는 것을 고려하게 되면서 철학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아랍 무슬림들은 학교교육에서부터 암기학습과 교사의 주입식 교육이 팽배해 있었다. 게다가 사우디와 이집트의 역사를 보면 한때는 무슬림형제단들이 의도적으로 교육계로 몰린 적이 있었다. 그래서 철학을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가 철학 워크숍의 주된 관심사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학의 무슬림 교수들이 주도적으로 교과서에서 이슬람과 관련된 내용을 수정하는 작업에 뛰어들었던 적이 있었다. 물론 그 때 교과서 개편에 참여한 무슬림 교수가 이슬람학과 꾸란학 전공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도 꾸란에 대한 번역문을 보면 여전히 부정확한 곳이 많다.

다시 아랍 세계로 이야기를 돌려보면, 무슬림들이 이슬람 유산에만 빠져서 그것만 숙고하다 보면 교착상태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수십명의 아랍인 무슬림 교수와 연구자들이 아랍 이슬람문화와 종교적, 사상적 역사에서 물려받은 유산의 영향력을 근본적으로 재고하기 시작했다. 물론 알아즈하르(순니 파 최고 종교기관)에서는 유산에 대한 정의가 무엇인지 언론과 책을 통해서 아랍 무슬림들에게 재확인시켜주고 있다.

게다가 지난 10여년간 아랍의 여러 대학교에서 이슬람학 분야를 새롭게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술대회가 열렸고 이와 관련된 책들도 발간됐다. 물론 일부 논문과 저서들은 여전히 식민주의적인 담화의 비평 방식에 따라 이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사용하는 데 빠져 있지만, 대부분은 새로운 연구 방법과 고문서 등 옛 자료에 근거해 문화적 역사를 다시 읽으려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슬람 고문서와 옛 자료에 근거해 이슬람학과 꾸란학을 탐구하는 연구가 부족하다. 이를테면 꾸란을 한국어로 번역하려면 꾸란의 해석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꾸란해석』이 2021년에 처음 출간됐다. 그렇다면 꾸란해석의 원리에 따라 그리고 꾸란의 의미번역의 원칙에 따라 기존에 출간된 꾸란의 (의미)번역서들을 연구하는 것이 당연하다. 사실 한국어로 번역된 꾸란은 ‘꾸란의 의미번역’이지 ‘꾸란’은 아니다. 꾸란이 아니라는 것은 무슬림의 예배와 학술연구에 사용할 수 없다.

우리나라 새 정부가 종교 다문화 비서관직을 둔다고 하니 우리 사회에 영향을 주는 주요 이슈들에 대해 다양한 학술적 결과물들이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전문가(?)만 활용하기 보다는 학문과 현장(이슬람국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소리도 들었으면 한다.

아랍 청년세대가 새로운 방식으로

오랫동안 아랍 무슬림들은 아랍의 철학적 학파를 세우려고 힘썼다. 그러나 이제는 아랍의 대학 교수들이 자기 학문에 대한 발전보다는 자신의 학문이 세계성을 갖는데 더 관심을 갖게 됐다고 레바논 대학교의 라드완 앗사이드 이슬람학 교수는 알샤르끄 알아우사뜨 신문의 칼럼에서 말한다.

오늘의 아랍 젊은이에 대해서도 그는 긍정적으로 말했는데, 무함마드 븐 자이드 대학에서 박사과정 중인 그의 학생이 그의 강의를 듣고 강의 자료를 친구들에게 나누면서 토마스 바우어(Thomas Bauer)의 책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자랑한다. 그는 오늘날 아랍의 새로운 세대는 기성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아랍 청년들이 지금 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기성세대들의 옛 방식이 유효하게 현실에 남아 있다는 것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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