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레바논, 이제 새로운 정치를 기대해도 될까?
상태바
[기고] 레바논, 이제 새로운 정치를 기대해도 될까?
  •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장
  • 승인 2022.04.11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레바논, 국가부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레바논은 2019년 말 이후 심각한 경제적 위기 속에 허덕이고 있다. 국민의 절반이 빈곤층으로 전락했고 레바논 화폐가치의 90%를 잃었다. 이제는 봉급만으로 기본 생필품 모두를 살 수 없고 연료 부족으로 정전이 광범위해졌다고 한다.  

4월 3일 레바논 부총리가 알자디드 채널에 나와서 레바논 정부와 중앙은행이 국가 부도 상황 속에서 살고 있다는 중대한 발표를 했다. 그의 말은 레바논이 지금 국가와 은행이 부도가 났다는 것이다. 그의 보도가 나간 뒤 20시간 후에 레바논 정부는 공식적인 해명을 냈다. 레바논 총리 나집 미까티는 부총리의 의도는 지급력이 아닌 유동성 측면에서 부도를 설명한 것이라고 했다.

레바논 중앙은행장은 은행부도는 정확한 표현은 아니라고 하면서 국제통화기금 70조와 신용법에 따라 위임된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했다. 레바논인들은 부총리의 이번 언론 인터뷰에 분노를 느꼈고 일부는 패닉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사실 레바논은 수년 전부터 경제가 악화되고 있었고 3년 전부터 더욱 악화됐다. 달러에 대한 레바논 화폐 리라의 가치가 15배 하락했다. 코로나19 이전에 레바논 국민은 경제개혁을 부르짖고 부패한 정치인과 경제인이 책임을 지라고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에 경제 위기는 더욱 악화됐으며 급기야 많은 레바논 국민은 그들의 적금과 예금을 외환으로 인출할 수 없었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예멘의 대사가 레바논으로 귀환할 것이라고

4월 9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왈리드 대사와 쿠웨이트의 압둘 아알 대사가 레바논에 도착했고 예멘의 대사도 곧 귀환할 것이라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레바논 당국과 정치인들은 “GCC 국가들과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안도감을 표현했다. 

레바논이 또 IMF와 합의했다는 소식이 보도되면서, 룩셈부르크 증권거래소에서 레바논 국제채권(International bond)이 상승을 기록했다. IMF와의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것은 레바논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주는 것이고 외환 환율을 조정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알샤르끄 알아우사뜨 신문은 전했다.

레바논의 전 공보부장관 조지 꾸르다히가 작년 10월 예멘 전쟁에 대해 예멘의 후시를 옹호하고 사우디에 대해서 비판적인 발언을 한 것 때문에 사우디, 쿠웨이트, 바레인 등 걸프국가 대사들이 레바논에서 철수해버렸다. 

그 뒤 레바논 총리 나집은 그의 정부가 리야드와 걸프국가들과의 유대를 강화하는데 필요한 제반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했고 레바논 정치인들이 적극 나서면서 사우디가 한 발짝 물러선 것이다. 

총리의 약속 중에는 레바논이 사우디와 걸프국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치적, 군사적, 안보적인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사우디는 이제껏 히즈불라에 휘둘려서 예멘의 후시를 다각적으로 지원해 온 레바논 정부에 뭔가 쐐기를 박고 싶어 했다.

4월 10일 쿠웨이트 외무장관은 총리 나집 미까티와의 전화통화에서 걸프국가들은 레바논의 치안이 안정되고 레바논 국가가 완전히 회복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쿠웨이트는 레바논이 다시 재기하도록 지원하고 돕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미까티 총리가 레바논의 아랍적인 깊이(‘umq ‘arabi)에 굳건한 믿음을 갖게 해 준 것을 치하했고, 미까티는 쿠웨이트가 항상 레바논 편에 서 준 것에 깊이 감사한다고 전했다. 

다시 말하면 레바논의 ‘아랍적인 깊이(Arab Depth)’를 지키는 것이 레바논의 정체성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란’ 민족의 지원을 받는 히즈불라가 레바논에서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아랍’의 걸프국가들이 레바논이 ‘아랍 민족의 깊이’ 즉 ‘아랍민족 간의 깊은 유대(Arab affiliation)’로 되돌아오라고 말한 것이다. 

히즈불라의 비무장과 2004년 채택된 UN결의안 1559 준수 가능할까? 

시리아 전쟁 발발 그리고 히즈불라의 영향력이 레바논 정부와 여러 기관에 대한 통제가 강화된 이후에 베이루트와 걸프국가들의 관계가 악화됐다. 레바논에서 이란이 지원하는 히즈불라가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기 위해 시리아에 전투기들을 보낸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했고 이들은 이라크와 예멘의 민병대를 자문해준 혐의를 받아왔었다. 

히즈불라는 미국과 걸프 아랍국가들의 동맹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이란을 도왔고, 또 예멘에서 이란과 한 편이 된 후시(Iran-aligned Houthi)를 도왔다. 히즈불라는 레바논 군대보다 더 강력한 민병대를 갖고 있고 시리아와 레바논의 친 이란 세력을 지원하고 있다.

걸프 국가들이 자국의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한 이후에 히즈불라의 하산 나슬랄라가 언론에 나섰는데, 레바논 총리는 이례적으로 히즈불라를 비판하고 나섰다. 그리고 총리는 레바논에서 정치적 및 종파적 갈등을 멈춰달라고 당부하면서 하산 나스랄라의 입장은 레바논 정부의 입장이 아니라고 했다. 

총리 입장에서는 돈 많은 걸프 산유국들을 붙잡으려면 이렇게라도 해야 레바논을 살릴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일까? 사우디와 걸프국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레바논이 더 이상 이란의 사주를 받아 사우디와 전쟁을 하고 있는 예멘의 후시를 돕지 않기를 바란다.

GCC국가들은 쿠웨이트 외무 장관 아흐마드 나세르를 통해 걸프국가의 대사들이 레바논으로 돌아갈 수 있는 선결 조건들을 전달했는데 그 중에는 히즈불라의 비무장과 2004년 채택된 UN결의안 1559(레바논 영토에서 모든 민병대의 비무장과 정부의 장악력을 확대하라는 것)를 준수하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히즈불라는 예멘의 후시를 지원하기 위해 그 발판으로서 레바논을 이용하고 있다. 

아랍국가 정상회담과 이스라엘 참여

아랍국가들은 최근 연이어 여러 차례 정상회담 또는 외무 장관 회의를 통해 미국에 대한 의존도에서 탈피해 자립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 왔다. 

3월 21~22일 이집트의 샤름 알세이크에서 이집트 대통령, 아부다비 왕세자, 이스라엘 총리가 이란과 우크라이나 문제 그리고 에너지 시장과 식량 안보에 대해 논의했다. 이집트와 아랍에미리트 정상이 이스라엘 총리와 만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아랍에서는 미국이 더 이상 예전처럼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으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중동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역내 위협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슬림들이 적으로 규정한 이스라엘과 더 가까이 다가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3월 26일 요르단 아까바에서 이집트 대통령과 요르단 국왕, 아부다비 왕세자, 이라크 총리가 모여 식량 안보와 에너지 문제 그리고 이에 관련된 글로벌 변화를 논의했다. 이 회의에서는 지역 안정과 안보를 보전하는 방안과 현재의 글로벌 변화가 식량 안보와 에너지, 무역 부문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논의했다.
 
그리고 3월 27~28일 미국,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모로코, 이집트, 이스라엘의 외무 장관이 모인 이스라엘의 네게브 회의를 통해서, 경제협력과 이란의 역내 세력 확장을 막는 방안을 주요 안건으로 다뤄졌다. 

아랍인들의 광범위한 비난 속에서 아랍과 이스라엘 간의 회담이 진행됐다. 물론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 외교 정상화에 서명한 아랍국가들을 비난했다. 하지만 이런 회담에서 나온 의제들이 모두 실현될지는 아직 모른다. 더구나 향후 이란의 위협에 아랍 국가들이 동일한 방식으로 대처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이제 레바논은 어디로?

걸프 국가의 대사들이 레바논으로 돌아가면 금방 예전대로 레바논과 걸프국가 간의 관계가 회복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되려면 레바논이 GCC의 요구에 부응해 새로운 정책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걸프국가의 대사들이 레바논으로 돌아가면 레바논이 선거를 앞두고 분열된 순니파 공동체와 일부 야당을 정치적으로 지원해 줄 수는 있을 것이다.
 
2018년 통계에 따르면 레바논에는 순니 무슬림이 153만명이고 시아 무슬림이 158만명 등 모든 무슬림이 315만명이었다. 반면에 마론파 가톨릭, 그리스 정교회, 그리스 가톨릭, 아르메니아 정교회, 아르메니아 가톨릭, 시리얀 정교회, 시리얀 가톨릭, 개신교를 합쳐서 112만 5천명이었다.

레바논 의회는 반드시 마론파 기독교인을 대통령으로 선출해야 하고 의회는 시아파 무슬림을 대표로 뽑아야 한다. 그런데 레바논 헌법에는 총리가 어느 종교냐 어느 종파냐를 정하지 않았으나 총리는 순니파의 몫이 됐다. 이런 정치제도는 1946년 레바논이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기 이전인 1943년 레바논 종파들이 합의한 결과이다.

그런데 이렇게 국가의 3리더들에게만 종파적 할당이 이뤄진 것이 아니고 여타 중요한 직책도 모두 이런 식으로 나눴다. 군의 총사령관은 마론파가, 내부무 장관은 순니파가, 국내치안 책임자는 순니파가, 군사정보부장은 시아파에게 할당했고 심지어 드루즈 파, 정교회 기독교, 아르메니아인에게도 할당됐다. 레바논은 의회 민주주의 공화국이지만 정치제도에서 종파적으로 분배된 모든 정치 집단의 동의 없이는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그리고 레바논이 경제적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역내 국가들의 바람을 완전히 포기하거나 외교적인 보이콧이 아닌 또 다른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
 
레바논이 경제와 정치적으로 이미 실패했지만 히즈불라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레바논에서 뿌리를 내렸다. 레바논에 대한 이스라엘의 전략은 안보 이익과 군사적 대치에 초점을 뒀다. 이전의 레바논 정치는 종파 간 분열을 가중시켰고 부패를 막지 못했다.

걸프의 대사들이 레바논으로 돌아왔는데 레바논이 현재의 재정적, 경제적, 정치적 위기를 야기한 종파적 및 종교적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