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우디아라비아, 철학학술회의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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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우디아라비아, 철학학술회의 개최
  •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장 
  • 승인 2021.12.1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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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역사적으로 처음으로 개최한 철학 학술회의

2021년 12월 8~10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전 세계 저명한 철학자들이 ‘예측 불가능성’이라는 주제로 학술회의를 가졌다.

사우디아라비아 무슬림들이 사우디아라비아 건국 이후 지금까지 살라프(선조)가 이해한 방식대로 꾸란을 해석해 온 것은 철학을 학교 교육에서 배제해 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샤리아 대학에서 타종교에 대한 논증이 필요한데도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 철학 과목을 도입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가 금년에 처음으로 철학 학술회의를 열었고 앞으로 매년 개최한다고 했다.

이미 언론을 통해서 사우디가 사회적 변화를 모색하는 사례들을 지난 몇년간 보여줬지만 세계적인 철학자들을 초청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리야드에서 철학에 대한 학술회의를 개최한 것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우디가 그동안 국제사회와 다른 문화와의 관계에서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것이다.

아랍 이슬람국가들 중 가장 보수적인 왕정 체제를 갖는 사우디가 국민들의 자유로운 사고와 종교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냈을 때 왕실이 얼마나 수용할 지를 지켜보면 변화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사우디 어린이들이 미래에 철학을 하고

그래서 사우디 철학자 달리아는 앞으로 사우디 어린이가 철학을 하고 추상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을 거라고 내다보았다. 다시 말하면 그동안 사우디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맹목적인 암기 교육을 강요받았고 종교 교육에서는 이성적 사고보다는 전수를 강요받아왔다.

이를테면, 이슬람의 예언자와 살라프(선조)가 이렇게 말했으니 사우디 국민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식이었는데 달리아는 앞으로 이런 방식을 지양하고 새로운 교육 방식이 도입될 것이라고 낙관한 것이다.

유네스코(UNESCO)의 페드로 몬레알(Pedro Monreal)은 “철학이 세계 문화 간 교류에서의 탁월함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 “사람의 마음에 평화를 그리고 교육, 문화, 과학과 소통에서 전반적인 협력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 유네스코 전략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철학 과목의 도입으로 세계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를 바라고

물론 사우디가 1400년 이상 이슬람의 심장부 역할을 해 왔고 전 세계 이슬람 국가들의 주요 현안을 챙겨 왔기 때문에 이런 변화를 통해 도리어 다른 문화에 대한 우월성을 담보하려는 의도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까지 사우디 무슬림들은 이슬람 문화와 문명이 다른 문화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해 왔다. 특히 알라와 무함마드, 이슬람종교와 무슬림을 사랑하는 것(알왈라)과 알라가 아닌 우상을 예배하는 것을 미워하고 카피르(알라를 믿지 않거나 무함마드를 예언자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를 증오하는 것(알바라)을 신조로 삼았다.

그런데 최근 공휴일을 금·토요일에서 토·일요일로 바꾼 아랍에미리트는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열고 종교 간의 대화에 적극적이었는데 아직까지는 사우디가 아랍에미리트의 개방적 노력에는 다소 못 미친다.

‘철학 학회의 국제 연합’ 회장을 맡고 있는 루카 마리아 스카란티노(Luca Maria Scarantino)는 “철학이 세계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경험의 경계를 확장하며 세계의 복잡성을 더 잘 인식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철학이 이슬람 세계에도 매우 영향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철학자들은 코로나 대유행을 통해 자신들을 성찰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창의적 사고와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 실질적인 변화

무함마드 하산 알완(Mohammed Hasan Alwan)은 “이번 리야드의 학술회의는 사우디 고유의 문화를 선보였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사상가 및 학술 기관과 깊은 유대를 구축하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열망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사우디가 단순히 유대관계를 증진시키는데 머무르지 말고 자국민의 자유로운 토론을 허용하는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이번 회의에서 온라인으로 참여한 하버드대학교 철학 교수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은 4명의 사우디 학생과 함께 윤리적인 문제, 가령 부자 나라의 백신 독점과 가난한 나라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에 관해 토론하게 했고 특별히 여학생들도 초대됐다. 

과거에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현상에 대한 공개적인 질문에 대한 전통이 거의 없었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이런 학술회의가 개최된 것은 그 자체로써 이례적인 장면이라고 BBC는 전했다.
 
덧붙여서 BBC는 사우디 남성이 지난달 소셜 미디어에서 이단 혐의로 체포된 사실과 예멘 기자가 최근 배교 혐의로 15년형을 선고받았던 사실 그리고 이슬람 설교자와 젊은 여성이 개혁을 이야기 했다가 투옥된 사실도 언급했다. 

샌델 교수는 사우디 학생들이 철학을 정규 과목으로 접해본 일이 없었는데도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토론에서 학생들의 갈증이 많았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사우디 왕정체제나 다른 아랍 국가들이 앞으로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의 창의적 사고를 얼마나 길러줄 것인가가 중요한 대목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전 교육부 장관은 작년에 비판적 사고와 철학을 교과과정에 도입하기 위한 준비가 진행 중이라고 발표한 이후 그는 곧 교체됐고 그의 계획은 보류된 것으로 보인다.

세상과 연결하는 철학

이번 사우디의 철학 학술회의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무슬림 자신들이 세상과 연결하는데 철학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다는 점이다. 세상과 무슬림의 매일 매일의 생활을  연결 지어 본 것이다. 아랍 사회는 전통적으로 가족과 부족을 먼저 챙기고 타종교보다 이슬람에 더 나은 가치를 부여해 왔다. 그리고 왕정 체제에 대한 비판과 이슬람 종교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허용하지 않았다.
 
필자가 요르단대학교에서 무슬림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동료 교수 중 한 사람은 필자에게 요르단 왕정과 이슬람 종교와 축구에 대한 이야기는 절대로 수업시간에 꺼내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사우디는 요르단보다 더 보수적인 나라가 아니었던가?

2030 비전을 위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일까?

지난 1년 전 만해도 사우디의 문화 현장에는 철학이 거의 없었고 교육 현장에는 철학의 영향이 없었다. 그런데 사우디가 철학에 대한 국제 학술회의를 연 것은 계몽적인 2030 비전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우디 역사에서 처음으로 지난 1년 전에 철학학회가 창립됐다. 아랍의 소셜 미디어에서는 이에 대한 다양한 반응이 나왔고 많은 아랍인들은 이성적 활동을 허용한다는 의미에서 철학학회의 창립을 적극 환영했다. 아랍인들은 철학이 한가지 정답보다는 다양한 질문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함마드 하산 알완(문학 출판 번역원의 CEO)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지금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변화하는 국가들 중의 하나이고 부흥 운동의 속도에서 사우디에 필적할만한 나라는 없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아랍 혁명을 통해 아랍 무슬림들이 신이 없다는 무신론자들이 늘어만 갔고 IS와 탈레반, 알카에다의 테러를 통해서 맹목적인 신앙과 닫힌 사고의 위험성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는 곧 아랍 이슬람 세계가 철학을 등한시하고 이성의 작동을 막아왔던 탓이라고 철학교수 무라드 와흐바 교수는 주장한다. 이븐 루쉬드 이후에 아랍에는 세계적인 철학자가 없었다. 다만 종교 사상가들만 있었을 뿐이다(꾸란과 아랍어 성경의 의미와 해석. 481쪽). 

이슬람 세계의 종교인들은 철학을 피하고자 했다. 그리고 과거에 이런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박해를 받기도 했다. 일부 아랍 대학에는 철학과목이 개설됐지만 인기가 없다. 무라드 와흐바 교수는 13세기부터 지금까지 아랍 이슬람 세계는 이성적 성장이 느린 시기라고 말한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뭔가 다급해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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